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16~17]
[16]회진 가이딩
매일 아침 교수님들은 회진을 도는데 소화기내과(GI, gastrointestinology) 인턴들은 그 회진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과 인턴들도 회진을 도는 데 참여한다. 하지만 GI 인턴에게 회진 가이딩은 하루의 주 업무처럼 느껴진다.
회진가이딩이란 각 병동과 병실에 위치한 담당 환자들을 최소한의 동선으로 파악해서 안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진 명단을 보고 동선을 머릿속에서 그린다.
교수님이 바로 탈 수 있게 엘리베이터를 미리 잡아두고, 환자를 침대에 눕히고 준비하는 일을 한다. 어두운 병실은 형광등을 켜고 가려진 커튼을 연다거나 텔레비전을 끄기도 한다. 한마디로 교수님이 입원 환자를 진찰하는 데 있어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명씩 환자들이 입원하고 퇴원하기 때문에 인턴은 교수님이 회진 돌기 30여 분 전에 명단을 보고 미리 돈다. 환자들에게 자리를 비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검사나 시술을 가서 자리를 비운 환자를 확인해둔다.
그렇지만 입원 환자가 30~40명에 육박할 정도로 많을 때는 각 병동에 산재해 있을 때가 많아 동선 짜기가 쉽지 않다.
교수님, 수석 전공의, 주치의, 인턴 이렇게 이루어지는 회진 구성원은 다행스럽다. 간혹 실습 학생들이 있거나 전문 간호사, 임상강사 선생님들까지 회진을 돌면 무려 10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인턴이 이끌어야 한다. 마치 척후병이 되어 전장을 살피게 되는 것이다. 혹여 길을 잘못 들거나 병실에 찾아갔는데 환자가 없으면 누군가 나를 조종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병실에서 병실로 이동할 때는 다람쥐보다 재빨라야 한다. 병실로 들어가서 열심히 준비하고 다음 이동을 위해 문 밖으로 미리 빠져나와야 회진이 수월하다. 교수님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 뒤에는 10여 명의 의료진이 인턴 길을 막고 있는 상황이 온다. 그때는 구석에 꼼짝 못하고 있다가 요리조리 피해서 다시금 회진의 선두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빠릿빠릿한 인턴의 기본은 무엇보다 건물의 구조를 파악하고 길을 잘 안내하는 공간구성 능력에 달려 있다.
[17]혈액 배양과 역신
채혈이 손에 익어도 여전히 하기 싫은 검사가 있으니 바로 혈액 배양(Blood Culture) 검사다. 다른 채혈에 비해 시간도 2~3배 걸리고, 환자도 여러 번 바늘에 찔려야 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이 검사는 서로 다른 둘 혹은 세 혈관에서 따로 채혈하는 것이 원칙이다. 혹여 채혈 도중 피부상재균에 검체가 오염이 되지 않게 멸균 장갑도 낀다. 하얀 알코올 솜이 아닌 빨간 베타딘 소독제를 이용하여 채혈 부위도 소독한다.
혈액 배양 검사는 감염의 징후가 보이는 경우, 항생제를 쓰기 전 혹은 쓰면서 시행한다. 보통 입원 환자가 열이 나는 경우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가 잦다. 병동의 많은 환자들이 언제 열이 나는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당직인 야밤과 새벽에 혈액 배양 검사 오더가 많이 나오는 경우는 운이 안 좋은 날이다.
별명이 '역신'(疫神)인 동기가 있었다. 3월 첫 근무를 강릉에서 하면서 트랜스퍼를 가야하는데 장기 입원 환자가 호흡이 좋지 않아 계속 앰부를 짜면서 가야했단다. 혹시라도 응급상황이 발생할까 봐 손가락이 마비되도록 앰부를 짜면서 2시간이 걸려 요양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웬걸, 도착한 요양 병원에는 인공호흡기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 다시금 손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앰부를 짜면서 강릉으로 돌아왔단다. 더군다나 오는 길에 대관령에서 앰뷸런스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한밤중 고요하게 앰부를 짜면서 기다렸던 이야기를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다.
그 친구가 당직을 서던 날, 잠시 검사킵을 하러 내려간 사이 병동으로 돌아오니 혈액 배양 검사 오더가 한꺼번에 일곱 쌍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밀려 있던 검사를 하니 그 사이에 세 쌍의 오더가 더 기다렸단다. 결국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혈액 배양 검사만 했다고 한다.
보통 당직을 서더라도 150~200명의 환자들 사이에서 혈액 배양 검사는 많아봐야 1~4쌍 정도에 머문다. 하지만 그 동기가 당직을 서는 날이면 그 날은 유독 혈액 배양 검사가 많았다. 그래서 동기의 별명은 역신이 되었다. 그 동기가 병동에 들어서면 역병이 일어난 것처럼 많은 혈액 배양 검사 오더가 기다렸기 때문이다.
<18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교수님들은 회진을 도는데 소화기내과(GI, gastrointestinology) 인턴들은 그 회진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과 인턴들도 회진을 도는 데 참여한다. 하지만 GI 인턴에게 회진 가이딩은 하루의 주 업무처럼 느껴진다.
회진가이딩이란 각 병동과 병실에 위치한 담당 환자들을 최소한의 동선으로 파악해서 안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진 명단을 보고 동선을 머릿속에서 그린다.
교수님이 바로 탈 수 있게 엘리베이터를 미리 잡아두고, 환자를 침대에 눕히고 준비하는 일을 한다. 어두운 병실은 형광등을 켜고 가려진 커튼을 연다거나 텔레비전을 끄기도 한다. 한마디로 교수님이 입원 환자를 진찰하는 데 있어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명씩 환자들이 입원하고 퇴원하기 때문에 인턴은 교수님이 회진 돌기 30여 분 전에 명단을 보고 미리 돈다. 환자들에게 자리를 비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검사나 시술을 가서 자리를 비운 환자를 확인해둔다.
그렇지만 입원 환자가 30~40명에 육박할 정도로 많을 때는 각 병동에 산재해 있을 때가 많아 동선 짜기가 쉽지 않다.
교수님, 수석 전공의, 주치의, 인턴 이렇게 이루어지는 회진 구성원은 다행스럽다. 간혹 실습 학생들이 있거나 전문 간호사, 임상강사 선생님들까지 회진을 돌면 무려 10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인턴이 이끌어야 한다. 마치 척후병이 되어 전장을 살피게 되는 것이다. 혹여 길을 잘못 들거나 병실에 찾아갔는데 환자가 없으면 누군가 나를 조종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병실에서 병실로 이동할 때는 다람쥐보다 재빨라야 한다. 병실로 들어가서 열심히 준비하고 다음 이동을 위해 문 밖으로 미리 빠져나와야 회진이 수월하다. 교수님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 뒤에는 10여 명의 의료진이 인턴 길을 막고 있는 상황이 온다. 그때는 구석에 꼼짝 못하고 있다가 요리조리 피해서 다시금 회진의 선두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빠릿빠릿한 인턴의 기본은 무엇보다 건물의 구조를 파악하고 길을 잘 안내하는 공간구성 능력에 달려 있다.
[17]혈액 배양과 역신
채혈이 손에 익어도 여전히 하기 싫은 검사가 있으니 바로 혈액 배양(Blood Culture) 검사다. 다른 채혈에 비해 시간도 2~3배 걸리고, 환자도 여러 번 바늘에 찔려야 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이 검사는 서로 다른 둘 혹은 세 혈관에서 따로 채혈하는 것이 원칙이다. 혹여 채혈 도중 피부상재균에 검체가 오염이 되지 않게 멸균 장갑도 낀다. 하얀 알코올 솜이 아닌 빨간 베타딘 소독제를 이용하여 채혈 부위도 소독한다.
혈액 배양 검사는 감염의 징후가 보이는 경우, 항생제를 쓰기 전 혹은 쓰면서 시행한다. 보통 입원 환자가 열이 나는 경우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가 잦다. 병동의 많은 환자들이 언제 열이 나는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당직인 야밤과 새벽에 혈액 배양 검사 오더가 많이 나오는 경우는 운이 안 좋은 날이다.
별명이 '역신'(疫神)인 동기가 있었다. 3월 첫 근무를 강릉에서 하면서 트랜스퍼를 가야하는데 장기 입원 환자가 호흡이 좋지 않아 계속 앰부를 짜면서 가야했단다. 혹시라도 응급상황이 발생할까 봐 손가락이 마비되도록 앰부를 짜면서 2시간이 걸려 요양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웬걸, 도착한 요양 병원에는 인공호흡기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 다시금 손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앰부를 짜면서 강릉으로 돌아왔단다. 더군다나 오는 길에 대관령에서 앰뷸런스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한밤중 고요하게 앰부를 짜면서 기다렸던 이야기를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다.
그 친구가 당직을 서던 날, 잠시 검사킵을 하러 내려간 사이 병동으로 돌아오니 혈액 배양 검사 오더가 한꺼번에 일곱 쌍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밀려 있던 검사를 하니 그 사이에 세 쌍의 오더가 더 기다렸단다. 결국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혈액 배양 검사만 했다고 한다.
보통 당직을 서더라도 150~200명의 환자들 사이에서 혈액 배양 검사는 많아봐야 1~4쌍 정도에 머문다. 하지만 그 동기가 당직을 서는 날이면 그 날은 유독 혈액 배양 검사가 많았다. 그래서 동기의 별명은 역신이 되었다. 그 동기가 병동에 들어서면 역병이 일어난 것처럼 많은 혈액 배양 검사 오더가 기다렸기 때문이다.
<18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