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위기 해법 '사적의료' 등장...공공의료와 병립 필요성 강조

발행날짜: 2024-10-15 05:30:00
  • 의협 의료윤리연구회 박형욱 부회장 '새로운 사회계약' 강의 진행
    "의사 특권 요구해선 안 돼…위험 직업군 보편적 보장으로 접근해야"

의과대학 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필수의료 위기를 해결할 새로운 사회계약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의사가 먼저 보편적인 관점으로 국민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4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의료윤리연구회 강의에서 대한의학회 박형욱 부회장은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요양기관 강제지정 ▲강제적인 수가계약 ▲강제 심사 ▲강제 환수로 이어지는 사중 강제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윤리연구회 강의에서 대한의학회 박형욱 부회장은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사중 강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필수의료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어 의사와 환자 사이에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한 때라는 제언이다. 정부가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정책을 강요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상호 간의 권리와 책임이 존중되는 사회계약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 의료와 정부 사이에 중재자가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박 회장은 "과거 로마에 도자기 수리와 관련 법이 있었다. 고객이 맡긴 도자기를 장인이 부쉈을 때에 대비한 내용인데, 장인이 감당 못할 수리는 맡지 않겠다고 계약서 작성하면 해결됐다"며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는 강제로 맡기고 강제로 수리하고 하고 강제로 책임지라고 하는 식인데 이를 누가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수가 협상만 봐도 이는 계약의 탈만 쓰고 정부가 강제로 정하는 형태다"며 "이 밖에도 요양기관 지정과 심사, 환수가 모두 강제적으로 이뤄진다. 그렇다면 수가 협상이라도 계약의 형태로 복원해야 한다"며 "계약이 성립되지 않으면 A와 B가 동의하는 C가 개입해 중재하도록 하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직은 이를 위한 사회적 담론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봤다. 현 정부의 불통만이 문제가 아니라, 의료계 역시 이런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니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작금의 대한민국은 ▲노인 인구의 급증 ▲초저출산 ▲의료기술 발전 등으로 의료보장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도가 높아지는 시국인 만큼, 이를 새 화두로 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회장은 관련 논의가 의사의 특권을 보장하자는 식이 아닌, 위험성을 가진 모든 직업군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임상 현장의 위험성을 가장 많이 아는 것은 일선 의사인 만큼, 이들이 관련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의사와 환자 간 새로운 사회 계약의 형태에 대한 질문에 서구 선진국처럼 공공의료와 사적의료가 구분돼 병존하는 형태가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형태가 오히려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며 의료를 지속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그동안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아왔던 국민 입장에선 이에 대한 저항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보편의 언어로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 박 회장은 "한국 의료체계는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 의료보장을 제공하면서도 국민 의료비의 급증을 막아야 하며, 동시에 환자 개인의 선택권과 최선의 의료를 보장해야 한다"며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며 동시에 한국 의료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사와 사회, 의사와 환자 사이에 합당한 사회계약이 정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의료가 왜곡된 이유는 정부의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정책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상호 간의 권리와 책임이 존중되는 사회계약을 정착시키지 않고선 한국의 의료가 바로 설 수 없다"며 "의사는 다른 국민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요구해선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의사와 사회 사이의 사회계약을 이해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학회 박형욱 부회장은 선진국 의료체계와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비교하며, 우리나라는 의료는 갈라파고스 체계에 갇혀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그는 선진국 의료체계와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비교하며, 우리나라는 의료는 갈라파고스 체계에 갇혀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단일 의료체계 ▲강제 수가 ▲비급여 관리체계 ▲전공의 불공정 보상체계 ▲과도한 민·형사책임 등 국제 표준에 크게 벗어나는 등 도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보장이 명분이라고 해도, 권력을 남용해 의사를 강제로 공공의료에 동원하는 일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 의료체계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이와 함께 전공의 수련과 경험을 보상하지 않는 불공정 체계와 과도한 민·형사책임으로 인한 필수의료 이탈도 한국 의료의 갈라파고스화를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정부가 비급여 진료로 의사를 불법으로 몰아가는 상황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구권의 경우 비급여 진료에 국민의 국민 선택권을 박탈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는 의료기술 발전에도 치명적이라는 우려디.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로 눈을 돌리는 것은 저수가 등 강제 동원에 의한 국민건강보험 단일체계 때문이지만, 정부는 의사를 악의 축으로 보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 필수의료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불균형을 야기하는 의료체계 때문이지만, 의사 인력 증원과 비급여 통제를 중심으로 대책이 추진되면서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우려다.

이와 관련 박 회장은 "대부분 병원은 비급여로 돈을 벌어 필수의료에 투자해 우리나라 의료를 유지하고 있다"며 "비급여에만 몰두하며 돈을 버는 의료기관도 있지만, 교차보조가 우리나라 의료를 지탱하고 있어 비급여를 악의 축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필수의료에 합당한 재정지원이 없는 비급여 대책은 의료를 더 왜곡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현 의료위기의 근원은 비정규직 근로자인 전공의들에게 주당 최대 88시간을 일하게 만들어 대학병원을 운영케 한 의료시스템의 문제다. 그리고 이런 기형적 의료시스템을 만들고 악용해 온 정부에게 근본적 책임이 있다"며 "하지만 갑자기 의사들이 기득권자라며 전공의들에게 현 의료위기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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