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신이 아니다' 분만 중 장애 이례적 무과실 판결

발행날짜: 2018-09-28 06:00:54
  •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서 가족 요구 모두 기각…"최선 다했다면 과실 없다"

분만 중에 신생아가 장애를 입었더라도 의사가 최선을 다해 조치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과실을 물을 수 없다는 확정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의사의 과실이라는 완전한 개연성이 없는 이상 의사가 택한 특정한 진료방법의 결과가 좋지 않은 것만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으로 의사 과실이 0%로 나오는 것은 의료소송에서 이례적인 판결이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최근 분만 중 신생아에게 일어난 장애의 책임을 물어 산모와 남편, 신생아의 언니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로서 지난 2009년부터 시작돼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파기 환송된 이번 사건의 결론은 의사의 무과실로 마무리가 됐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 2009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산전 진찰을 받아오던 산모가 양막이 파열돼 입원하면서 시작됐다.

병원 의사인 A씨는 산모의 자궁경관이 완전히 열였지만 분만이 진행되지 않자 초음파 검사를 시행해 타아가 후방후두위 상태에 있음을 확인하고 자국 수축 정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했지만 특별한 비정상 소견이 보이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의료진은 자궁경관 안쪽으로 태아 머리가 보이자 자궁 상부를 압박하는 방법으로 질식분만을 시도했지만 태아의 머리가 나왔을 뿐 어깨가 걸려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의료진은 산모의 양쪽 다리를 발걸이에 풀어 배까지 끌어올린 자세를 취하게 하고 치골궁에 압박을 가해 태아를 견인하는 방법으로 신생아를 분만했다.

하지만 신생아는 울음이 없고 청색증의 소견을 보이면서 의료진은 기도흡인과 심장마사지, 앰부배깅을 시행했고 이로 인해 산소포화도는 78%에서 82%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울음은 강하지 않았고 양쪽 쇄골 골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의료진은 신생아에게 직경 3mm의 튜브로 기관내 삽관을 시행하고 청진을 했지만 신생아의 산소포화도는 84%에 머물렀고 결국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하게 됐다.

신생아를 인계받은 상급종합병원은 다양한 조치를 취했지만 상세불명의 터너증후군과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 출산 손상으로 인한 머리혈종 등의 진단을 받았고 현재 뇌성마비로 뇌병변 1급 장애로 등록되자 가족들은 의사의 과실을 물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요구를 모두 기각했고 이에 대한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의사의 책임을 40%로 물어 3억 5천여만원의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여기에 대해서도 불복해 대법원에 항고를 제기했고 대법원은 의사의 책임을 찾아볼 수 없다며 2심 판결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재판을 돌려보냈다.

이로 인해 열린 재심 재판부의 판단도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과거 재판부보다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며 원고의 요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분만 과정에서 후방후두위에 대한 조치를 소홀히 했다고 주장하나 분만 2기 동안 태아 하강이 지연됐다고 보기 어렵고 그 사이 태아 심박동수가 자국수축에 비정상 소견이 관찰되지 않았으며 후방후두위의 경우 반드시 수기회전을 시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의료진의 조치가 소홀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못박았다.

또한 기관내 삽관을 지연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신생아가 태어난 직후 울음이 없었다 해서 심정지 상태까지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기도흡인과 심장마사지, 앰부배깅 등을 실시한 것은 당시 상황에서 가장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였다"며 "이후 기관삽관을 했다고 해서 이를 지연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외 신생아의 가족들이 제기한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확고하게 선을 그었다. 의료진의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기관내 삽관을 부적절하게 시행했다고 주장하지만 신생아 기관 삽관은 3mm 튜브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만큼 의사가 이를 사용했다고 해서 부적절하게 의료행위를 했다는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관내 삽관 후 경과 관찰 및 후속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주장에도 "의료진이 시행한 기관내 삽관에도 불구하고 신생아의 산소포화도가 낮게 나타난 것은 호흡관리에 대한 문제보다는 기질적 원인에 의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결국 의료진에 과실로 신생아게에 뇌손상이 일어났다는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마지막으로 원고가 제기한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가족들의 주장을 모두 일축했다.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들로 항소를 제기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신생아의 뇌손상 결과가 의료진의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상 자기결정권이 문제될 여지는 없다고 본다"며 "분만과 관련한 설명의무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의료분쟁에서는 이례적으로 의료진의 과실을 묻지 않은 채 완전히 가족들의 주장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의사가 자신이 시행한 의료행위의 무과실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을 살펴볼때 가족들의 항소는 이유가 없는 만큼 모두 기각한다"며 "항소 제기 이후의 소송 비용을 모두 가족이 부담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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