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급 의료용클립 업체의 기만·비윤리에 분노"

손의식
발행날짜: 2017-08-07 14:00:44
  • 외과 교수의 고백 "의사들 아무 것도 모른 채 십수년간 허가 외 사용"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국내에서 소위 빅5로 꼽히는 대학병원 중 한 곳에서 외과 교수로 근무 중이며 복강경 수술을 주로 하고 있다.

수술장에서 쓰이는 대표적 치료 재료 중 하나로 의료용 클립이 있다. 주로 지혈을 목적으로 결찰에 사용된다. 예전에는 외과의사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봉합술이었지만 의료용 클립이 나온 후로 안전하고 신속한 봉합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의료용 클립과 관련해 충격적인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됐다. 의료용 클립에는 크게 2등급과 3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2등급은 의료용 일반클립은 혈관, 조직 또는 수술부위를 접속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로, 영구이식은 제외된다(non-implantable). 즉, 체내에 둘 수 없다는 것이다.
3등급 비흡수성 수술용클립은 절개 후 피부 또는 조직을 접속하거나 출혈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수술 후 체내에 이식이 가능하다.(implantable)

중요한 점은 지금까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의사들이 이같은 차이를 모른채 2등급 의료용 클립을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즉, 혈관을 결찰하는데 있어 2등급 의료용 클립을 허가 외로 사용한 것.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국적기업의 제품인만큼 의심없이 사용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2등급 제품의 표기사항을 구해 읽어봤다. 제품의 표기사항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전문의의 책임 하에 환자의 적절한 선택, 적당한 훈련, 이식물의 선택 및 배치에 대한 경험, 수술 후 이식물의 유지 및 제거에 대해 결정한다"

쉽게 말해, 2등급 의료용 클립을 체내에 유지하는데 있어 전문의의 책임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2등급 의료용 클립이라면 '수술 후 이식물의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돼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애모모호한 문구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이 십수년을 아무 의심없이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내가 의료용 클립을 쓰는 것을 본 것은 2002년 S대병원 수술장에서 였으니까 얼추 15년 정도 됐다. 그 오랜 기간동안 2등급 의료용 클립의 허가와 책임을 모른 채 썼던 것이다.

의료용 클립의 허가에 대해 찾아볼수록 궁금증 투성이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2등급으로 사용하던 의료용클립이 해외에서는 3등급으로 쓰인다는 점도 알게 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3등급으로만 허가가 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3등급으로 허가를 받으면 되는데 왜 같은 제품을 2등급으로 허가받고 있을까.

2등급은 신청 후 10일 이내에 허가가 나오는 반면, 3등급은 ▲아만성 독성시험 ▲유전 독성시험 ▲이식시험 등을 거치는데 비용은 약 3000만원 정도 들고, 허가기간도 65~80일 정도 소요되는 것.

결국 저비용과 시장 선점을 위한 빠른 허가를 목적으로 2등급을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재료란 사람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인데, 더구나 대규모로 많이 쓰이는 봉합 재료가 이처럼 황당하고 부족한 인허가를 통해 시중에 유통되고 오랜 기간 아무렇지도 않게 쓰였던 것이다.

그 동안의 세세한 문제는 의료사고로 치부돼 의사가 책임지거나 병원이 민사로 해결해왔던 것 아닌가. 결국은 사고가 나도 입증이 어려워 소리없이 넘어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 중에는 기계적 오류도 있었을 것이다.

업체가 체내에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등급을 받고 문제 생기면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을 빼면, 공무원 입장에서나 법에서는 2등급으로 유통되는 제품을 체내에 남긴 의사에게 과실을 묻게 될 것이 뻔하다.

2등급 의료용 클립 제품의 주의사항
더 심각한 사실은 다른 의사들도 이런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부분 의사들이 의료용 클립의 등급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다. 나도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최종소비자인 의사와 제품을 체내에 이식해야 하는 환자 입장에선 등급을 인지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기업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다.

제품을 독과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편법으로 유통시킨 기업이라면 의료계에서 반드시 응징하고 사장시켜야 할 비양심적 대상이다. 단순한 기구일 뿐이고 이를 등급으로 시시비비 가리냐는 식으로 나온다면 그 기업은 정말 무책임한 기업이다.

환자는 자기 몸에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돈을 낸다. 병원을 믿으니까 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사들이 기구를 쓸 때는 제조 기업이 잘 만들었을 것이라고 믿고 쓴다. 서로 다 믿고 써야 한다. 그런데 병원이 환자의 신뢰를 저버리거나 기업이 소비자의 신뢰를 저버린다면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소급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인허가 비용을 줄이고 빨리 론칭할 목적으로 십수년간 편법을 통해 교묘하게 법망을 피했다면 전부 되짚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만일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대규모 소송감이다. 이미 2등급 의료용 클립을 몸에 넣은 환자 수가 어마어마할텐데 이들이 대규모 소송을 통해 해당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책임을 진다해도 해당 기업에 대한 신뢰는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정수기 회사가 깨끗하고 몸에 좋은 물이라고 광고를 해서 엄청난 매출을 올렸는데 제품에 이상이 확인될 경우 사과와 보상을 해서 시장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경쟁회사가 많다면, 문제 기업이 사과와 보상을 한다해도 다른 회사의 정수기를 구매하게 될 것이다. 지극히 간단한 논리다. 개선을 기다리는 것보다 다른 제품을 사면 그만이다. 신뢰를 잃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의료용 클립도 마찬가지다. 대체할 제품이 없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할 수 없이 또 쓸 수 밖에 없겠지만 대체물이 있다면 소비자는 다른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예를 들어 2등급을 3등급으로 유통하던 회사와 다른 회사가 기존 제품과 다른 제품을 내놨는데 그 제품이 3등급이라면 문제 회사의 3등급을 기다리기보다 처음부터 3등급으로 나온 제품을 쓰는 게 낫다.

신뢰를 잃을만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특히 환자의 안전과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부분으로 비양심적인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장난감이라면 욕하고 화내면 그것으로 끝날 일이지만 사람이 죽을 수 있거나 잘못됐을 경우 책임을 져야 할 주체가 이를 회피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지게 만들었다면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의료용 클립의 등급 문제가 공론화 된다면 의사들의 인식이 바뀌는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병원에서 쓰던 것이니까', '선배의사들이 쓰던 것이니까'하고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다 문제가 되면 본인에게 책임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해당 기사는 빅5 대학병원 중 한 곳의 외과 교수의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으며, 해당 병원과 실명은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익명처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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