아내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

양기화
발행날짜: 2015-11-05 05:09:21
  •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터키로[12]

신이 마련한 도피처, 카파도키아(4)

카파도키아에서 하루밤 묵은 데데만(Dedeman) 호텔이 큰길가에 있는데다가 방음도 잘 안된 탓인지 밤새 차량이 질주하는 소리에다 동네 개가 짖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쳐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선택관광상품인 열기구를 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날 밤에 역시 선택관광상품인 민속춤공연까지 포기했던 것이 소용없게 되었다.

결국 3시에 눈을 뜨고 나갈 채비를 했다. 긴팔셔츠에 조금 두꺼운 상의에 하의 내복까지 입었다. 새벽에는 기온이 서늘한데다가 하늘 높이 올라가면 더 추울 듯해서이다. 한편으로는 준비를 해온 옷을 입지 않으면 신경을 쓴 아내도 섭섭할 것 같고, 입지 않더라도 세탁을 할 터이니 핑계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먼저 선풍기로 바람을 불어넣고(상좌), 풍선이 부풀면 불꽃을 불어넣는다(상우), 이륙준비완료(하좌), 이륙(하우)
5시에 호텔을 떠난 버스는 어둠을 뚫고 우리를 지상에서 끌어올려 줄 곳으로 향한다. 도로에서 벗어나 먼지가 이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멈추자 어둠 속에서 감춰진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커다란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켜 거대한 몸통을 반쯤 일으킨 풍선으로 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30여 분이 지나자 이번에는 불꽃을 일으켜 풍선으로 쏘아 넣기 시작하자 풍선은 이내 허리를 곧추세운다. 우리 일행이 탑승을 마치자 잘 생긴 기장은 풍선 안으로 쉴 새 없이 불꽃을 쏘아 넣었고, 드디어 풍선은 두둥실 몸을 일으켰다.

다 같이 두둥실(상), 신이 만든 예술작품(하)
주위를 돌아보니 우리 보다 먼저 지상을 떠난 풍선도 있고 뒤에 떠난 풍선도 있어 헤아릴 수도 없는 풍선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기장은 우선 풍선을 서서히 회전시키며 수만 년을 내려오면서 자연이 카파도키아에 만들어 놓은 신비로운 경관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전날 지프사파리에서 찾았던 장미계곡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고 스머프 마을도 손에 잡힐 듯하다.

이 지역이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었을 때 화산이 폭발하면서 쏟아진 화산재가 모래와 뒤섞이고 여기에 화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뒤덮이면서 만들어낸 터가 세월이 흐르면서 비바람에 씻겨 만든 환상적인 예술작품이다. 인간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제작의도는 물어볼 필요 없이 그냥 가슴으로 느끼면 될 일이다.

안녕하세요. 사부님(좌), 해가 떴어요(우)
군에서 응급후송을 하느라 헬리콥터를 탄 적이 있다. 후송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갈 때 기장이 헬기의 고도를 낮추었는데, 오금이 저린다는 느낌을 처음 느꼈었다. 열기구를 타면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막상 타보니 공연한 것이었다. 어쩌면 자연의 신비에 취해 공포감이 마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고소공포증이 있으셨던 선친께서 보셨더라면 크게 야단을 맞을 일을 이날 한 셈이다.

순조롭게 운항을 하던 기장이 풍선을 조종하여 옆에 있는 풍선에 부딪혀 갔을 때 마음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이곳에서 일어났다는 불행한 사고에 관한 소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딪힌 풍선을 조종하고 있는 기장이 자신의 스승이고 아침인사로 키스를 드린 것이라는 기장의 설명을 듣고는 안심이 된다.

이윽고 동쪽 산마루가 붉게 물들며 해가 고개를 내민다. 처음에는 산마루가 희붐하게 밝아 오더니 둥글게 붉은 색이 더해져 해가 아닐까 헷갈리게 하더니 이윽고 강렬한 빛이 산마루에서 어두운 계곡으로 쏟아져 내린다. 해가 산마루에서 빼꼼하니 고개를 내밀자 모든 풍선들이 단숨에 까맣게 변색한다. 그리고 보니 우리 풍선이 제일 서쪽에 있었던 것이다.

1시간여의 상승과 하강 그리고 이동을 즐기고 나자 기장은 착륙을 준비한다. 많은 풍선들이 나란히 지상을 떠났지만 내려올 때는 따로 따로 내려온다. 탑승석을 싣는 트레일러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줄을 늘어뜨리면 지상요원들이 풍선을 유도하여 트레일러 위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는 풍선뚜껑을 열어 단숨에 열기가 빠져나가게 하여 풍선을 접는 것으로 운항이 종료된다. 역시 지상으로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샴페인파티가 있고 기장은 모든 탑승객들에게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인증서를 준다.

열기구 타기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7시반이다. 바로 아침을 먹고 방으로 올라가 몸을 씻고 호텔을 나선다. 카파도키아를 출발하여 2시간반 가량 남쪽으로 달려 콘야 부근에서 닭고기 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터키에 와서 몇 차례 먹어 본 닭고기요리들과는 달리 닭 특유의 냄새가 없고 짠맛도 덜 해 제일 좋았다. 점심 후에 달리는 도로양편으로 끝없는 벌판이 펼쳐진다. 밀수확이 끝나고 사탕무우를 심고 있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터키사람들을 먹여살리는 곡창지대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콘야를 구경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의 하나이다. 콘야의 남쪽 가까운 곳에 신석기기대인 7400년에 건설된 최초의 도시유적이 발견된 차탈회위크가 있다. 이 유적지에서는 선사시대의 사회 조직·문화 풍습의 발달을 볼 수 있으며, 수렵의 의존하던 사람들이 정주하여 농경을 시작하던 무렵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차탈회위크는 정착촌 형태에서 도시 집적(都市集積) 형태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다.(1)

히타이트제국의 영토였던 콘야는 프리기아왕국, 리디아왕국, 폐르시아제국의 지배를 거쳐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에게 점령되었다가 페르가몬왕국에 편입되었고, 기원전 129년에는 로마제국에 속주가 되었다가 비잔틴제국의 영토가 된다. 1071년 만지케르트전투에서 셀주크 투르크가 비잔틴제국에 승리한 이후로는 셀주크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243년 몽골의 침입으로 셀주크제국이 멸망한 다음에는 몽골의 일한국에 속국이 되었다가 여러 나라의 침략을 받다가 1420년 오스만제국에 편입되었다. 콘야는 셀주크제국의 수도였지만 몽골군의 침략을 받았을 때 철저하게 파괴되는 바람에 남아 있는 유적이 별로 없다. 셀주크 투르크의 유일한 유적은 1155년 마수드 1세가 착공하고 1219년 알라딘 케이쿠바트 1세가 완성한 ‘알라딘 모스크’가 유일하다.

세마춤(Wikipedia, Sufi whirling에서 인용)(2)
콘야를 찾는 사람들은 셀주크투르크의 흔적보다는 이슬람의 분파인 신비주의 수피즘의 본산인 메블라나 교단이 있기 때문이다. 수피즘은 인간이 종교적 신비체험을 통하여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교조적이고 형식에 치우친 전통 이슬람에 대한 반발로 8세기경 생겨났으며, 12세기 무렵 이븐 아라비가 이론적인 체계를 세웠고 메블라나 젤라딘 루미가 깊이를 더했다고 한다. 루미는 음악과 춤이 자신의 내부로 향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았다. 루미가 고안한 메블레뷔(Mevlevi)춤[세마(sema)춤이라고도 한다]을 통하여 수도자는 황홀경에 이른다고 한다. 사실 전날 카파도키아에서 선택관광상품이었던 민속춤에 세마춤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가보았더라면 좋을 뻔했다. 밸리댄스를 내세우는 바람에 포기했던 것이 아쉽다. 물론 수피 수도자가 추는 세마춤을 보아야 하겠지만, 느낌은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콘야의 식당에서 다시 1시간반 가량을 가니 버스는 산길을 휘휘 감아 돌면서 올라간다.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대서 유명해진 터키 동부에 있는 아라랏산을 정점으로 하는 표고 3000m의 토러스 산맥이 지중해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정상으로 갈수록 나무를 구경하기조차 힘들어진다. 산을 넘는 것도 힘들고 곳곳에서 도로공사가 벌어지고 아탈리아에서는 퇴근시간과 맞물리는 바람에 8시가 되어서야 안탈리아의 숙소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카파도키아에서 거의 10시간을 달려 온 셈이다.

참고자료

(1) 유네스코와 유산. 차탈회위크 신석기 유적지.
(2) Wikipedia, Sufi whirling. https://en.wikipedia.org/wiki/Sufi_whir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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