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초대석김태엽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장(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수혈을 했다고 하면 고맙다는 말이 나옵니다.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국내에서 수혈은 보양의 개념이다. 인척과의 관계를 혈연으로 풀이하는 동양권 문화에서 '피 한방울'은 내 가족, 혹은 남을 가르는 척도로까지 활용된다.
정작 문제는 임상 현장이다. 수혈을 보약으로 보는 뿌리깊은 관념이 과잉에 가까운 수혈 행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혈은 많은 인류의 목숨을 구하고 어려운 치료를 가능하게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곧 환자의 혈액을 중심으로 치료 전략을 구상하는 '환자혈액관리(patient blood management, PBM) 개념'의 태동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올해부턴 전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기관 내 수혈위원회가 설치되고 정기적인 인력교육이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시행된다는 점에서 '묻지마 수혈'과 같은 과도한 혈액제제 소모 관행 행태 개선의 최적기라는 평.
신임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장으로 취임한 김태엽 교수(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를 만나 국내 혈액 관리 활용 행태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혈액관리학회의 연혁은 길지 않다. 설립 목적 및 활동 내역은?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는 수혈에 사용하는 혈액 제제 중심이 아닌, 환자의 혈액을 중심으로 치료 전략을 구상하는 '환자혈액관리(PBM)'의 보급과 적용을 통한 향상된 환자 치료의 지평을 열고자 지난 2014년 설립됐다.
학회는 PBM 개념을 국내 의료인과 의료관련 종사자들에게 전파해 정착시켜 PBM 발전을 도모하는 중대 과제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PBM 개념의 국내 보급과 관련 분야의 발전에 대한 학회의 부단한 노력과 성과, 그리고 해외 PBM 전문가들과의 활발한 교류 활동에도 불구하고, 향후 PBM개념의 성공적인 국내 도입과 정착을 위해 우리 학회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개정된 혈액관리법 시행 규칙에 따라 대한수혈학회와 함께 주요 의료기관내 수혈관리실 근무인력의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중심적 역할을 시작하게 됐다.
학회는 임상 중심 시각을 바탕으로 한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이를 관련 인력에 전달함으로써 보다 환자-중심적인 PBM 전략의 국내 도입과 정착을 책임져야하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 받았다. 책임감을 가지고 개발과 발전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
▲국내에서 수혈은 널리 보급됐고 긍정적인 인식을 형성하고 있다. 어떤 문제점이 있는 건가?
수혈은 의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수혈을 통해 수 많은 인류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어려운 치료들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수혈이 유발하는 많은 부작용이 입증돼 수혈이 마냥 좋은 치료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혈 행위는 저장혈액이 갖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뿐 아니라 수혈에 의해 체내에 들어온 혈액 성분들에 의한 면역 반응이 감염의 악화나 종양의 재발로 이어질 수 있다.
무작정 시행되는 수혈뿐만 아니라 적정량 이상의 과도한 수혈 시행은 오히려 환자 경과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수혈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이점과 수혈에 따른 부작용 및 위험도를 고려한 심중한 수혈 시행 및 수혈량 결정이 항상 요구된다.
해외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PBM 개념 도입과 적용을 통해 환자 치료결과를 향상시키면서도 혈액제제 사용량의 현저한 감소를 경험했다. 현재 혈액 제제 수급 차질이 빈번하고 향후 심화되는 고령화로 인해 갈수록 상황 악화가 초래될 국내 현실을 감안한다면 국내 임상에 PBM의 빠른 도입과 적용이 더욱 요구되는 시기다.
▲PBM의 개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
수혈의 내재적 위험에 대한 인식이 증가되고 이는 혈액 제제 안전도 개선을 통해 이러한 위험을 완화하려는 노력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수혈 결정 과정 개선을 통해 환자 치료 현장에서 '최적의 혈액 사용' 개념이 반영돼야 함을 비로서 인식하게 됐고, 이러한 변화를 국내 임상에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 막 시작됐다.
이제 수혈 위험도를 현저히 능가하는 임상적 이점이 환자에게 제공되리라는 확신이 있을 대에만 수혈을 결정하고 시행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울러 우리 자신의 혈액이 우리 혈관에 가장 좋은 혈액이라는 개념은 혈액 손실 최소화, 혈액 회수 및 급성 동량성 혈액희석과 같은 혈액 보존 기법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노력과 기법의 비약적 진화의 밑바탕에는 PBM 개념이 광범위 하게 자리 잡고 있다.
PBM이란 수술 및 비수술 환자 모두에서 철분 결핍, 빈혈, 혈액 응고부전 및 혈액 손실 등 치료 결과에 악영향을 미치는 위험 요인들을 관리하는 환자-중심의 접근법이다.
PBM은 이미 많은 국가에서 혈액제제 사용량을 현저히 감소시키면서도 이러한 위험인자들의 관리를 통해 환자 치료 효과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국가 혹은 지역 프레임워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를 비롯한 상당수의 개발도상국에서 전반적인 프레임워크로서 PBM의 인식과 구현이 결여된 상태다.
우리 학회는 그러한 PBM이 국내 도입과 적용 지연 격차의 해소, PBM이 추구하는 목적 달성에 필수적 단계들의 준비, 그리고 PBM 본연의 학문적 노력과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혈액 관리에 대한 국내외 현황 및 인식 차이는?
WHO가 혈액 관리 지침을 제정한 바 있다. 혈액관리 개념을 설파하고자 해서 2017년에 개념을 고안, 공개했다. 핵심은 혈액제제를 어떤 상황에서 제공할 것인지, 얼마만큼 안전한 혈액을 줄 것인지와 관련된 내용이다.
국내에선 지금도 보양의 개념으로 수혈에 접근하는 인식이 흔하다. 피는 귀중한 것이고 헌혈은 성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캠페인 등이 이런 인식에 한몫한 것 같다. 하지만 점차 타인의 피 수혈 대신 환자 본인의 혈액을 보존하는 방식으로의 치료가 환자에게 더 좋다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전쟁 과정에서 여성의 피를 남성에게 수혈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여성 염색체가 들어가는 일이 생기면서 수혈은 무조건 좋은 것이란 인식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환자 적합성을 따지지 않고 신장 이식과 간 이식을 함부로 받지 않는 것처럼 혈액은 하나의 장기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15년 전부터 해외에서 피에 대한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혈액을 쓰는 양이 호주의 6배에 달한다. 미국은 수술실에서 슬리퍼를 안 신는다.
국내에선 피를 깨끗하다고 생각해 수술 장갑부터 바닥까지 사방에 피가 튀어도 뭐라하지 않지만 외국은 정반대로 생각한다. 피가 튀는 것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반면 국내는 환자가 빈혈이라고 하면 피를 주고 수술을 한다. 빈혈 있는 사람은 수술 후 위험도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도 및 인식 개선을 위한 방법은?
무엇보다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메디컬드라마를 보면 피칠갑을 한 수술실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장면들이 피는 무결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또 약간의 출혈이 있는 정도에는 수혈을 자제하는 풍토도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병원장이 수혈 남발의 위험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병원에 갔을 때 심장 수술을 하는데도 수혈을 하지 않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해외는 수혈에 굉장히 엄격하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젊은 사람들의 피를 수혈하면 세포가 젊어지고 회춘한다는 미신도 파타할 때다.
수혈을 줄이면서도 임상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혈액응고인자 분말 제제 도입이 필요하다. 혈액응고인자 분말은 크로스체킹이 필요없다.
분말제제 도입은 4년 전부터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성과가 없다. 수혈을 받지 않는 일부 종교인들은 조혈세포 촉진제를 받는데 가격이 관건이다. 조혈세포 촉진제는 보험이 안 되고 고용량은 비급여다. 혈액은 아무리 많이 써도 보험이 적용되지만 조혈세포 촉진제는 삭감된다.
한편 수술전/수술중 수혈 코드도 필요하다. 미국은 보험 코드에 마취 코드뿐 아니라 충수염 절제술 마취 등으로 세분화돼 있는데 우리는 그런 자료가 없다. 전산자료를 확충해야 어떤 단계에서 수혈이 이뤄지는지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결코 피가 모자란 것이 아니다. 너무 쉽게 써서 모자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외국에선 헤모글로빈 수치를 7로 유지하려고 하는데 국내에선 무조건 10을 유지하자고 하고자 혈액 팩을 한 사람에게 2~3개 씩 주기도 한다.
혈액 소모량이 워낙 많다. 효율적인 사용이 필요하고, 우리의 혈액이 우리에게 가장 좋는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수술 과정에서 혈액 회수 및 급성 동량성 혈액희석 기법 등의 활성화하는 방법도 과잉 수혈의 줄이는 방법이다.
▲수혈관리실 근무인력의 교육 기관에 관한 고시가 마련되는 등 법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있다. 어떤 내용인가?
2022년부터 거의 전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기관 내 수혈위원회가 설치되고 정기적인 인력교육이 대한수혈학회와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를 중심으로 시행된다. 적정 수혈 및 환자 혈액관리 중심의 교육 커리큘럼으로 환자의 치료 결과 향상의 기초를 마련하고, 아울러 그간 문제됐던 국내 과도한 혈액제제 소모 관행을 줄이는 데 학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정부에서 혈액에 대해 접근하는 개념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수혈위원회를 통해 피의 안정적인 공급, 폐기율 감소 부분에 집중했다. 수술 30분 전에 혈액을 녹여야 하는데 수혈이 필요치 않으면 녹인 혈액은 폐기해야 한다. 혈액 폐기율을 낮추려고 필요하지 않은 혈장을 그냥 수혈하기도 한다.
혈장을 넣으면 면역체계 변화 촉발 가능성이 있다. 보약, 보양의 개념으로 한팩을 넣어준다. 예전에는 C형 간염 검사를 안 했는데 그런 연유로 수혈 후 간이 손상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도 혈장을 손쉽게 준다. 그런 인식이 수혈관리실 설치 및 운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회장 임기 내 중점 사업 및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혈액의 적정 사용을 알려 인식 개선에 앞장서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마련한 수혈 가이드라인에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 기술돼 있다. 문제는 과거 우리 세대의 의료진들이 새로운 내용들을 업데이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혈액/수혈에 대한 내용은 최근 급격한 인식과 접근 방법에서 변화가 있었다.
이런 업데이트된 내용을 알려고 공유해야 한다. 수혈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결코 보양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수액만 줘도 좋아진다.
엄격한 커리큘럼 개발을 통해 수혈관리실 근무인력을 교육해 PBM의 개념이 국내에 뿌리내리도록 하겠다. 덧붙여 병원진료시스템 안에 혈액관리 적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용, 평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