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초대석]배희준 뇌졸중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미국 등 선진국 모델 참고…장애 후유증·사망 시 사회적 비용 중요
"뇌졸중은 남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건강보험 재정의 사용 및 우선 순위 선정은 가치 판단을 전제로 한다. 재정이 한정적인 만큼 비용-효과적인 수단과 방법을 찾아 이에 대해 우선 적용을 결정하는 일은 불가피하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끊이지 않는 뇌졸중 사망 사고 발생은 우선 순위 선정의 적절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뇌졸중 대응 지원이 충분하다면 뇌졸중 사망, 후유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발생을 막아 큰 틀에서 오히려 재정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국내 뇌졸중 환자의 20~45%가 첫 방문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받지 못해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과정에서 예후 악화 및 사망하게 된다. 네명 중 한명이 인생에서 한번의 뇌졸중을 경험한다는 통계에 비춰보면 뇌졸중 지원 예산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대한뇌졸중학회가 지난 달 말 공청회를 통해 뇌졸중 전문 치료를 위한 포괄적 뇌졸중 센터 구축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포괄적 뇌졸중 센터는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운영 방안 및 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배희준 뇌졸중학회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전국의 뇌졸중 센터는 총 82개에 달한다. 학회가 인증하는 병원과 전국 권역별로 나눠진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의 존재를 고려하면 포괄적 뇌졸중 센터 구축은 '옥상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이 다른 걸까.
배희준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은 "현재도 뇌졸중 센터와 권역센터가 존재하지만 뇌졸중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제때 응급 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과 장애 후유증 발생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를 해결하고자 꺼내든 카드가 포괄적 뇌졸중센터"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장병, 뇌졸중, 다발성 외상의 세 가지 문제는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예후가 바뀐다"며 "4~5분을 일찍 치료하면 10명 중에 한명은 누워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을 걸어다닐 수 있게 할 정도로 극적인 예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미국 등에서는 비슷한 개념의 센터를 도입하고 있다"며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포괄적 뇌줄중 센터가 미국은 약 300개에 이르는데 인구 대비로 계산하면 한국에는 1/5인 약 60개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말했다.
국내 뇌졸중 센터에서도 재관류치료나 정맥내혈전용해술 치료가 가능한 곳이 있지만 급성기 치료부터 시술, 수술, 중환자 치료를 모두 포괄하진 않는다. 포괄적 뇌졸중 센터는 뇌졸중 센터의 가장 높은 단계로 뇌졸중 환자 대응을 한곳에서 모두 처리하는 '원스톱' 센터로 이해할 수 있다.
국내에 60개 포괄적 뇌졸중 센터를 추가하기에는 예산 문제가 걸림돌로 지적된다. 이에 기존 뇌졸중 센터를 확장하는 개념을 학회는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배 이사장은 "학회의 입장은 당장 미국 수준에 맞춰 60개의 센터를 추가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실제로 1년 심뇌혈관질환에 배정된 국가 예산이 200억 남짓이고 응급의료에 최대 2000억에 불과한데 이런 예산으로 포괄적 뇌졸중 센터 구축은 힘들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60개는 무리지만 현실적으로 25개의 포괄적 뇌졸중 센터는 있어야 사망 사건이나 장애 후유증 저감에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지방에 뇌졸중 센터를 하나 짓는데 300억원과 매년 5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지만 원래 있던 뇌졸중 센터을 지원해 포괄적 센터 규모로 확장하는 방식을 쓴다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5개 포괄적 뇌졸중 센터에 75개의 프라이머리 센터를 갖춘다면 1년 2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너무 많은 예산이 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후유증 예방을 통한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가 뇌졸중 지원 예산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진행된 레지스트리 연구에 따르면 뇌졸중 장애로 인해 5년간 입원한 경우 총 2억 5천만원의 건보 재정이 소요된다. 1년에 발생하는 뇌졸중 환자의 수는 10만명 안팎. 이 중 20~30%가 3점 이상 장애율 진단 점수를 기록하는 점을 고려하면 뇌졸중 발생 시 총 5~7.5조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포괄적 뇌졸중 센터는 발생 후 1년 째 사망률을 16% 정도 낮추며 1년 째 일상생활로 돌아갈 확률도 22% 정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회 측 계산대로 2000억원의 비용 투자로 장애 후유증 발생 인구의 22%만 예방한다고 해도 재정 투입 대비 1.1~1.6조원의 사회적 비용 발생을 절감할 수 있다. 뇌졸중 센터 지원이 훨씬 비용-효과적이라는 것.
지역에 포괄적 뇌졸중 센터가 있다면 전원 하지 않고 방문한 병원에서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돼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게 된다. 특히 치료가 가능한 시설과 전문 인력이 포괄적 뇌졸중 센터를 통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향후 안정적인 전공의 지원에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복안이다.
배 이사장은 "포괄적 뇌졸중 센터가 제대로 구축된다고 하면 급성기 치료가 필요한 세명 중 한명은 명은 살리거나 후유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이런 관점에서 보면 2000억원 투자는 비용 대비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전세계적으로 네명 중에 한명이 죽기 전까지 뇌졸중을 한번 이상 경험한다고 한다"며 "더 이상 뇌졸중은 남들의 이야기거나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닌, 본인이 겪을 수 있는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권역센터 2.0 선언 등 응급의료 지원 계획 자체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가 없지만 문제는 그런 큰 틀의 계획을 25년째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의지를 가지고 해결하고자 하면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