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2024년 7월 15일은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현장 복귀냐 사직이냐 결정하라는 최종시한으로 정한 날이었다. 모두가 전공의들의 반응에 촉각을 세우던 그때 정작 응급의학과의 내부 커뮤니티들은 그 일이 아닌 다른 문제로 시끄러웠다.
이는 의사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한 지방의 모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응급의학과 스텝들이 병원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단체로 사직하였으며, 이에 동조하는 계열 다른 병원의 스텝들도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소식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특정 병원에서 경영진들과 소속과의 갈등으로 전문의들이 일시에 사퇴하는 일종의 '폭파'를 경험한 병원들은 간혹 있었다. 원인은 다양했고, 그 봉합의 과정도 매번 달랐지만, 이번 상황처럼 응급실이 그것도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문을 닫게 되는 초유의 사태는 최소한 이전까지는 한 번도 없었다.
외부로 드러난 원인은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지난 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버텨오던 응급실들이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는 비단 그 병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미 한계를 넘어선 수많은 병원의 '대량폭파'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군의관을 투입해도 소용없고, 비상대책을 들이밀어도 소용없는 이른바 응급의료 붕괴의 서막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응급환자의 최종치료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지역의 최종병원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래서 지역의 가장 상급의료기관 또는 수련병원이 맡아서 운영해 왔고, 타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중증환자들과 지역에서 발생한 어려운 환자들도 수용해 왔다.
그 많은 일들을 충분한 전문의 충원으로 감당했던 것이 아니라 값싼 전공의들을 내세워 때워왔던 것이다.
그래서 전공의들이 떠나간 후 별도의 충원 없이 남아있는 전문의만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해 왔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거기에다가 최종치료능력의 저하로 업무 자체는 더욱 힘들어지고, 병원의 수익성 악화로 신규채용 또한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로 접어들고 있다.
막상 구하려고 해도 구할 사람이 없다. 최소 1~2년, 최대 10년간 신규 유입되는 응급의학 전문의가 없다고 가정하면 지금 나와 있는 다른 병원 전문의들을 돌려쓸 수밖에 없는데, 누군가를 데려오면 그 병원이 비어버리게 된다.
지역의 의료는 더욱 황폐해져 가고 있고, 법적 위험성이 증가하며 더 많은 전문의가 응급의료현장을 포기하고 떠나가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많은 응급실이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조만간 수많은 지역의 거점병원들이 응급실의 운영을 포기하는 더 큰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른바 응급의료의 붕괴이며, 어제의 일은 그 일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몇 개의 병원들은 응급의학 전문의 부재를 다른 과 전문의, 심지어 병원장까지도 응급실 전담의사로 배치시키는 등의 일종의 '응틀막'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나마 이렇게 틀어막는 병원은 그래도 응급실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번 사태처럼 다른 과 스텝들도 응급실 근무를 거부한다면 앞으로 문을 닫는 응급센터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올바른 의료개혁과 응급의료체계 개선은 이미 우리가 먼저 주장했던 것들이다. 이러다가 다 망할 거라고 지난 세월 수없이 많이 주장했고 요구했던 지원과 개선책들은 하나도 제대로 수행한 것이 없으면서, 응급의료의 위기를 본인들 입으로 말하는 것은 참으로 뻔뻔하고 무책임한 책임 방기인 것이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이 잘못된 방향이라면 지금이라도 멈춰서는 것이 피해를 그나마 최소화하는 길이다. 국민만 바라보겠다면 지금이라도 응급의료를 붕괴시키는 잘못된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볼 것이 아니라 의료의 전문가인 우리 의사들도 함께 바라보고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우리는 정부와 복지부의 장기계획의 부재,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와 권력자의 한마디에 좌지우지하는 비합리적인 운영방식을 지속적으로 목도하였고, 안타깝지만 이 일을 해결할 능력 자체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젊은 의사들은 지난 2020년과 이번 사태를 통하여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정치적인 학습과 각성을 이뤘으며, 이제는 앞으로 절대 정부의 사탕발림 거짓말에 더 이상 속아주지 않을 것이다.
의료체계를 앞으로 조금이나마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소모될 것이며 그렇다고 해도 이전만큼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응급의료의 붕괴 조짐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수차례 경고했지만 무시되어 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응급의료는 이미 한계상황에 봉착해 있고, 이번 일이 붕괴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단지 그 병원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무시하고 현재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응급의료체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대가는 더욱 가혹할 것이고 안타깝게도 응급의료의 붕괴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