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기 칼럼]가족친화와 가족?(117회)

백진기 한독 대표
발행날짜: 2024-12-02 05:00:00 수정: 2024-12-05 12:11:22

‘가족친화인증’이라는 제도가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20여년전에 만들었다.

‘근로자가 일과 가정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가정 양립 제도 및 사업운영을 통해

가족친화 직장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제도 취지다.

인증을 받지 않으면 ‘가족친화’가 안되는 기업?으로 보일 것 같아서

우리회사는 아예 이제도 시행될 때부터 인증을 받아 연장에 연장을 하였다.

내게 ‘가족이란?’ 화두를 생각해 본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황해도 출신이라 '가족'이 절실한 그때 가족의 범위는 넓었다.

4촌이면 엄청 가까운 '가족'이었고 6촌까지도 가족같이 여겼다.

몇날 며칠을 집에 묵고 가는 고향사람도 아버지에겐 '가족'이었다.

지금 40대가 된 우리 아들들은 가족의 범위가 아주작다.

어떤 때보면 결혼해서 애들 둘 난 둘째아들의 가족은 자기네 4명만 '가족'인 것 같다.

나하고 마나님은 그것도 모르고 '그 가족'에 우리도 당연히 포함되겠지라는 착각의 재미로 살고 있다.

내게 '가족'이란 뭘까?

첫째,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떨어져 있으면 더욱 더 보고 싶은 존재'다.

대개 사람은 친하게 지내다가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면 잊혀지게 마련이다.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은 친구도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소원해 진다.

오랜 친구도 보고싶어 환장할 정도는 아니다.

가족은 그렇지 않다. 못 보면 정말 보고싶어 환장할 정도가 된다.

형과 여동생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내리 사랑'이라 그런지

형제자매보다도 이젠 아들들, 아들들 보다도 손녀들이 더 보고 싶다.

아마 형과 여동생들도 나와 같을 것이다.

둘째,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맛있는 것 먹을때, 좋은 여행할때, 구경꺼리 생겼을 때 같이 있고 싶은 존재다.

이런 것들을 같이 하고픈 '절친'이 있다면 그도 내겐 '가족'이다.

감정을 가감없이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게 해를 줄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때 같이하고 싶어도 '비용'생각이 먼저 떠오르면 그분은 내 '가족'이 아니다.

셋째,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어려울 때 당연하게 같이 해결해주고 같이 있어 주는 존재가 가족이다.

"얼음이 녹기 전에는 누가 적인지 우리편인지 모른다"는 이누이트족 속담처럼

어려움이 닥치면 내게서 떠나는 사람이 있고

내게 더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어려울 때 같이 하는 가족이 진짜 가족이다.

가족은 희생을 희생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가족은 손해를 손해라고 여기지 않는다.

넷째,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같이 사는 사람'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늘 자식 자랑하는 놈들이 많다.

대개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서 국내외 유수대학을 나오고

의사, 변호사, 박사 등을 따고 외국에 나가 살고 있다고 자랑한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왠지 그들에게 애잔함을 느낀다.

기껏해서 어쩌다 한번 영상통화로 손자,손녀를 본다고 한다.

나는 손녀1,손녀2,아들,며느리를 매일본다.

매일 같이 밥을 먹는다.

오늘은 손녀1,2가 어떤 일로 나를 반겨줄까?

진정한 가족은 같이 사는 존재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 딸 손자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그냥 그들 옆집 아저씨만 못하다.

난 속으로 이런 말을 한다.

야 이놈들아 나는 매일 같이 아들 며느리 손녀들과 같이 놀고 먹고 마시고 있다.

다섯째,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진 존재'이다.

약 10년전에 우리집에 하숙생?이 한분 들어왔다.

첫째아들과 성서모임에서 만난 아들 친구다.

둘다 싱글이다.

처음에는 첫째아들에게만 그분이 가족이었다.

그런데 몇년 지나니까 어느새 정이 들어 헤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그분의 가족들과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가족들의 일원이 되었다.

어디가면 같이 가고픈 분이 되었고

어려운 때도 항상 같이 했다.

아들들과 똑같이 대우할 수 밖에 없는 가족이 되었다.

여섯째, 이들도 내 가족이다.

회사와 주위에 "주례 잘 서는 분"으로 각인되어 있다.

십여쌍을 넘게 주례를 섰다.

이들이 모두 애기들을 낳고 알콩달콩하게 살고 있다.

카톡대문 사진들을 보면서 가끔 안부를 묻는다.

카돌릭에서 맺어준 대자도 십여명된다.

이들에게도 똑같은 관심을 갖게된다.

그들에게는 내가 가족이 아니고 ‘주례선생’이나 ‘대부’이지만

내겐 이분들도 '가족'이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 본다.

하루중 가장 중요한 시간에 만나는 그분들, 회사동료다.

이들과 같이 일하고 토론하고 같이 먹고 마시고 심지어는 여행까지 같이한다.

처음에는 직장에서 만나 서먹서먹한 ‘동료’였지만

어려운 일을 같이하고 개인적인 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의 ‘절친동료’가 되고

퇴직후에도 계속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어제도 그런 ‘친구’와 점심을 같이 했다.

그들과 보낸 엄청난 시간의 마일리지를 생각하면

비록 직장이라는 매개체가 있지만 이들도 일곱번째 ‘내 가족’이다.

40여년을 직장생활하면서 느낀 순수한 내 개인적인 가족관이다.

관련기사

병·의원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