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백 코로나 사태...'환자'와 '병원' 중 어느 쪽이 문제?

발행날짜: 2020-03-10 05:45:59
  • 문제 주체 놓고 갑론을박...대형병원 감염병 대응 한계는 여전
    의료진들 "감염병 대응 잘해도 거짓말하면 대책 없어" 처분 강조

서울백병원에 대구지역 거주 사실을 숨긴 환자가 문제일까. 환자가 자신의 거주지역을 숨길수 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한 의료기관이 문제일까.

최근 서울백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고령의 여성환자(78세)를 두고 의료계 내에서는 갑론을박이 뜨겁다.

'대구지역 환자' 방역 강화한 대형 대학병원

9일 서울백병원 의료진 등 병원계에 따르면 해당 환자는 구토, 복부 불편감 등의 소화기 증상을 호소하며 기존에 다니던 소위 빅5로 구분하는 A대형 대학병원에 찾았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하지만 대구지역에서 왔다고 밝히자 입구에서 선별진료소를 거쳐서 출입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후 동네의원을 거쳐 보건소를 들렀지만 소화기증상은 검사대상이 아니라며 거절당했다. 결국 돌고 돌아 해당 환자는 대구지역 환자임을 속이고 서울백병원에 입원했다.

A대학병원은 철저하게 방역시스템을 갖춘 것이 환자가 대구지역 거주자임을 밝히지 않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선 "이번 사건은 대형 대학병원의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 셈"이라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해당 병원들은 평소 90%이상의 높은 병상가동률은 자랑하는 의료기관으로 코로나 시국이지만 감염병 환자를 대거 수용할 정도의 여유 병상은 확보할 수 없는 실정. 해당 병원 의료진은 "워낙 중증도 높은 환자가 많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가령, 코로나19 발병률이 집중된 대구지역 환자가 내원한 경우 타 의료진과 환자와 격리된 상태에서 감염 여부를 판단하려면 병상을 비워야한다. 5명이 한꺼번에 올 경우 1인실 5병상을, 4인실의 경우 20명의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상당수 대형 대학병원은 일단 출입구에서 중국, 대구 등 환자 발생이 많은 지역을 다녀온 환자는 선별진료소를 거쳐서 감염여부를 확인한 이후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있다.

하지만 진료를 위해 내원한 환자 입장에선 선별진료소를 통해 확진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일부는 당일 진료가 어려워지면서 환자들은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모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대형 대학병원은 감염병 확산에 있어 하드웨어적인 한계가 있다"며 "병상가동률이 90%이상인데 감염병 환자를 수용할 선제격리병상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고 전했다.

그는 이어 "사실 해당 A대학병원이 선제격리병상을 확보해 대구지역 환자는 일단 격리된 공간에서 감염여부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대응했으면 서울백병원이 이번 사태가 터지는 일은 차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평소 병상을 풀가동하는 대형 대학병원에 감염병 환자를 위한 병상을 별도로 운영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방 국립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소위 돈되는 환자만 가려서 보는 대형 대학병원의 문제점 감염병 사태에서 드러난 측면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당 병원만 탓할 순 없다는 게 상급종합병원 시각이다.

모 대학병원 기조실장은 "앞서 메르스 사태 이후 국내 대형대학병원인 삼성서울병원이 폐쇄되고 이후 어떻게 보상받는지 모두 지켜본 상황에서 감염병에 대해 과도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형병원에선 병원이 폐쇄돼 손실을 감당하느니 방역을 강화해서 욕먹는 편을 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게 한국 상급종합병원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의료진에 거짓말한 환자…대책이 없다

또한 환자의 거짓말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일선 대학병원 의료진들은 환자가 의도적으로 사실을 숨긴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봤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수도권 모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나에게 이와 같은 환자가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환자가 작정하고 숨기면 의료진은 속수무책일수 밖에 없다"며 "이는 방역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감염병 시국에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환자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처분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개인을 넘어 방역 대응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의료관련감염학회 엄중식 정책이사는 "감염병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거짓말과의 싸움"이라며 "이와 더불어 공포, 혐오, 차별이 감염병 사태에서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환자의 거짓말에 대한 대안은 사실상 없다고 봤다.

실제로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DUR 시스템을 통해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밀접접촉자 여부와 중국 등 코로나19 오염지역 출‧입국 여부를 일선 의료기관에 안내하고 있지만 대구 이력 여부는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심평원 관계자는 "DUR 시스템을 통해 현재는 코로나19 확진환자의 접촉자 명단만을 제공하고 있다. 대구 이력이나 신천지 신자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며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제공받는 정보자체가 비식별이기 때문에 이를 구체적으로 제공하기 힘들다. 시스템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재 검토된 바 없다"고 전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서울백병원 의료진은 사태가 확산되는 것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다행히 환자, 의료진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 큰 파장은 없을 듯 하다"며 "이는 의료기관도 환자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태이다보니 발생한 일이다. 병원, 환자 양측의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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