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서 사람 배워, 다시 의사로

장종원
발행날짜: 2004-11-30 07:42:14
  • 박금자 원장(박금자 산부인과)

정치인에서 의사로 돌아온 박금자 원장
지난 4월15일 총선이 열리던 날 오후6시. 기자는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했던 박금자 후보의 선거사무실에 있었다. 그간의 힘든 선거운동을 마치고 이제는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

탄핵 정국과 민주당의 몰락 등 쉽지 않은 정국속에서 치른 쉽지 않은 선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출구조사 발표로 무너져 선거본부 관계자들은 침통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TV를 시청하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고 "(박금자 후보가) 아마도 사무실로 안 오실 것 같다"는 말에 기자 역시 자리를 떠났다.

새로운 정치를 꿈꾸던, 흔하지 않은 의료계 여성 인사의 의욕적인 도전이 좌절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다시 메스를 두 손에 쥐다
그 후 7개월이 지난 11월. 기자는 박금자 후보가 아닌 박금자 원장을 찾았다. 이제 그는 정치인의 자리를 벗어나 본업인 산부인과 의사로 돌아와 있었다.

“지난 6월부터 다시 진료를 시작했어요. 지난해 7월부터 환자 진료를 하지 않았으니 약 10개월 정도 쉰 셈이에요. 선거 끝나고 2개월 정도 쉬다가 다시 진료를 시작한 거죠.”

보통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은 아쉬움과 안타까움뿐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으로 6개월은 방황한다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박 원장은 2개월만에 다시 청진기를 잡았으니 훨씬 빠른 복귀다.

그러나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를 찾고 기다리는 환자가 있는 의사라는 직업이 그에게는 장점이었다. 그래서 박 원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진료를 하고 있다.

“자기 일이 있다는게 행복해요.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달랠 수 있어요. 특히 환자들이 저를 반겨주는 것을 보고 ‘내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어요”

다시 의료계로 돌아온 박 원장은 서울시 의사회와 한국여자의사회 부회장으로서 의료계의 일도 조금씩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대외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최근 어린이 동아에 연재하는 ‘성 이야기’가 전부다.

조심하고 자숙하고 있다. 상처가 다 치유된 것도 아니다. 민주당에서 여러 가지 제안이 들어왔지만 대부분 거절하고 유보했다.

박 원장은 “국민의 표를 받았던 사람이 여기저기 나다니는게 어떻게 보일지 조심스럽다”며 “이 모습 저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 보다는 조용히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 통해, 나를 업그레이드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선거 당일까지 자신이 될 것으로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선하게 되면 6개월을 방황한다는 소리가 나오는가 보다. 박금자 원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편으론 선거가 조금은 어렵다는 생각도 했다. 총선 당일 사무실에 오지 않은 것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결과였다.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한 그였지만 선거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만큼 힘들게 치렀던 선거였던 만큼 박 원장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박금자 후보는 총선에서 12,674표(13.3%)를 얻어 3위를 기록했다. 당시 민주당의 상황을 보면 10% 이상의 득표율은 대단히 선전한 결과다. 민주당이 서울지역에서 10% 이상의 표를 받은 곳은 겨우 5곳에 불과했다.

“비록 선거에서는 졌지만 김민석이라는 정치 거물의 자리에 들어갔고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잖아요. 저는 선거를 통해 저에게 굉장히 좋은 ‘궤적’이 됐다고 생각해요”

정치는 하는 것이고 의술은 베푸는 것이다. 정치는 사람을 찾아가고 의술은 사람이 찾아온다. 두 가지 전혀 상반된 가치를 동시에 경험한 사람은 자신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

“선거운동 기간 아주머니들을 만나면서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하면서 친근해 졌어요. 표를 구할 때에는 정말 가장 바닥에 내려간 심정으로 사람들을 만났어요. 이제 다시 의사의 자리로 돌아와도 사람들을 대할 때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어려워 하던 젊은 환자들하고도 편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이런 경험들은 최근에 열린 병원 20주년 행사도 변화시켰다. 병원 앞마당에서 작은 파티를 벌인 것. 주민들과 조촐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빚진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이었다고.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박 원장이 정치권에 진출한 것은 지난 99년 이었다. 90년도부터 성폭력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시민사회 일에 관여해 오다 제도권에 진출한 것이다.

의료계 인사로서 그리고 여성 인사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결국 2003년 조배숙 의원의 탈당으로 늦깎이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 한번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포기하고 지역구 의원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박 원장은 ‘콜럼버스가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가지 않았다면 아메리카를 발견할 수 있었겠냐’는 생각으로 지역구를 선택했단다. 여성이 비례대표로만 가서는 안되고 미래 여성의 정계 지출을 위해서도 결심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의료계 역시 끊임없는 도전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인사들이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의료계 인사가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어요. 의료계 역시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끊임없이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선은 이익단체의 대표자이기보다는 국민의 대표가 먼저 되어야 해요”

다시 쉽지 않은 결정을 하겠냐는 질문에 박 원장은 이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으니 여기서 일단은 성실하게 일하고 주민에게 봉사도 하겠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쉽게 꿈을 접을 것 같은 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물었다.

그러자 박 원장은 “정치를 영원히 안하겠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BEST 할 여건이 아니라면 쉽게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금자 원장은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만큼 어려운 일이 어디 있을까. 박 원장이 사람의 마음도 얻고 병도 고치는 어떠한 의술을 펼칠지 조용히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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