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라운지] 강석민 중증 심부전연구회장(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신약 평가 잣대 다양…심부전 악화 사건의 18% 저감 유의미"
이달 개최된 유럽심장학회 연례회의(ESC 2024)에서는 또 하나의 심부전 신약 탄생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됐다.
2015년 ARNI, 2020년 SGLT-2 억제제, 2021년 베리시구앗이 심부전 치료제로 허가되면서 ACE 억제제, ARB, 베타차단제, 알도스테론 길항제 이후 뜸했던 신약 탄생에 가속도가 붙고 있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올해 ESC에서의 관심은 당초 신장약으로 개발된 피네레논(상품명 케렌디아)이 독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뇨병 치료제에서 시작해 신장약과 심부전으로 적응증을 확장한 SGLT-2 억제제 사례처럼 이번 ESC는 피네레논 역시 심부전 약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된 것. 문제는 임상 결과가 관점에 따라서는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심장 전문가가 본 피네레논의 평가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의 눈길을 사로잡은 주요 연구들은 무엇일까. ESC 2024에서 심장 모니터링 관련 세션의 좌장을 맡은 강석민 중증 심부전연구회장(전 대한심부전학회 회장,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임상 결과 놓고 해석 분분…사망률 7% 감소의 의미는?
비스테로이드성 미네랄코르티코이드 수용체 길항제 피네레논은 앞서 만성신장병 및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심혈관 및 신장 질환의 진행을 늦추는 데 약제로 허가된 바 있다.
피네레논은 비스테로이드성 약물이라는 점에서 기존 약제 대비 고칼륨혈증과 같은 부작용이 적고, 염분 및 수분 저류, 염증, 심근 섬유화 등을 유발, 심부전을 악화시키는 미네랄코르티코이드 수용체의 과도한 활성을 억제해 초기부터 심부전 치료제로의 활용 가능성이 제시돼 왔다.
ESC 2024에서 공개된 임상 3상 결과(DOI: 10.1056/NEJMoa2407107)는 피네레논이 심부전 치료제로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깔끔한 성공 공식을 쓰지는 못했다.
강석민 회장은 "심부전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피네레논의 임상 결과를 눈여겨 봤다"며 "피네레논은 비스테로이드성이기 때문에 알도스테론 길항제와 같은 기존의 스테로이드성 심부전 약물의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고 말했다.
그는 "임상 결과만 놓고 보면 주요 연구 종말점을 달성해 임상의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은 맞다"며 "다만 심혈관 원인으로 인한 사망한 환자의 비율은 관점에 따라 해석이 나눌 순 있다"고 밝혔다.
피네레론 임상 3상은 심부전이 있고 좌심실 박출률이 40% 이상인 환자를 1:1 비율로 무작위로 배정해 통상적인 치료 외에 피네레논(20mg 또는 40mg 1일 1회) 또는 위약을 투여해 심부전 악화 및 심혈관 원인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분석했다.
32개월의 평균 추적 관찰 기간 동안, 피네레논 투약군 3003명 중 624명에게 총 1083건의 심부전 악화 사건이 발생했고, 위약 군은 2998명 중 719명에게 총 1283건의 사건이 발생했다(발생비 0.84).
심부전 악화의 총 발생 건수는 피네레논 투약군에서 842건, 위약군에서 1024건으로, 발생비는 피네레논 투약군에서 18% 낮았다.
반면 심혈관 원인으로 사망한 환자의 비율은 각각 8.1%와 8.7%로 0.6%p의 격차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피네레론 투약군의 위험비는 7% 낮아졌지만 비용-효과성까지 따진다면 실질적인 이득이 미미하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 강 회장은 "임상 자체가 통상적인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피네레논을 추가 투약하는 것으로 설계됐다"며 "그간 개발된 약제들의 사망률 저감 효과에 더해 사망 위험을 더 낮춘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기전의 획기전인 신약이 아닌 다음에야 수 십 퍼센티지에 달하는 모든 원인 사망 위험 저감을 달성하는 약물은 거의 없다"며 "여러 신약후보물질들이 연구 종말점의 파라미터를 다양하게 바꾸면서 많은 임상 파이프라인을 진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네레논 역시 심부전 약으로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고 비스테로이드성이기 때문에 기존 약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보는 차원에서 효능을 탐색했다"며 "약제의 가치는 사망률만으로 평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심부전 악화 사건의 18% 저감만으로도 피네레논은 심부전 약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가 본 ESC…"개정 진료 지침에 등장한 상승 혈압에 눈길"
이외에도 ESC는 6년만에 고혈압 치료 지침을 개정, '상승 혈압'의 개념 및 약제 일변도의 치료를 탈피, 신장 신경 차단술을 통한 고혈압 치료를 처음으로 반영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강 회장은 "ESC가 도입한 상승 혈압(elevated blood pressure) 개념을 흥미롭게 지켜봤다"며 "국내에도 고혈압 전 단계라는 분류가 있는데 서로 비슷한 취지와 개념을 도입해 고위험군의 관심과 경각심, 주의를 촉구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ESC 치료 지침은 기존 고혈압 정의인 140/90 mmHg 이상을 유지하지만 BP 120~139/70~89 mmHg를 새로운 범주인 '상승 혈압'으로 제시해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혈압 수치는 대부분 꾸준한 생활습관, 고령화 등의 추세에 의한 결과값이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되는 고위험군이 한계치에 도달하기 전에 집중적인 치료를 통해 정상화의 길을 열어두자는 것.
강석민 회장은 "이전 지침은 환자가 혈압 140/90 mmHg 미만을 달성한 후 130/80 mmHg 미만 달성을 새 목표로 잡아 치료하는 2단계 접근 방식을 사용했지만 새 지침은 처음부터 120~129 mmHg 달성을 목표로 치료받도록 권장했다"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령자의 경우 목표치에 매몰될 경우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어 낮출 수 있는 데까지만 낮추(as low as achievable)라는 개념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ESC가 처음으로 신장 차단술을 고혈압 치료의 방법론으로 반영한 부분도 새로운 지점이지만 아직은 더 검증할 부분이 남았다고 생각한다"며 "신경이라는 것이 촘촘하고 유기적인 망으로 구성돼 있어 단순히 차단술을 한다고 온, 오프의 개념처럼 완전한 차단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번의 재시술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런 까닭에 연구마다 차단술의 임상적 효과가 혼재된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며 "선재적으로 차단술을 반영한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권고 등급이 2b, 증거 수준도 B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은 근거가 더 축적될 때까지 지켜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