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보다 전쟁이 더 참혹했다”

장종원
발행날짜: 2005-01-25 07:29:09
  • 황정연 재해의료지원단장

황정연 국립의료원 응급의학 과장
자연의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쓰나미의 공습을 첨단으로 무장한 인간이 막아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2만 명에 육박할 거라는 방송의 최초 사망자 집계는 5만, 7만, 13만으로 사정없이 늘어났다. 일만명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대수롭지 않다고 착각할 만큼의 변화였다.

멀리서 거대한 피해 숫자만 바라보다 무덤덤해진 기자를 깨운 건 국립의료원 황정연 응급의학과장(53)이 보여준 스리랑카 사망자의 사진이었다.

무더운 날씨로 인해 급속히 진행되는 시신의 부패로 인해 부득이하게 화장이나 매장을 하게 됐고, 이후 시신 확인을 위해서 얼굴 사진만 찍어 놓은 것이다.

평생 봐도 다 못 볼 시신의 참혹한 모습을 단 30분에 보면서 쓰나미가 휩쓸고 간 후 참혹해진 인간세상의 쓰림이 절실히 다가왔다.

스리랑카 북부 킬리노치로...

방송에서 어느 국가가 아시아 외교의 일환으로 지원을 많이 했는가를 앞다투어 떠들던 당시 황정연 단장을 중심으로 한 13명의 재해의료지원단(DMAT : Disaster Medical Assitant Team)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스리랑카로 향하고 있었다.

쓰나미 지진이 아시아를 덮친 뒤 이틀째인 12월 28일 한국을 출발한 그들은 스리랑카 수도인 콜롬보에 도착했다. 이들은 그곳에서 KOICA 봉사단 8명과 합류하고 이후 도착한 의약품 등을 확인하면서 현지 정보를 확인했다.

이어 30일 도착한 서울대병원 의료지원단은 남부의 심각한 피해지인 마타라(Matara) 지역으로, 재해의료지원단은 북동부의 칼리노치(Kilinochi) 지역으로 길을 달리해서 떠났다.

그러나 킬리노치로 들어가는 여정 역시 쉽지는 않았다. 킬리노치 지역은 스리랑카 타밀 반군 지역으로 이번 쓰나미로 인한 의료지원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재해의료지원단은 스리랑카 공군기를 통해 스리랑카 3대 도시인 자프나를 거쳐 트럭과 버스에 의존해 킬리노치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반군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 새로이 통행증을 만들어야 했고, 모든 짐을 새로이 검사받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했다.

오지에서 주민들의 환영 받아

"배아프다" "가렵다" "피가 난다" "눈이 아프다".... 그들의 통증 호소는 도움의 갈망이었다. 유나뿌니(53-여)는 나의 손을 잡고 꽤 오래 울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 줘서 고맙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면서 "제발 오랫동안 있어줄 수 없느냐"고 하소연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의 인사 한마디에 가슴은 먹먹했다. 비록 고생이 되고 힘들어도 이곳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중략.....
놀라움과 슬픔의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나온다. 한마디로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시신의 주인을 찾는 작업은 이미 포기한 상태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것도 이유지만 더 시급한 것은 전염병 예방이기 때문이다. 발굴된 시신은 곧 바닷가에서 집단 화장했다. 주민들은 슬픔에 더 큰 슬픔을 태우고 있었다. 산처럼 쌓인 주검 속에 사랑하는 가족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른채.... 저절로 눈이 감겼다. 기도를 했다. "하얀 연기 속으로 피어오른 영혼이여, 영면하소서." -황정연 단장이 <뉴스메이커>에 보낸 의료지원활동 체험기.


그러나 재해의료지원단은 갖은 고생 끝에 도착한 킬리노치 지역에서 대 환영을 받았다. 타밀 반군이 밝힌 이 지역의 피해 숫자는 사망 1만8천명, 실종자 2만여 명에 이를 만큼 피해가 극심한 지역이기에 의료진의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지원단은 급한 대로 병원 내에 진료캠프를 설치하고, 난민수용소 지원팀과 병원 내 의료지원팀으로 나누어 본격적으로 진료활동을 시작하니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피부가 찟겨 나가 곪고 짓이겨진 환자가 많았으며 외과계열 의사가 없어 한국 의료진이 수술을 많이 담당했다. 일주일 간 머무는 동안 500여명의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료할 수 있었다.

황 단장은 “이 지역 주민들은 진취적이어서 시신 수습 등을 지진이 일어난 며칠 만에 신속하게 해냈다”고 말했다. 또한 쓰나미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의료제도 역시 우리가 배울 만한 점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스리랑카 방송마저 외면한 타밀

황정연 단장은 타밀지역이 쓰나미로 인해 큰 피해를 받았음에도 이번 의료지원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타밀 지역은 반군인 LTTE의 거점이다. 스리랑카 정부군과 LTTE(Liberation Tiger of Tamil Eelam)간의 내전은 2003년 휴전하기 전까지 30여 년간이나 반복됐다.

이 내전으로 6만4000명이 죽고, 160여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라나싱헤 프레마다사총리 등 정치지도자 1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쓰나미의 피해보다 더 큰 것.

이에 재해지원단이 이 지역을 방문해 가장 먼저 본 것은 정부군의 공격으로 잘려나간 망고나무. 병원과 주민들의 집 벽에는 모두 총탄자국이 빼곡히 남아있었다.

비록 2년전에 이들은 휴전을 했지만 여전히 갈등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이번 쓰나미에도 북부지역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기에 한계가 있었다.

황 단장은 “스리랑카 방송에서조차 타밀은 위험한 지역이라고 소개하며 의료지원단의 방문을 방해했다”면서 “쓰나미 보다 인간의 전쟁이 더 참혹한 것 같다”고 증언했다.


스리랑카를 방문한 재해의료지원단은 1월 10일과 11일에 걸쳐 귀국했다. 모두들 며칠간의 휴식을 통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황 단장은 자신이 근무하는 국립의료원에 입원해야 했다. 급히 출발하느라 약을 챙겨갈 수 없었을 뿐더러, 무더운 지역에서 다리 염증으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의술이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먼저 의술을 행한 그가 속히 건강이 회복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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