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근 서울시 백암정신병원 진료원장
다이어리를 들춰보니, 가족과 병원 직원을 제외한 외부 사람을 밖에서 만난 것은 2월 19일이 마지막이다. 이후론 정말 아무도 안만났고 모든 약속을 취소했다. 한달 넘게 소위 말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외부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난 그날이 바로 청도대남병원의 정신과 병동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확인된 그 당일이었다. 그날 만난 사람은 정신과 개업의인 친구였고 나는 경기도 근교의 만성정신병원 봉직의인지라, 둘 다 정신과 병동의 상황을 잘 아는 터였다. 당시만 해도 상황이 이 정도는 아니었기에, 우리는 '이러다 정말 큰 일 나는 거 아니냐'며 걱정 섞인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곤 모두가 다 알다시피 정말 큰일이 났다.
청도의 그 병원에선 정신병동 입원 환자 가운데 2명을 제외한 100여명의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이 통째로 코호트 격리가 되었고,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들불처럼 번져서 수천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대구시 전체가 패닉에 빠졌고, 병원엔 하루가 멀다하고 도와 시와 보건소와 복지부에서 공문이 쏟아졌다. 경기도에선 '여건이 되는 병원에선 예방적 코호트 격리를 시행하라'는 주문까지 내려왔다.
집에 왔더니 아직 어린 아들이 걱정스레 묻는다. 아빠 병원 코호트 되면 2주 동안 집에도 못오는 거냐고. 병원에서 열심히 막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짐짓 웃으며 아이를 안심시켰지만, 불안한 마음은 의사인 아빠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자려고 누우면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말 예방적 코호트까지 해야되는 것일까. 오늘 가볍게 기침을 하길래 코푸시럽을 처방했던 그 환자는 당장 선별 진료소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
병원도 병원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간이 얼추 한 달을 향해 가자, 주변에서 온통 곡소리가 넘쳐난다. 개학도 연기되고 친구도 못만나는 아이는 하루 종일 집에 갇혀서 답답한 몸을 배배 꼰다. 개학날을 기다리던 것이 어디 우리 아이뿐일까. 같은 처지인 온동네 아이들도,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 지친 그 부모들도 한정 없이 길어지는 개학 연기와 보육에 몸살을 앓는다. 도서관도 셧다운, 체육 센터도 셧다운, 학원도, 가게도, 마트도, 동네 의원도, 이용자는 가지를 못해서, 운영자는 오는 사람이 없어서 난리가 났다.
나 역시 퇴근하면 한 가정의 가장이니까, 하루 종일 집에서 답답했을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그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아내를 위로하기도 한다.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의사인지라, 이번 코로나 사태로 제일 힘든 것은 역시 병원의 일이다. 우리 병원도 건물 밖에 외래 진료소를 따로 차리고 거기서 외래 환자를 본지 벌써 여러 주 되었다.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장기입원 환자가 많은 환경이라 외부로부터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정신과 면담은 환자의 말뿐 아니라 표정도 중요한데, 의사도 환자도 눈만 남기고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면담을 하고 있으니 그 또한 쉽지 않다. 빨리 이 어색한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 면회실을 임시로 개조한 이 낯선 방이 아니라 익숙한 내 방에서 진료하고 싶은 마음이다.
한달에 한번씩 방문하는 정호씨(가명)가 내원했다. 정호씨는 조현병 환자다. 오래 입원 생활을 하다가, 다행히 환청과 망상 같은 양성 증상이 많이 줄어 퇴원하여 통원 치료한지 일년 남짓되었다.
양성 증상은 호전되었다지만 사회적 철퇴나 무감동증 같은 음성 증상은 여전하기 때문에, 나는 한달에 한번 진료 때마다 정호씨의 사회활동을 체크하고 격려한다. '집안에만 계시지 말고 친구도 만나고 정신보건센터도 다니세요'라고.
그런데 이번엔 '어디 나가시지 말고 집에 계시면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줄이세요'라고 권유하려니, 이것 참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이 난감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런데 가만 보니, 정호씨가 꽤 짱짱한 새 KF 94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정호씨는 핸드폰 앱을 보고 출생년도 뒷자리에 맞춰 마스크 여분이 있는 약국을 찾아가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살 정도의 기능이 안되는 만성 조현병 환자다. 같이 사는 가족도 없고, 친척은 있지만 이 시국에 정호씨를 챙길만큼 미더운 사이도 아닌 것으로 안다. 우리 병원에서 진료용으로 지급한 것도 아니다. 환자에게 지급할 KF 마스크가 동이 난지는 한참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오지 않은 외래 환자들에게만 덴탈 마스크를 겨우 지급하고 있다. 외래가 별로 없는 입원 위주 병원 특성상 가능한 일이다. 그나마도 언제 동날지도 모른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마스크를 용케 구하셨네요? 정호씨의 대답은, '면사무소에서 매주 와서 몇 개씩 줘요.' 정호씨는 정신 장애인 등록이 되어 있고,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되어 있는 사람이다. 아 그렇구나. 이 상황에서도 어쨌거나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든 이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광명에 사는 어떤 임산부가 보건소에서 우편함에 꽃아 놓고 간 KF94 마스크 다섯 매를 받았다는 소식도 인터넷 게시물로 봤다. 임산부는 희귀난치성 질환자 등과 더불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마스크를 따로 지급을 받는 모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초유의 사태. 정부의 방침은 때론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허술한 빈 틈이 수두룩하기도 하다. 하지만 병원뿐만 아니라 정은경 본부장으로 대표되는 질본이, 면사무소가, 정신보건센터가, 그리고 많은 관공서가 '사람을 갈아넣어가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순간순간 느낄 때가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아우성과 관리들의 실언 속에서, 병원에서도, 관공서에서도, 우리는 어쨌거나 '버티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조직인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얼마 전 '국민을 위한 마음 건강 지침'을 발표했다.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버티고 있는 국민들에게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조언을 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불안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혐오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불확실함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세요', '가치 있고 긍정적인 활동을 유지하세요', '주변에 아프고 취약한 분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가족과 친구, 동료와 소통을 지속하세요', '규칙적인 생활을 하세요', '서로 응원해주세요'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이지만 좀 허탈하기도 하다. 그걸 누가 몰라? 이건 마치 '국영수를 중심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고 사교육 보다는 학교 수업에 충실했으며 주말에는 운동과 음악 감상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라는 수능 만점자의 답변 같잖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결국 뻔하고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수능 만점자가 가진 비결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쉽지 않은 저 이야기를 실천하는 것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듯, 이 전대미문의 재앙을 건너가는 우리의 마음을 달래는 방법에도 다른 비결이 있을 수 없다.
어떻게든 '함께' 이겨내는 것, 개인적으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기 감정을 받아들이고, 집단적으론 상대를 혐오하지 말고 소통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버텨내는 것, 언제나 재난을 건너가는 마음의 황금율은 이것이다.
오늘도 방송에선 '갈아넣어지고 있는' 대구의 의료진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젖먹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나온 간호사의 이야기, 방호복 안에서 비오듯 쏟아낸 땀으로 탈진한 의사 이야기, 임관식도 하지 못하고 대구에 투입된 신임 간호장교들, 개인의원을 접고 대구에 내려간 개업의 이야기, 염색을 하지 못해 나날이 그 머리가 희어지고 있는 질본 본부장의 수척한 얼굴,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연구진들의 소식, 그리고 안타깝게도 과로로 유명을 달리한 어떤 공무원의 이야기까지.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불안하며, 때로는 의지가 되는 그 모습들.
전쟁에 비유하자면,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는 병원이 최전선이라면, 연구하는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후방의 본진이다. 의료진 못지 않게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이 잘 버텨내길 기원한다.
다시 한번 전쟁에 비유한다면, 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는 노르망디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한 병사들이 아니라 핵폭탄을 개발한 과학자 오펜하이머의 연구실에서 찍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펜하이머가 태평양을 건넌 일본군의 함포 사격 걱정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오지마, 과달카날, 크리스마스 섬에서 전사한 미 해병대 덕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방역 현장에서 '갈아넣어지고 있는' 의료진에게 다시 한번 경의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그 긴 명단의 말단에 작게 적혀 있을 내 이름에게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병원의 모든 동료 의료진들에게도. 우리는 버티고 있고, 버텨낼 것이니까.
공교롭게도 외부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난 그날이 바로 청도대남병원의 정신과 병동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확인된 그 당일이었다. 그날 만난 사람은 정신과 개업의인 친구였고 나는 경기도 근교의 만성정신병원 봉직의인지라, 둘 다 정신과 병동의 상황을 잘 아는 터였다. 당시만 해도 상황이 이 정도는 아니었기에, 우리는 '이러다 정말 큰 일 나는 거 아니냐'며 걱정 섞인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곤 모두가 다 알다시피 정말 큰일이 났다.
청도의 그 병원에선 정신병동 입원 환자 가운데 2명을 제외한 100여명의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이 통째로 코호트 격리가 되었고,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들불처럼 번져서 수천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대구시 전체가 패닉에 빠졌고, 병원엔 하루가 멀다하고 도와 시와 보건소와 복지부에서 공문이 쏟아졌다. 경기도에선 '여건이 되는 병원에선 예방적 코호트 격리를 시행하라'는 주문까지 내려왔다.
집에 왔더니 아직 어린 아들이 걱정스레 묻는다. 아빠 병원 코호트 되면 2주 동안 집에도 못오는 거냐고. 병원에서 열심히 막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짐짓 웃으며 아이를 안심시켰지만, 불안한 마음은 의사인 아빠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자려고 누우면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말 예방적 코호트까지 해야되는 것일까. 오늘 가볍게 기침을 하길래 코푸시럽을 처방했던 그 환자는 당장 선별 진료소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
병원도 병원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간이 얼추 한 달을 향해 가자, 주변에서 온통 곡소리가 넘쳐난다. 개학도 연기되고 친구도 못만나는 아이는 하루 종일 집에 갇혀서 답답한 몸을 배배 꼰다. 개학날을 기다리던 것이 어디 우리 아이뿐일까. 같은 처지인 온동네 아이들도,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 지친 그 부모들도 한정 없이 길어지는 개학 연기와 보육에 몸살을 앓는다. 도서관도 셧다운, 체육 센터도 셧다운, 학원도, 가게도, 마트도, 동네 의원도, 이용자는 가지를 못해서, 운영자는 오는 사람이 없어서 난리가 났다.
나 역시 퇴근하면 한 가정의 가장이니까, 하루 종일 집에서 답답했을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그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아내를 위로하기도 한다.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의사인지라, 이번 코로나 사태로 제일 힘든 것은 역시 병원의 일이다. 우리 병원도 건물 밖에 외래 진료소를 따로 차리고 거기서 외래 환자를 본지 벌써 여러 주 되었다.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장기입원 환자가 많은 환경이라 외부로부터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정신과 면담은 환자의 말뿐 아니라 표정도 중요한데, 의사도 환자도 눈만 남기고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면담을 하고 있으니 그 또한 쉽지 않다. 빨리 이 어색한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 면회실을 임시로 개조한 이 낯선 방이 아니라 익숙한 내 방에서 진료하고 싶은 마음이다.
한달에 한번씩 방문하는 정호씨(가명)가 내원했다. 정호씨는 조현병 환자다. 오래 입원 생활을 하다가, 다행히 환청과 망상 같은 양성 증상이 많이 줄어 퇴원하여 통원 치료한지 일년 남짓되었다.
양성 증상은 호전되었다지만 사회적 철퇴나 무감동증 같은 음성 증상은 여전하기 때문에, 나는 한달에 한번 진료 때마다 정호씨의 사회활동을 체크하고 격려한다. '집안에만 계시지 말고 친구도 만나고 정신보건센터도 다니세요'라고.
그런데 이번엔 '어디 나가시지 말고 집에 계시면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줄이세요'라고 권유하려니, 이것 참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이 난감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런데 가만 보니, 정호씨가 꽤 짱짱한 새 KF 94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정호씨는 핸드폰 앱을 보고 출생년도 뒷자리에 맞춰 마스크 여분이 있는 약국을 찾아가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살 정도의 기능이 안되는 만성 조현병 환자다. 같이 사는 가족도 없고, 친척은 있지만 이 시국에 정호씨를 챙길만큼 미더운 사이도 아닌 것으로 안다. 우리 병원에서 진료용으로 지급한 것도 아니다. 환자에게 지급할 KF 마스크가 동이 난지는 한참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오지 않은 외래 환자들에게만 덴탈 마스크를 겨우 지급하고 있다. 외래가 별로 없는 입원 위주 병원 특성상 가능한 일이다. 그나마도 언제 동날지도 모른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마스크를 용케 구하셨네요? 정호씨의 대답은, '면사무소에서 매주 와서 몇 개씩 줘요.' 정호씨는 정신 장애인 등록이 되어 있고,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되어 있는 사람이다. 아 그렇구나. 이 상황에서도 어쨌거나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든 이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광명에 사는 어떤 임산부가 보건소에서 우편함에 꽃아 놓고 간 KF94 마스크 다섯 매를 받았다는 소식도 인터넷 게시물로 봤다. 임산부는 희귀난치성 질환자 등과 더불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마스크를 따로 지급을 받는 모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초유의 사태. 정부의 방침은 때론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허술한 빈 틈이 수두룩하기도 하다. 하지만 병원뿐만 아니라 정은경 본부장으로 대표되는 질본이, 면사무소가, 정신보건센터가, 그리고 많은 관공서가 '사람을 갈아넣어가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순간순간 느낄 때가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아우성과 관리들의 실언 속에서, 병원에서도, 관공서에서도, 우리는 어쨌거나 '버티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조직인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얼마 전 '국민을 위한 마음 건강 지침'을 발표했다.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버티고 있는 국민들에게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조언을 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불안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혐오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불확실함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세요', '가치 있고 긍정적인 활동을 유지하세요', '주변에 아프고 취약한 분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가족과 친구, 동료와 소통을 지속하세요', '규칙적인 생활을 하세요', '서로 응원해주세요'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이지만 좀 허탈하기도 하다. 그걸 누가 몰라? 이건 마치 '국영수를 중심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고 사교육 보다는 학교 수업에 충실했으며 주말에는 운동과 음악 감상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라는 수능 만점자의 답변 같잖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결국 뻔하고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수능 만점자가 가진 비결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쉽지 않은 저 이야기를 실천하는 것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듯, 이 전대미문의 재앙을 건너가는 우리의 마음을 달래는 방법에도 다른 비결이 있을 수 없다.
어떻게든 '함께' 이겨내는 것, 개인적으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기 감정을 받아들이고, 집단적으론 상대를 혐오하지 말고 소통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버텨내는 것, 언제나 재난을 건너가는 마음의 황금율은 이것이다.
오늘도 방송에선 '갈아넣어지고 있는' 대구의 의료진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젖먹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나온 간호사의 이야기, 방호복 안에서 비오듯 쏟아낸 땀으로 탈진한 의사 이야기, 임관식도 하지 못하고 대구에 투입된 신임 간호장교들, 개인의원을 접고 대구에 내려간 개업의 이야기, 염색을 하지 못해 나날이 그 머리가 희어지고 있는 질본 본부장의 수척한 얼굴,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연구진들의 소식, 그리고 안타깝게도 과로로 유명을 달리한 어떤 공무원의 이야기까지.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불안하며, 때로는 의지가 되는 그 모습들.
전쟁에 비유하자면,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는 병원이 최전선이라면, 연구하는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후방의 본진이다. 의료진 못지 않게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이 잘 버텨내길 기원한다.
다시 한번 전쟁에 비유한다면, 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는 노르망디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한 병사들이 아니라 핵폭탄을 개발한 과학자 오펜하이머의 연구실에서 찍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펜하이머가 태평양을 건넌 일본군의 함포 사격 걱정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오지마, 과달카날, 크리스마스 섬에서 전사한 미 해병대 덕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방역 현장에서 '갈아넣어지고 있는' 의료진에게 다시 한번 경의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그 긴 명단의 말단에 작게 적혀 있을 내 이름에게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병원의 모든 동료 의료진들에게도. 우리는 버티고 있고, 버텨낼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