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 위원장, 인터뷰 통해 비대위 방향 및 대정부 요구 전달
정부 의료계 단일안 요구 되돌려줘 "정부가 먼저 대책 내놔야"
정부 의료 농단 저지를 위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완료됐다. 전공의와 함께 모든 의사 직역이 참여한 가운데, '정부 태도 변화'를 단일 의견으로 조건부 투쟁을 예고하면서 이에 대한 정부 답변에 눈이 쏠린다.
18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박형욱 위원장은 인터뷰를 통해 비대위 구성·방향성 및 현 사태에 대한 대정부 요구 사안을 밝혔다.
박형욱 위원장은 대정부 요구사항으로 정부가 먼저 현 사태를 해결할 대책을 내놓으라고 강조했다. 의료 사태는 의료계 이기심 때문이 아닌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초래된 문제인 만큼, 정부가 먼저 대책을 마련해 의료계를 설득하는 것이 바른 순서라는 것. 정부가 단일 의견을 의료계에 내놓으라며 던진 공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모습이다.
이와 함께 박 위원장은 잘못된 근거로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일련의 과정에서 의료계에 책임을 전가한 정부 핵심 관계자 문책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 같은 신뢰 회복 조치 등 정부 태도 변화가 없다면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경고다.
특히 박 위원장은 정부가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증원 규모를 논의한 적이 없으면서 대통령실엔 "의협과 19차례 협의했다"는 거짓 보고를 올린 전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정부는 이 같은 협의를 '알리바이 만들기'로 악용해 의협을 불통 집단으로 만든 만큼,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
정부가 주장하는 2000명 의대 증원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반박도 내놨다. 대한의사협회지에 실린 오영인 박사의 연구, 버클리대학의 쉐플러 교수의 발표 등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2035년 781명~1만5866명, 2030년 3821명의 의사 인력 공급과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지난 11월 4일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김세직 교수가 향후 10년간 의료 공급 증가율은 연 3.2%로, 의료수요 증가율 1.3~1.9% 범위를 1.3% 이상 앞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의사 공급과잉이 초래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음에도, 정부는 이를 감춘 채 오히려 의료계에 반대하는 과학적 근거를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는 반박이다.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은 "본인은 의협과 보건복지부 양자 협의체인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여한 바 있다. 여기서 의대 정원 증원 규모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며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소송의 결정문에서도 2000명이라는 숫자는 지난 2월 6일 조규홍 장관이 증원 발표하기 직전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밝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누군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해 의협과 협의했다고 사실과 다른 보고를 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1일 대국민담화에서 사실과 다른 말을 한 것"이라며 "돌이켜 보면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일종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었다. 정부는 협의의 외피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국민에게 의협을 불통 집단으로 전달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계속되는 의료계 탓이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9월 의료공백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환자를 떠난 전공의에게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이전에도 주당 최대 88시간 근무와 의료소송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되는 등 잘못된 의료시스템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겠다면서, 정작 '의료사고심의의원회'를 구성해 중과실 위주 기소를 하겠다고 하는 등 옥중 옥 규제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직 전공의들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수련 과정에서 합당한 보호가 있어야 하고 수련 후 미래가 보여야 한다는 요구다.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은 "전공의들이 3~4년간 가혹한 수련 환경을 견디고 전문의가 된 후 받는 수가가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라며 "전공의 수련을 받든 그렇지 않든 수가는 동일하다"며 "전공의들이 사직한 것은 벌써 6개월 전이다. 이는 대기업에 경영 위기 책임을 6개월 전 사직한 인턴사원들에게 돌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 의료위기의 근원은 의료시스템의 문제다. 비정규직 근로자인 전공의들에게 주당 최대 88시간을 일하게 만들어 대학병원을 운영케 한 의료시스템의 문제"라며 "그런데 한덕수 총리께서 이런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외면하고 가혹하게 일해 온 전공의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비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필수의료 위기의 원인을 의사들의 이기심 탓으로 몰아가는 정부 태도도 지적하고 나섰다. 정부는 현 위기가 실손보험, 비급여 진료로 인한 중증·응급 공급부족 등 '시장실패'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수가는 정부가 결정하는 만큼, 이를 시장실패라고 보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박 위원장은 관련 예시로 뉴스위크지가 올해 선정한 세계 최고 병원 중 우리나라 민간 병원 17곳이 모두 수도권 민간 사립대학병원인 것을 조명했다. 반면 정부가 운영 중인 국립중앙의료원은 과거 극동아시아 최고 병원이었음에도, 민간 병원보다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게 됐다는 것.
그는 "시장실패는 자유방임 상태의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건보수가는 정부가 결정하는데 필수의료 파탄이 왜 시장실패냐"라며 "우리나라 필수의료 파탄은 명백히 정부실패지만, 정부는 시장실패라고 진단한다. 이는 다시 의사의 이기심 탓으로 이어져 온갖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손보험에 문제가 있으면 개선해야 하지만 그 이면엔 초저수가 문제가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런 객관적인 데이터를 만들지 않는다"며 "66년 전 아시아 최고 시설의 병원을 이렇게 만든 보건복지부가 개혁 대상인지, 아니면 이름도 없던 병원들을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을 발전시킨 의사들이 개혁 대상인지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박 위원장은 의대 증원으로 인한 후유증이 10년은 갈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그 시한폭탄을 멈출 때라고 강조했다. 그 여파를 차기, 차차기 정권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료계가 포기하는 심정으로 협의해선 안 된다는 것.
또 그는 내년 신규의사가 배출되지 않으면서 공중보건의사 역시 파견되지 않아 지역의료 위기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욱이 이미 지역의료기관 경영 위기가 심각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는 지적이다.
의학교육과 관련해서도 늘어난 의대생을 교육할 교수 요원과 이들이 실습할 인프라가 부족해 감당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은 "의대 증원으로 10년 이상 후유증이 있을 것이지만 정부는 대책 없이 협의만 한다면 해결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정부가 먼저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 이는 환자가 사망했지만, 암을 제거했다고 좋아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여부는 비대위 위원들과 전공의·의대생 의견을 구해야 하겠지만, 현 상황을 볼 때 과연 이런 형태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지 회의적이다"하며 "이미 상당히 늦었다. 합의하든 안 하든 의대 교육 파행이다. 의료계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합의한다면 책임 없이 문제가 계속되고 의료계는 물론 국민도 고통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우선 비대위 구성과 관련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논의 결과 15명 이내로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지난 16일 의결됐다. 그 결과 박형욱 위원장과 함께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대위원장이 비대위원을 참여하게 됐다.
이와 함께 의협 대의원회 추천으로 나상연·한미애 부의장이 비대위원으로 참여한다. 시도의사회에선 충청남도의사회 이주병 회장, 전라남도의사회 최운창 회장이 나선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에선 김창수 회장, 김현아 부회장, 배장환 고문이 참여한다. 바른의료연구소 윤용선 소장도 비대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 대전협 2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3인의 비대위원도 참석하지만, 당사자의 요청으로 이름은 비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