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권용진 교수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었지만 걱정이 앞선다. 정쟁은 끊일 줄 모르고, 경제는 암울하다. 의료분야도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원격의료법안이나 보건의료데이터법은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보험재정의 암울한 전망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필수의료 논쟁이 뜨거웠지만 사실상 모든 시스템의 근간을 바꿔야 하기에 방향을 정했지만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그리 녹녹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그간 묵혀 두었던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디지털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구체화되면서 의료분야의 2023년은 격변의 시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들은 국가차원의 디지털헬스 전략을 세웠다. 일본은 2017년 차세대의료기반법을 제정 공포했다. 프랑스는 2019년 12월 디지털헬스 전략을 발표하고 국가차원의 디지털 건강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독일은 2011년 전자의료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고 2015년 E-health 법을 제정했으며, 2017년부터는 원격의료준비를 위해 원격영상판독과 온라인영상상담을 허용했다. 데이터를 재산으로 인정하고 있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2021년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의 규모는 665억달러라고 한다. 한화로 84조원이 넘는 규모다. 미국은 시장을 중심으로 일본과 유럽은 국가를 중심으로 디지털헬스케어 전략을 실행 중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민간의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여 국가전략을 완성해 가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디지털헬스케어’의 미래는 어떻게 준비되어야 할까? 이미 부분적으로 다양한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법제정을 포함한 국가 차원의 디지털헬스 종합전략은 부재하다.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현실에 근거한 공론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이 더 중요하다.
산업계의 요구에 밀려 개인정보보호를 포기할 수 없다. 의료계의 요구에 밀려 원격진료를 늦춰서도 안 된다. 새롭게 밀려오는 디지털대전환이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개선할 수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답은 함께 찾아봐야 한다.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론의 과정이 더 필요하다. 정보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반복되는 토론을 통한 합의가 있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병원의 환자 빅데이터 유출이 감당하지 못할 프라이버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검증되지 않은 AI 소프트웨어들이 오진과 의약품 오남용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생긴 뒤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국 강력한 규제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것이 자명하다. 그렇게 된다면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의 발전도 더 큰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디지털대전환은 항생제가 등장한 것, X-ray와 MRI가 등장한 만큼의 기술변화를 의미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변화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디지털대전환은 치료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소비자의 관점에서 변화가 클 것이다. 제공되는 정보가 많아지고 시공간의 제약이 줄어드는 특성 때문이다. 원격진료는 3분진료의 대안이 될 수 있고, 서울까지 오지 않고도 전문가의 의견을 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신약개발을 앞당길 수 있고, 의사들의 업무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데이터의 이동은 진료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고 자신의 건강에 대한 관리 행동을 강화할 것이다. 원격진료와 데이터의 이동은 환자와 의사간의 계약의 구체성을 요구하게 된다. 환자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고 싶고, 의사는 원격진료의 한계를 설명해야만 의료사고의 책임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참여와 책임을 강조하게 되고 의료시스템의 신뢰를 높이게 될 것이다. 이런 기대는 공론의 과정이 충분하고 사회적 합의에 의해 모두가 실천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하려면 공론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술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 디지털헬스케어 기술이 현재 우리 의료시스템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 할 지라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리 시스템에 기여하는 가치가 적을 지라도 인류에 기여하는 가치가 지대한 기술을 사장시킨다면 그 또한 국가적으로는 막대한 손실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필요성이 낮아 보이는 이런 기술들이 의사가 모자라는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절실한 대안일 수 있다.
반도체 신화의 뒤를 이어 ‘코리아 디지털 헬스케어’ 신화를 만들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는 2023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