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술팀 이인복 기자
의료기기 유통 구조의 불투명성을 개선한다는 목표로 시작된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 제도가 시행 2년을 맞았지만 혼란이 여전한 모습이다.
시행 초기부터 불거진 갖가지 잡음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제도가 확대되면서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셈이다.
시행 초기부터 업무량 부담을 호소했던 기업들은 이제 더이상 버틸 수 없다며 차라리 과태료를 맞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자포자기다.
사실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 제도의 취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의약품과 다르게 의료기기의 경우 워낙 유통망이 다양하고 복잡한데다 유통 경로 또한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이로 인한 부작용은 업계 뿐 아니라 정부의 난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혹여 유통 과정 중의 변질이나 훼손은 물론 문제 발생시 회수 조치 등을 진행하는데 있어 매번 어려움을 겪어온 것이 사실인 이유다.
이로 인해 결국 정부는 제조사부터 도매상, 간납사, 소매상, 대리점 등으로 이어지는 유통 구조마다 모두 이에 대한 내용을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말 그대로 의료기기 공급내역에 대한 보고를 의무화한 셈이다.
말 그대로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보고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라는 명분에도 2년 넘게 혼란이 일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잡고자 한 문제가 그 자체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의료기기 기업들의 대부분은 직원 수 10명 이하의 영세 기업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부분 수백가지의 다품종을 저마진으로 유통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제도가 시행된지 2년이 지났지만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제도가 4등급 의료기기부터 시작돼 차례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의료기기를 포함해 중요 수술 등에 사용되는 침습적 의료기기, 즉 4등급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글로벌 기업이거나 대기업 계열인 경우가 많다.
시행 초기 일부 간납사 등의 갑질 등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공급내역 보고 자체는 제대로 진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말 그대로 그나마 인력과 예산을 끌어올 수 있는 최소한의 여력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7월부터 시행된 2등급 의료기기의 경우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2등급 기기 대부분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체온계나 혈압계, 콘택트렌즈 등과 같은 품목이 대부분이다.
수백가지의 다품종을 저마진으로 유통하고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들 품목들이 들고 날때마다 거래처와 제품 품목, 모델명과 수량, 단가까지 하나하나 입력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들이 차라리 과태료를 내고 말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소한 2명 이상의 상근 인력이 필요한데 직원 한명이 영업부터 재고 관리, 유통까지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 행정 업무를 위해 인력을 뽑느니 차라리 인건비로 과태료를 내고 말겠다는 계산이 선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제품의 유통을 진행하기 위해 제조사와 수입사가 아예 공급내역 보고 업무를 모두 전담해 주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말 그대로 숙제를 한 사람이 몰아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의료기기 유통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그 수단이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올해 2등급 의료기기로 제도가 확대된 후 내년에는 1등급 의료기기까지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대상이 되는 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되면 이에 따른 문제도 곱절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변질되고 있는 수단을 바로잡아 제도가 순기능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미 소를 잃었다 해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고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