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개원의협의회 좌훈정 보험부회장
지난 30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 왕진 시범사업 계획 등을 담은 '재택의료 활성화 방안'을 보고했다. 복지부는 지난 9월 건정심에 '재택의료 활성화 및 왕진·가정간호 내실화 추진 방안'을 보고했으나, 다수 건정심 위원들이 이의를 제기해 결론을 내지 못했었고, 이에 소위원회로 내려 다시 심의한 뒤 올린 안을 보고하고 사업추진 계획을 결정한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성명서를 내어 반발했다. 의료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확정된 왕진 시범사업 안은 당초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것보다 왕진수가 수준, 재정투입 규모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왕진료는 60분 기준 8만원, 1시간 반 11만5000원으로 낮아졌고, 후자는 별도행위료를 산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더욱 낮아졌다.
또 동일 건물·세대 방문 시 왕진료를 삭감하여 지급하는 방안도 도입됐다. 왕진료 산정횟수도 줄어들었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의사 1인당 1주에 21회까지 왕진을 인정하도록 제안했으나, 건정심은 의사 1인당 산정횟수를 15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 결과 새 모형을 반영하여 책정된 왕진수가 시범사업 재정은 142억에서 최대 355억원으로 추산됐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이번에 확정된 왕진수가 시범사업 계획에서 참여기관을 '의료기관'으로 적시함으로써, 당초 그 대상을 ‘의원급 의료기관’만으로 한정했던 것을 여타 직역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성 없는 왕진 수가
복지부는 1시간 반 기준 11만5000원의 왕진료는 약 10km 이동거리를 감안한 교통비와 해당 시간의 기회비용 등 방문료를 포함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초 왕진료에 더 해서 청구할 수 있게 되어있었던 별도행위료의 산정이 금지됐다. 즉 각종 처치나 시술료 등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60분 기준 8만원의 수가를 청구할 경우 별도행위료 산정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지만, 현장에서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과연 무엇을 별도로 산정할 수 있고 또는 안 되는지.
필자도 예전에 간혹 왕진 진료를 했던 의사로서 이번에 결정된 왕진 수가가 현실성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진료과나 의원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성질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동네 의원에서 60분 동안 내원하는 환자 수가 대략 8~10명 정도 된다(물론 편차는 더 있다). 올해 의원 진찰료는 초진 1만5890원, 재진 1만1410원이다. 단순히 진찰료만 따져도 계산이 맞지 않는다. 자기 진료실에서 편안히 환자를 보는 것의 절반(또는 그 이하)의 수가를 받고 왕진을 나가고 싶을까. 게다가 원장이 왕진을 다녀오는 동안 대기하게 될 외래 환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원장이 홀로 근무하는 의원은 현실적으로 왕진이 어렵고 2인 이상 의사가 근무하는 경우 제한적으로 왕진이 시행될 수 있겠지만 그나마도 경제적인 동기를 부여받기 힘들어 보인다. 그 결과 의사를 여러 명 둘 수 있는 규모가 있는 의원에서만 왕진사업을 하게 되거나, 의원급 의료기관의 참여 부진을 이유로 병원까지 확대된다면 당초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재택의료 활성화 차원에서 왕진사업을 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실효성 있는 왕진 사업이 되려면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왕진 요청은 대개 만성중증질환자들의 정기적 또는 반복적인 진료나 관리보다는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 의료기관 방문이 힘들 경우 재가에서 수액치료 등을 편안히 받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단순한 진찰보다는 치료가 즉시 이루어져야 하기 마련이고, 의료기관 이송이 힘들 경우 의사의 판단 하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왕진수가가 적절히 보상되지 않으면 의사는 왕진을 나가기보다는 의료기관 이송을 권할 수밖에 없다(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수가뿐만이 아니다. 많은 의사들은 요즘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의료진에 대한 폭력사건 등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의료기관 내에서의 폭력도 무서운데 낯선 장소로 나가는 왕진에 대한 거부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왕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복지부나 건정심이 왕진사업을 활성화시키고자 한다면 이런 문제점도 거론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동기 부여를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면은 찾아 볼 수 없다.
복지부는 "의원급 왕진 시범사업과 관련해서 의협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한 것이며, 건정심 대면회의와 소위원회 등 3번 회의 모두 의협은 안 나왔다"고 말한다. 듣기 거북하지만 사실이며 따가운 얘기다.
만약 의협이 건정심에서 위의 얘기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왕진 시범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 우리의 합리적인 의견을 무시한 건정심의 책임이다"라고 했으면 이번처럼 쉽게 통과가 됐을까.
현장에 나가보지 않고 주로 학자나 공무원들이 탁자 위에서만 펼치는 헛된 논설로서 실현성이 없는 허황된 이론을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고 한다. 이번의 왕진 시범사업 모형이나 수가 또한 그렇다. 왕진사업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그 주체인 왕진을 나가는 의사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진료 현장 의사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이번 결정은 탁상공론도 아닌 탁하공론(卓下空論)이다.
설령 의사의 공식적인 의견 표명이 충분치 않았다고 해도,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의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왕진은 의사에게 매우 부담스럽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왕진을 활성화 하려면 가능한 그 간극을 좁혀야 한다.
지금이라도 보건 당국은 왕진 시범사업 계획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현실성 있는 수가와 더불어 왕진에 따르는 의료분쟁의 가능성이나 의료진의 안전 등 법적 안전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법제도 마련과 더불어 ‘안전관리료’ 등의 신설도 검토해볼만 하다). 어떤 정책 사업이든 성공하려고 시범사업도 하는 것이지 일부러 실패하려고 하는 건 없다. 어서 실효성 있는 제도 설계에 나서기 바란다.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성명서를 내어 반발했다. 의료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확정된 왕진 시범사업 안은 당초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것보다 왕진수가 수준, 재정투입 규모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왕진료는 60분 기준 8만원, 1시간 반 11만5000원으로 낮아졌고, 후자는 별도행위료를 산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더욱 낮아졌다.
또 동일 건물·세대 방문 시 왕진료를 삭감하여 지급하는 방안도 도입됐다. 왕진료 산정횟수도 줄어들었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의사 1인당 1주에 21회까지 왕진을 인정하도록 제안했으나, 건정심은 의사 1인당 산정횟수를 15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 결과 새 모형을 반영하여 책정된 왕진수가 시범사업 재정은 142억에서 최대 355억원으로 추산됐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이번에 확정된 왕진수가 시범사업 계획에서 참여기관을 '의료기관'으로 적시함으로써, 당초 그 대상을 ‘의원급 의료기관’만으로 한정했던 것을 여타 직역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성 없는 왕진 수가
복지부는 1시간 반 기준 11만5000원의 왕진료는 약 10km 이동거리를 감안한 교통비와 해당 시간의 기회비용 등 방문료를 포함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초 왕진료에 더 해서 청구할 수 있게 되어있었던 별도행위료의 산정이 금지됐다. 즉 각종 처치나 시술료 등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60분 기준 8만원의 수가를 청구할 경우 별도행위료 산정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지만, 현장에서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과연 무엇을 별도로 산정할 수 있고 또는 안 되는지.
필자도 예전에 간혹 왕진 진료를 했던 의사로서 이번에 결정된 왕진 수가가 현실성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진료과나 의원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성질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동네 의원에서 60분 동안 내원하는 환자 수가 대략 8~10명 정도 된다(물론 편차는 더 있다). 올해 의원 진찰료는 초진 1만5890원, 재진 1만1410원이다. 단순히 진찰료만 따져도 계산이 맞지 않는다. 자기 진료실에서 편안히 환자를 보는 것의 절반(또는 그 이하)의 수가를 받고 왕진을 나가고 싶을까. 게다가 원장이 왕진을 다녀오는 동안 대기하게 될 외래 환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원장이 홀로 근무하는 의원은 현실적으로 왕진이 어렵고 2인 이상 의사가 근무하는 경우 제한적으로 왕진이 시행될 수 있겠지만 그나마도 경제적인 동기를 부여받기 힘들어 보인다. 그 결과 의사를 여러 명 둘 수 있는 규모가 있는 의원에서만 왕진사업을 하게 되거나, 의원급 의료기관의 참여 부진을 이유로 병원까지 확대된다면 당초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재택의료 활성화 차원에서 왕진사업을 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실효성 있는 왕진 사업이 되려면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왕진 요청은 대개 만성중증질환자들의 정기적 또는 반복적인 진료나 관리보다는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 의료기관 방문이 힘들 경우 재가에서 수액치료 등을 편안히 받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단순한 진찰보다는 치료가 즉시 이루어져야 하기 마련이고, 의료기관 이송이 힘들 경우 의사의 판단 하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왕진수가가 적절히 보상되지 않으면 의사는 왕진을 나가기보다는 의료기관 이송을 권할 수밖에 없다(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수가뿐만이 아니다. 많은 의사들은 요즘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의료진에 대한 폭력사건 등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의료기관 내에서의 폭력도 무서운데 낯선 장소로 나가는 왕진에 대한 거부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왕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복지부나 건정심이 왕진사업을 활성화시키고자 한다면 이런 문제점도 거론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동기 부여를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면은 찾아 볼 수 없다.
복지부는 "의원급 왕진 시범사업과 관련해서 의협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한 것이며, 건정심 대면회의와 소위원회 등 3번 회의 모두 의협은 안 나왔다"고 말한다. 듣기 거북하지만 사실이며 따가운 얘기다.
만약 의협이 건정심에서 위의 얘기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왕진 시범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 우리의 합리적인 의견을 무시한 건정심의 책임이다"라고 했으면 이번처럼 쉽게 통과가 됐을까.
현장에 나가보지 않고 주로 학자나 공무원들이 탁자 위에서만 펼치는 헛된 논설로서 실현성이 없는 허황된 이론을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고 한다. 이번의 왕진 시범사업 모형이나 수가 또한 그렇다. 왕진사업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그 주체인 왕진을 나가는 의사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진료 현장 의사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이번 결정은 탁상공론도 아닌 탁하공론(卓下空論)이다.
설령 의사의 공식적인 의견 표명이 충분치 않았다고 해도,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의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왕진은 의사에게 매우 부담스럽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왕진을 활성화 하려면 가능한 그 간극을 좁혀야 한다.
지금이라도 보건 당국은 왕진 시범사업 계획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현실성 있는 수가와 더불어 왕진에 따르는 의료분쟁의 가능성이나 의료진의 안전 등 법적 안전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법제도 마련과 더불어 ‘안전관리료’ 등의 신설도 검토해볼만 하다). 어떤 정책 사업이든 성공하려고 시범사업도 하는 것이지 일부러 실패하려고 하는 건 없다. 어서 실효성 있는 제도 설계에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