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대용량 고집 속 버려지는 항암주사제들

원종혁
발행날짜: 2018-05-24 06:00:53
고가 항암신약의 등장으로 의료비 부담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여전히 관심받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다 쓰지도 못한채 버려지는 항암주사제(바이알)들도 더불어 늘면서, 막대한 의료 비용이 매년 쓰레기통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엔 아직 명확한 집계 자료가 없지만, 조사가 이뤄진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쓰다 남은 항암제 바이알들의 규모가 연간 3조원에 달했다. 또 정부 주도 전수조사를 시행한 일본에서는 매년 폐기되는 항암제 바이알들을 72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건은 전체 항암제 시장 규모에서도 버려지는 항암제들이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공급업자인 제약사들은 이러한 속사정을 모르고 있는걸까?

여기서 제약사들이 유독 '대용량' 항암제 포장을 고집하고 있다는 불편한(?) 의혹이 지목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소용량 품목을 판매하다가도 최근 용량을 2배로 늘린 대용량으로 공급을 대체하면서 눈총을 사기도 했다.

최근 이슈의 중심에 선 면역항암제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면역항암제는 허가 기준상 암환자의 체중을 계산해 투여할 수 있는 용량이 정해졌다. 환자의 체중과 치료 상태를 고려해 적당량을 투약해야 하기 때문에 남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처방권에 진입한 면역항암제 품목들 대부분이 대용량 바이알로만 공급되다 보니 사용하다 폐기되는 규모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 면역항암제는 옵디보주(100mg, 20mg 2개 품목), 키트루다주(100mg), 티쎈트릭주(1200mg)가 처방권에 포진했다.

가령 옵디보의 경우 보험 기준상 몸무게(kg)당 3mg을 2주간격으로 사용한다. 환자가 50kg 이라고 가정했을 때, 150mg 용량의 투약이 필요하다. 이럴 경우 100mg 옵디보주 2개를 사용하고 나머지 50mg은 버리게 되는 셈이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바이알 가격을 고려했을 때, 버려지는 50mg 용량은 의료비 손실 측면에서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다.

취재차 만난 한 대학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어떤 환자분들은 이러한 정보를 알고 일부러 체중을 줄여서 오겠다고도 한다"면서 "이렇게 버려지는 약물 폐기량만 줄여도 수백억원의 의료비가 절감될 수 있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쓰고 남은 항암제가 버려지는데 소요되는 불필요한 의료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와 가입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알고 있다면, 환자와 공익을 앞세우는 제약사들이 이번에는 책임의식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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