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O 2025 공개 비만 연구, 치료 패러다임 전환 가능성 열어
남성 호르몬 회복·약물 중단 시 효과 유지까지 다각적 효용 입증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투약을 중단하면 효과가 없다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GLP-1 RA)는 불규칙한 약물 복용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체중 감소를 달성하며 고정관념을 깼다.
단순히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줄이는 역할을 넘어서, 남성의 호르몬 건강을 회복시키고 폐경기 여성의 체중 감소 효과를 높인 연구 역시 단순한 체중 감소 도구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대목.
복합 작용제들은 체중 감소를 넘어 다양한 효과까지 입증되며 전신 건강의 회복을 위한 핵심 치료 옵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울러 비만이 암 사망률 증가에 미치는 장기적인 악영향도 재확인되면서, 전신 건강 측면에서 과체중·비만 치료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2일부터 15일까지 열린 'ENDO 2025(미국 내분비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공개된 비만 관련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연구 결과를 정리했다.
■'약물 중단=효과 상실' 아냐…GLP-1 연 1회 투약도 효과
먼저 민간 메타볼릭 헬스케어 기업 캘리브레이트(Calibrate)사가 발표한 연구는 비만약의 '연속성'에 대한 기존 전제를 허물었다.
GLP-1 계열 약물은 대개 장기 복약을 통해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공급 부족, 약가 부담, 보험 제한 등으로 치료 연속성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하다.
즉 기존 임상시험이 엄격한 조건과 높은 복약 순응도를 전제로 한 반면, 중단·지연 등 다양한 변수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만큼 임상에서의 효과가 제대로 구현되는지가 관건이라는 것.
캘리브레이트사는 이같은 현실적 장애 요인을 반영한 '실제 진료환경'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효과를 가늠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자사 비만 및 과체중 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6,392명을 분석, 이들 중 72.5%가 최소 한 차례, 11.1%는 두 차례 이상 약물 복용 중단을 경험했음을 확인했지만 이들 다수는 1년간 평균 13.7%, 2년간 14.9%의 체중 감소를 이뤘다.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한 집단이 1년차 17%, 2년차 20.1%의 체중 감소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는 존재하지만, '약물 중단=효과 상실'이라는 기존 인식과는 다른 결과다.
특히 1년 동안 1~4회만 약물을 투약한 집단도 평균 10% 이상의 체중 감소를 보인 점 역시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 연구진의 판단.
이는 GLP-1이 단발성 투약 후에도 일정 기간 체중 감소 효과를 지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환자 맞춤형 접근과 행동 개입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연구 책임자 케일런 메데이로스는 "비만 치료제는 예측할 수 없는 중단이나 보험 적용 범위의 변화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생활 습관 변화 및 코칭 지원과 함께 하면 효과적인 체중 감량을 달성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비만 치료제, 남성 호르몬 기능 회복에도 효과
한편 비만 치료제가 체중 감량 외에도 호르몬 기능 회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공개됐다.
세인트루이스대학교병원 연구팀은 비만 혹은 제2형 당뇨를 가진 성인 남성 110명을 대상으로 ▲세마글루타이드 ▲둘라글루타이드 ▲터제파타이드를 평균 18개월 투약하며 총 테스토스테론과 유리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추적 관찰했다.
이들은 모두 외부 호르몬 요법을 받지 않았으며, 오로지 비만 치료제만을 통해 호르몬 변화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치료 전 정상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가진 환자의 비율은 53%에 불과했지만 투약 후 77%까지 상승했다.
이번 연구는 테스토스테론 감소가 단순한 노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체지방 증가 및 인슐린 저항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으며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약물 치료가 존재한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기존 치료법인 남성 호르몬 요법(TRT)은 저테스토스테론증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회복시킬 수 있지만, 심혈관 위험 증가 가능성, 전립선 질환 악화 우려, 불임 유발 가능성 등이 제기돼 TRT 요법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셸시아 포르티요 카날레스 박사는 "기존에는 생활습관 개선이나 수술을 통한 간접적 호르몬 회복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졌으나, 이번 연구는 비만약이 직접적으로 남성 호르몬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첫 임상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 역시 비만·당뇨·성기능 저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중장년 남성 환자군에게 비만 치료제가 단순히 체중 감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뒷받침한다.
■폐경기 여성도 비만 치료제 혜택
폐경기 여성 역시 비만 치료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마요클리닉 연구팀은 평균 18개월 동안 터제파타이드를 투약한 폐경기 여성 120명을 추적했으며, 이 중 40명은 폐경 호르몬 치료(HRT)를 병행하고, 80명은 약물 단독군으로 분류해 비교했다.
병용군은 평균 17%의 체중 감소를 보였고, 단독군은 14%에 그쳤다.
특히 체중의 20% 이상 감량에 성공한 여성의 비율은 병용군이 45%에 달했으며, 이는 단독군의 18%보다 월등히 높았다.
폐경은 에스트로겐 감소로 인해 기초 대사량 저하, 복부지방 증가, 근육량 감소 등 전신 대사 변화가 동반되는 시기로, 일반적인 비만 치료에 반응이 둔한 경우가 많다.
이번 연구는 HRT가 대사 구조의 정상화를 유도함으로써 비만약의 반응성을 높일 수 있다는 가설을 뒷받침한 것이다.

연구책임자인 마리아 다니엘라 우르타도 안드라데 박사는 "세마글루타이드와 HRT 병용 효과가 이전에 보고된 바 있지만, 터제파타이드에서도 유사한 효과가 재현됐다는 것은 약물 간 범용성 있는 상승 작용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 "폐경 여성 대상의 맞춤형 대사 치료 전략 개발에 있어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 향후 갱년기 비만 치료를 단일 약물이 아닌 복합요법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체중 늘자 암도 늘어…과체중·비만, 전신 악영향 확인
비만이 가져오는 치명적 결과도 다시 조명됐다.
해크센서크 메리디안 병원 연구팀은 CDC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1999년부터 2020년까지의 미국 내 비만 관련 암 사망 3만 3,572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인구 100만 명당 비만 관련 암 사망률은 3.73명에서 13.52명으로 20여 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했으며 특히 여성·고령자·흑인·원주민·농촌 인구 등 사회적 취약 계층에서 그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이는 단순히 '과체중'을 넘어서 비만이 암 발생과 사망의 주요 인자로 자리 잡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CDC에 따르면 비만은 13종의 암과 연관돼 있으며 이는 미국 전체 암의 40%를 차지한다.
연구책임자 파이잔 아흐메드는 "비만 관련 암 사망의 증가는 단순한 개인 문제를 넘어 공중 보건의 구조적 문제로 확대돼야 한다"며 "조기 검진과 치료 접근성 개선이 시급하며, 특히 고위험군과 지역 격차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역시 비만을 전신질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이를 복합적 치료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