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의 수가 개편, 사람은 어디에

가정의학과의사회 이한결 이사
발행날짜: 2026-07-13 05:00:00
  •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이한결 보험이사

가정의학과의사회 이한결 보험이사

전문의를 취득하고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막 시작했을 무렵,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은 감기로 내원한 아이에게 항생제를 복용하는 대신 경과를 지켜보자고 보호자를 설득했던 적이 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보호자가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큰 병원에서 폐렴으로 입원했다는 것이다.

진료 차트에 '3진료실 원장님 연결 X' 메모가 붙은 것은 차치하고, 그 후로 소아를 마주할 때마다 검사 한 번을 보다 먼저 시행하고, 항생제를 좀 더 일찍 써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곤 했다.

혁신이라는 이름값

정부가 27년 만에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를 손본다. 검사료에 붙던 관리료를 떼고 검사를 의뢰하는 기관과 수행하는 기관의 수가를 따로 매긴다. 그렇게 아낀 재정은 진찰과 입원, 수술과 응급으로 돌린다. 정부는 이를 건강보험 수가 구조 혁신이라 부른다.

진찰 수가가 20년 넘게 제자리였다는 사실만 보면 방향 자체를 탓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검사가 과하게 보상받는 동안 진찰이 홀대받았으니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재원이 어디서 나오느냐다. 검사를 수행하는 기관의 보상은 그대로 두면서, 정작 몫이 깎이는 쪽은 검사를 의뢰해 온 의원이다. 그마저 몇 년 뒤에는 더 낮아진다. 진찰료 인상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검사는 그저 비용이 아니다

짧게 끝나는 진료가 흔한 현실에서 충분히 묻고 설명하는 긴 진찰은 그 자체로 환자를 만족시키기도 한다. 다만 그 만족은 환자가 무엇을 기대하고 왔느냐에 달려 있다. 대개 더 중요한 것은 친절이 아니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필요한 검사를 제때 권하고 맞는 약을 처방하는 것.

그 아이 앞에서 내가 곱씹어야 했던 대목이다. 인성보다 실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혈액검사 없이 당뇨를, 영상 없이 암을 가려낼 수 있는가. 진찰만으로 닿지 못하는 곳이 있고 그 거리를 좁히는 것이 검사다.

이런 환경에서 검사 값을 덜어 진료 시간의 값을 얹는다는 건 검사는 줄이되 결과는 책임지라는 뜻 아닌가. 안 그래도 필요한 검사 하나 권하기 조심스러운 진료실이다. 검사가 과잉이라는 진단이 맞다면 변화를 추진하는 게 옳겠으나 그조차도 의문이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도 틀리기 마련이다. 제도가 바뀐 뒤 진료실 풍경이 어떻게 변할지 두고 볼 일이다.

심층상담이라는 빈칸

진찰료 인상 말고도 눈여겨볼 변화가 있다. 상급종합병원에 도입돼 본사업이 된 심층진찰료처럼, 의원에도 심층상담료가 임시로 들어온다. 10분 넘게 진료하면 진찰료를 두 배로 쳐 준다는 것이다. 다만 그 시간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가 일차의료에 남은 몫이다. 제도로 보상 단위를 시간으로만 정해두면 현실은 시간을 채우는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렇게 흘러가지 않으려면 가정의학을 포함한 일차의료가 본래 하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다중이환자의 다제약물 관리가 그 예다. 약물 조정의 핵심은 사람을 뒤로한 채 단지 약의 가짓수를 줄이거나 소화제 한 알을 빼는 데 있지 않다. 한 몸에서 부딪치는 동반 질환의 순위를 조정하고, 약제로 인해 도리어 새로운 증상이 생기거나 기존 질환이 악화되지는 않았는지 면밀히 살피는 데 본질이 있다. 정리된 약 목록은 결과물일 뿐이다.

심층상담의 자리를 이와 같은 조정으로 일부 채운다면, 그건 일차의료가 늘 해오던 일에 제값을 매기는 셈이 된다. 이 가치를 새 제도라는 잣대로 다시 증명해낸다면 진찰료는 쉽게 깎이지 않는다. 반대로 실효를 보이지 못한다면 어렵게 도입된 시범사업은 머지않아 종결되고 말 것이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검사에서 진찰로 옮긴 보상이 아쉽고 적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수가가 어디로 옮겨가든 진료실 안의 의사와 그 앞에 마주앉은 환자의 관계는 달라진 게 없고, 책임도 그대로다. 그러므로 변화에 대응하여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다시금 의료진의 몫이다. 경우에 따라 기관의 존폐가 달린 문제인 까닭이다.

급격히 줄어든 보상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정당하다. 다만 그 목소리에 힘이 있으려면 줄어든 검사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진료 현장에서의 책임을 우리가 감당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때로는 격렬한 저항보다 조용히 현장을 떠나는 편이 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맴돈다. 국민과 의사 모두를 위한다는 제도 변화 어디에도 정작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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