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초대석 박중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불가항력 의료사고 배상 최우선 과제…근거 자료로 직접 설득 나설 것"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박중신 교수(서울대병원 산부인과)가 대한산부인과학회 제25대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이달부터 임기에 들어갔다.
산부인과계는 저출산, 수가개선, 낙태약 처방권 이슈, 불가항력 의료사고 배상, 전공의 지원율 하락 등 다양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문제는 모두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에 취임한 신임 박 이사장의 역할론에 거는 기대는 클 수 밖에 없다.
그의 해법은 뭘까. 또 여러 현안 중 무엇을 최우선 과제로 보고 있을까. 박 이사장를 만나 산부인과학회가 해결해야할 선결 과제들에 대한 해법을 직접 들어봤다.
▲이달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것 같다.
물론이다. 산부인과가 어렵다고 해서 전공의 지원자도 점점 줄고, 저출산 문제까지 첩첩산중이다. 산부인과는 출산을 담당하는 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산과는 저출산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받았지만 관점을 바꾸면 부인과는 산모들의 고령화로 환자가 되레 늘 수도 있다. 어렵다는 시각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긍정의 힘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여러 언론에서 산부인과를 돕겠다는 취지에서 어려움을 부각시키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되기도 한다. 너무 부정적인 얘기만 나오면 전공 지원이 더 줄어드는 악순화의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장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만 하소연 보다는 긍정의 힘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학술대회에서 6개 현안을 제시했다. 해결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산과에서는 무과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배상 방안 마련을 최대 현안으로 보고 있다. 해법은 어렵지 않다. 명칭에서 보듯 '불가항력적'인 사고다. 의사의 책임이 없는데도 국가가 100% 보상 책임을 떠앉지 않는다면 의사 입장에선 분만실을 접는게 보다 현명한 판단일 수 있다.
산부인과학회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이미 비슷한 제도가 대만,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제도가 왜곡됐다. 인접 국가인 대만과 일본만 해도 분만시 의사들의 과실이 없으면 책임이 면제된다. 한국에선 무과실을 입증해도 의사들이 일부분 책임을 져야하고 보상 재원에서 차지하는 정부 비중도 70%에 그친다. 이 부분이 산부인과를 가장 어렵게 만든다.
저출산으로 현재 연 20만명대로 분만 건수가 줄었다. 20만명 중에 극소수만이 불가항력적인 분만 사고를 겪는다. 많은 건수가 아니다. 정부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즉 의지의 문제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는 2011년 시행된 후 딱 10년이 됐다. 그간 무엇이 변했나. 저출산에 쓰는 예산에 비해 보상금 확대로 인한 재정지출은 무시해도 될 정도의 소규모 액수다.
법 감정 부분도 작용하는 것 같다. 병원에서 일어난 일에 의사들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보통의 법 감정인 것 같다.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발벗고 나설 생각이다. 이사장 타이틀을 내려놓고 직접 발로 뛰려고 한다. 설득 근거를 가지고 입법부부터 행정부까지 만나 설득하겠다. 보상액의 인상 및 무과실 입증 시 의사의 책임 면제 부분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낙태 약물 도입이 발등의 불이 됐다. 처방권을 둘러싸고 여러 과들간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헌법 재판소의 낙태 관련 헌법불합치 판단 이후 낙태 법이 만들어지지 않은 입법 공백 상태다. 낙태는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합법인지도 따지기 애매한 상황이다. 각 당에서 법안을 낸 의원들이 있다. 복지부 담당 부서 등과 법안을 두고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
산부인과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이 있지만 입법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있고, 절충하면서 접점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나성훈 강원대 산부인과 교수가 참고인으로 나서 학회 측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
여성계 쪽에서는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 보고 약국에서 보다 손쉬운 낙태 약 구매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산부인과 의사의 개입이 없는 약품 구입 및 복용은 득보다 실이 크다. 낙태 약 사용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왕 처방을 할 것이라면 안전한 사용에 포커스를 맞추자는 것이다.
전문가의 주의사항을 듣고, 위기 상황 발생 시 병원에 빨리 갈 수 있도록 조치하자는 게 학회의 확고한 생각이다. 이는 직역, 직능 이기주의가 아니다. 국민, 여성의 안전을 위한 주장이기 때문에 입법부부터 국회의원들까지 공감할 수밖에 없다. 타과들도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해외의 산부인과학회들은 낙태 관련 정책 권고안부터 낙태 약 처방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해서 제공하고 있다.
본 학회 역시 자체 안을 만들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낙태를 실질적으로 감소시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개정 방향을 정리했다.
현행 의료법 제15조는 정당한 사유없이 진료 거부를 금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낙태는 다른 문제다. 신념과 같은 비의학적 사유로 낙태를 거부한다고 해도 어떤 불이익이 없도록 하기 위해 '개인의 신념에 따라 인공임신중절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부분의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어 임신 22주 이후 낙태 허용 반대하고 무자격자에 의한 낙태 처벌 강화 등을 촉구하기로 의견을 정리했다. 학회가 먼저 정책 방향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급여확대를 위해 전략적으로 활동하는 학회들이 늘고 있다. 해외 보험 현황 및 약제 보험 적용에 대한 과학적 근거, 재정 추계를 제시하는 등 학회의 활동 및 전략이 고도화되고 있다.
마찬가지다. 학회는 학술이 근본이 된 단체다. 이익단체 성격보다는 공익적 연구 활동을 근간으로 최적의 치료법, 술기 발견 공유 등 공익에 부합하는 활동을 한다. 다만 규제과학이라는 말처럼 입법, 행정에서 과학적 근거 및 절차가 중요시 되고 있다. 무턱대고 보험 확대나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보다는 그에 적합한 논리 및 근거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장을 해야 힘이 실린다.
산부인과학회에서도 무과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액 인상을 위해 재정 추계 작업을 거쳤다. 현재 보상액의 5배 정도로 설정하고 무과실 입증 시 의사 책임을 면제할 때 재정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살폈지만 액수가 불과 100억원 수준 증액에 그쳤다. 감기는 약이 없어도 저절로 치유된다. 감기에 들어가는 약제비의 일부만 재원으로 전환해도 10년째 공회전한 불가항력 의료사고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정부의 의지 문제다. 근거를 가지고 설득 작업에 나서겠다.
▲이사장 임기 내 목표는?
학회 차원에서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 문제가 시급한 과제이지만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사장 임기는 2년으로 짧다. 임기 내 목표로는 의료전달체계 중증도 분류 현실화 및 전공의 수련 시스템 표준화를 설정하고 있다.
산부인과의 의료전달체계 중증도 질환 분류가 잘못돼 있다. 3차 병원은 중증 질환자만 진료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지만 문제는 경증, 중증 분류가 처음부터 잘못돼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학병원급 산부인과는 중증 환자를 받지 않는 게 수익성 측면에서 더 도움이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속된 말로 죽기 직전의 환자들만 '중증'으로 분류된 현 시스템 때문이다.
개인병원이 볼 수 있는 질환, 중등도는 중증으로 인정을 안 한다. 경증, 중등도 환자를 진료하면 대학병원은 패널티까지 받는다. 이 부분의 개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행정부와 교감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한편 전공의 수련 시스템을 새로 마련해 수련의 표준화를 기획하고 있다. 병원마다 수련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산부인과에선 실습이 중요한데 참관이 어려운 곳도 있다. 온라인 기반의 e-러닝이나 실습 시뮬레이션 등의 시스템을 구축해 적어도 산부인과를 전공했다면 습득한 지식의 양과 질 모두 일정 수준을 담보하도록 하겠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많은 예비의사들이 불확실한 미래, 수입을 이유로 산부인과 전공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들려줄 말은?
시류에 너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저출산이 강조되다 보니 산부인과 전공하면 비전이 없어보인다고 생각하는데 관점의 차이다. 산과 이외에 부인과라는 다른 영역이 있다. 산부인과를 전공하면 산과가 호황일 때 산과를, 부인과가 좋을 때 부인과를 선택할 수 있다. 단기적인 사회 흐름에 영향받지 말고 여성 건강을 책임지는 역할에 흥미를 느끼는지 성찰해 보는 게 중요하다.
산부인과는 태아/임산부 두 생명을 다루는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에 상응하는 보람도 크다. 후학들이 많이 전공해 줬으면 한다. 아픈 사람만 보는 과와 달리 생명의 탄생을 옆에서 지켜보는 과정에는 보람과 감동이 있다.
1990년에 레지던트 1년차로 시작해 올해까지 31년째 산부인과 의사로 살아왔다. 1.7명대의 출산율에서 전세계 유래가 없는 0명대의 극심한 저출산까지 시류를 다 체감했다. 하지만 보람차다는 생각은 한결같다. 고비를 넘겨 출산을 한 산모들 중에는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곁들여 감사 카드를 보내는 분들도 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산부인과를 선택하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감동은 금전적인 가치로 환원할 수 없다. 생명의 탄생 과정을 함께한다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들만의 특권이다.
산부인과계는 저출산, 수가개선, 낙태약 처방권 이슈, 불가항력 의료사고 배상, 전공의 지원율 하락 등 다양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문제는 모두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에 취임한 신임 박 이사장의 역할론에 거는 기대는 클 수 밖에 없다.
그의 해법은 뭘까. 또 여러 현안 중 무엇을 최우선 과제로 보고 있을까. 박 이사장를 만나 산부인과학회가 해결해야할 선결 과제들에 대한 해법을 직접 들어봤다.
▲이달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것 같다.
물론이다. 산부인과가 어렵다고 해서 전공의 지원자도 점점 줄고, 저출산 문제까지 첩첩산중이다. 산부인과는 출산을 담당하는 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산과는 저출산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받았지만 관점을 바꾸면 부인과는 산모들의 고령화로 환자가 되레 늘 수도 있다. 어렵다는 시각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긍정의 힘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여러 언론에서 산부인과를 돕겠다는 취지에서 어려움을 부각시키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되기도 한다. 너무 부정적인 얘기만 나오면 전공 지원이 더 줄어드는 악순화의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장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만 하소연 보다는 긍정의 힘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학술대회에서 6개 현안을 제시했다. 해결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산과에서는 무과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배상 방안 마련을 최대 현안으로 보고 있다. 해법은 어렵지 않다. 명칭에서 보듯 '불가항력적'인 사고다. 의사의 책임이 없는데도 국가가 100% 보상 책임을 떠앉지 않는다면 의사 입장에선 분만실을 접는게 보다 현명한 판단일 수 있다.
산부인과학회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이미 비슷한 제도가 대만,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제도가 왜곡됐다. 인접 국가인 대만과 일본만 해도 분만시 의사들의 과실이 없으면 책임이 면제된다. 한국에선 무과실을 입증해도 의사들이 일부분 책임을 져야하고 보상 재원에서 차지하는 정부 비중도 70%에 그친다. 이 부분이 산부인과를 가장 어렵게 만든다.
저출산으로 현재 연 20만명대로 분만 건수가 줄었다. 20만명 중에 극소수만이 불가항력적인 분만 사고를 겪는다. 많은 건수가 아니다. 정부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즉 의지의 문제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는 2011년 시행된 후 딱 10년이 됐다. 그간 무엇이 변했나. 저출산에 쓰는 예산에 비해 보상금 확대로 인한 재정지출은 무시해도 될 정도의 소규모 액수다.
법 감정 부분도 작용하는 것 같다. 병원에서 일어난 일에 의사들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보통의 법 감정인 것 같다.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발벗고 나설 생각이다. 이사장 타이틀을 내려놓고 직접 발로 뛰려고 한다. 설득 근거를 가지고 입법부부터 행정부까지 만나 설득하겠다. 보상액의 인상 및 무과실 입증 시 의사의 책임 면제 부분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낙태 약물 도입이 발등의 불이 됐다. 처방권을 둘러싸고 여러 과들간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헌법 재판소의 낙태 관련 헌법불합치 판단 이후 낙태 법이 만들어지지 않은 입법 공백 상태다. 낙태는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합법인지도 따지기 애매한 상황이다. 각 당에서 법안을 낸 의원들이 있다. 복지부 담당 부서 등과 법안을 두고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
산부인과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이 있지만 입법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있고, 절충하면서 접점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나성훈 강원대 산부인과 교수가 참고인으로 나서 학회 측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
여성계 쪽에서는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 보고 약국에서 보다 손쉬운 낙태 약 구매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산부인과 의사의 개입이 없는 약품 구입 및 복용은 득보다 실이 크다. 낙태 약 사용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왕 처방을 할 것이라면 안전한 사용에 포커스를 맞추자는 것이다.
전문가의 주의사항을 듣고, 위기 상황 발생 시 병원에 빨리 갈 수 있도록 조치하자는 게 학회의 확고한 생각이다. 이는 직역, 직능 이기주의가 아니다. 국민, 여성의 안전을 위한 주장이기 때문에 입법부부터 국회의원들까지 공감할 수밖에 없다. 타과들도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해외의 산부인과학회들은 낙태 관련 정책 권고안부터 낙태 약 처방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해서 제공하고 있다.
본 학회 역시 자체 안을 만들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낙태를 실질적으로 감소시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개정 방향을 정리했다.
현행 의료법 제15조는 정당한 사유없이 진료 거부를 금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낙태는 다른 문제다. 신념과 같은 비의학적 사유로 낙태를 거부한다고 해도 어떤 불이익이 없도록 하기 위해 '개인의 신념에 따라 인공임신중절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부분의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어 임신 22주 이후 낙태 허용 반대하고 무자격자에 의한 낙태 처벌 강화 등을 촉구하기로 의견을 정리했다. 학회가 먼저 정책 방향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급여확대를 위해 전략적으로 활동하는 학회들이 늘고 있다. 해외 보험 현황 및 약제 보험 적용에 대한 과학적 근거, 재정 추계를 제시하는 등 학회의 활동 및 전략이 고도화되고 있다.
마찬가지다. 학회는 학술이 근본이 된 단체다. 이익단체 성격보다는 공익적 연구 활동을 근간으로 최적의 치료법, 술기 발견 공유 등 공익에 부합하는 활동을 한다. 다만 규제과학이라는 말처럼 입법, 행정에서 과학적 근거 및 절차가 중요시 되고 있다. 무턱대고 보험 확대나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보다는 그에 적합한 논리 및 근거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장을 해야 힘이 실린다.
산부인과학회에서도 무과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액 인상을 위해 재정 추계 작업을 거쳤다. 현재 보상액의 5배 정도로 설정하고 무과실 입증 시 의사 책임을 면제할 때 재정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살폈지만 액수가 불과 100억원 수준 증액에 그쳤다. 감기는 약이 없어도 저절로 치유된다. 감기에 들어가는 약제비의 일부만 재원으로 전환해도 10년째 공회전한 불가항력 의료사고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정부의 의지 문제다. 근거를 가지고 설득 작업에 나서겠다.
▲이사장 임기 내 목표는?
학회 차원에서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 문제가 시급한 과제이지만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사장 임기는 2년으로 짧다. 임기 내 목표로는 의료전달체계 중증도 분류 현실화 및 전공의 수련 시스템 표준화를 설정하고 있다.
산부인과의 의료전달체계 중증도 질환 분류가 잘못돼 있다. 3차 병원은 중증 질환자만 진료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지만 문제는 경증, 중증 분류가 처음부터 잘못돼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학병원급 산부인과는 중증 환자를 받지 않는 게 수익성 측면에서 더 도움이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속된 말로 죽기 직전의 환자들만 '중증'으로 분류된 현 시스템 때문이다.
개인병원이 볼 수 있는 질환, 중등도는 중증으로 인정을 안 한다. 경증, 중등도 환자를 진료하면 대학병원은 패널티까지 받는다. 이 부분의 개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행정부와 교감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한편 전공의 수련 시스템을 새로 마련해 수련의 표준화를 기획하고 있다. 병원마다 수련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산부인과에선 실습이 중요한데 참관이 어려운 곳도 있다. 온라인 기반의 e-러닝이나 실습 시뮬레이션 등의 시스템을 구축해 적어도 산부인과를 전공했다면 습득한 지식의 양과 질 모두 일정 수준을 담보하도록 하겠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많은 예비의사들이 불확실한 미래, 수입을 이유로 산부인과 전공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들려줄 말은?
시류에 너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저출산이 강조되다 보니 산부인과 전공하면 비전이 없어보인다고 생각하는데 관점의 차이다. 산과 이외에 부인과라는 다른 영역이 있다. 산부인과를 전공하면 산과가 호황일 때 산과를, 부인과가 좋을 때 부인과를 선택할 수 있다. 단기적인 사회 흐름에 영향받지 말고 여성 건강을 책임지는 역할에 흥미를 느끼는지 성찰해 보는 게 중요하다.
산부인과는 태아/임산부 두 생명을 다루는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에 상응하는 보람도 크다. 후학들이 많이 전공해 줬으면 한다. 아픈 사람만 보는 과와 달리 생명의 탄생을 옆에서 지켜보는 과정에는 보람과 감동이 있다.
1990년에 레지던트 1년차로 시작해 올해까지 31년째 산부인과 의사로 살아왔다. 1.7명대의 출산율에서 전세계 유래가 없는 0명대의 극심한 저출산까지 시류를 다 체감했다. 하지만 보람차다는 생각은 한결같다. 고비를 넘겨 출산을 한 산모들 중에는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곁들여 감사 카드를 보내는 분들도 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산부인과를 선택하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감동은 금전적인 가치로 환원할 수 없다. 생명의 탄생 과정을 함께한다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들만의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