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과 착륙이 가장 중요하지요"

유석훈
발행날짜: 2005-02-24 06:42:09
  •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오른쪽부터 강종만 교수, 이영선(1년차), 구미숙(2년차), 이석면(1년차) ,길남수(2년차)
22일 오후에 도착한 분당서울대병원은 유화와 조각을 감상하는 외래환자들 때문에 미술 전시관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단아한 예술품을 지나쳐 들어간 3층 마취통증의학과에는 급하게 섭외한 탓인지 아직까지 의국원 1명과 전임의 1명이 조용히 기자를 맞았다.

나머지 의국원들이 일을 마치려면 오후 다섯 시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현재 1년차 세 명, 2년차 두 명의 전공의가 있을 뿐이다.

“언제나 이런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마취통증의의 일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일이고 약물 투여 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내성적인 성격이 많아요” 2년차 구미숙 선생과 권원경 전임의의 말이다.

어느새 대화에 참여한 1년차 이영선 선생, 이석면 선생, 2년차 길상만 선생, 그리고 한 여성잡지에 나간 인터뷰가 큰 인기를 끌었던 ‘스타’ 강종만 교수와 재미있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환자가 잠든 사이

앳되어 보이는 이영선 선생과 마스크 벗기 꺼려할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이석면 선생의 마취통증의학과 지원 동기는 역시 신세대 다웠다. 한마디로 잠자는 환자가 좋다는 것이다.

“외래 환자들을 다루는 의사들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시달림을 많이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취통증의학과는 환자가 잠들게 하고 깨우는 과정을 지휘하는 파트이기 때문에 직접 부딪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죠.”

2년차인 구미숙 선생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이영선 선생과 동기란다)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통증조절을 함께 하기 때문에 환자들과 마주칠 기회는 생각보다 많고, 3년차를 앞 둔 지금은 마취가 되었던 사람이 깨어났을 때 엄청난 만족감을 느껴요”

귀신이 산다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는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설’이 있다.

특정 전공의가 당직을 서는 날에는 유난히 응급수술환자가 많고, 전공의가 본원으로 파견을 나가거나 전공의 과정을 마쳐도 그 자리를 잇는 전공의가 꼭 나온다고 한다.

스텝이 항상 당직을 함께 서는 분당 서울대 병원 마취통증의학과에선 당직 순번을 바꾸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는 미신 같은 이야기가 의국 내에 돌고 있다.

전설의 전공의들은 당직 스텝들에게 미움을 받는 대신 어려운 환자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훌륭한 마취통증의가 되려면 자리를 이어받는 게 좋다고 한다.

새벽에서 황혼까지

마취통증의학과는 병원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과이다. 큰 수술이 있는 날이면 새벽 5~6시까지 출근한다. 반면에 일을 마치는 시간은 오후 5시 정도로 당직이 돌아오지 않으면 비교적 생활이 규칙적인 편이다.

1년차 때는 기본적인 마취, 2년차에는 통증과 폐 수술 환자 마취, 3, 4년차 때는 심장 마취와 심층 테크닉을 배운다.

경막외 마취와 같은 새로운 시술이 나올 때가 스트레스를 받는 때라고.

“마취통증의학과가 비인기과라는 것도 옛말입니다. 일정한 시간에 퇴근 할 수 있다는 것이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올해도 경쟁률이 많이 높아졌습니다”라고 권원경 전임의가 설명했다.

‘올드보이’는 강했다

샤프한 이미지와는 달리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강종만 교수는 기억나는 환자들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말문을 열었다.

“영화배우 최민식 씨는 체질상 마취가 잘 안 되는 케이스였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보다 두 배 정도의 약물을 투여해 깨어날 때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회복실에서 나오자마자 그 많은 사인과 휴대폰 카메라 공세에 일일이 응답하더군요. ‘아, 저래서 스타구나’라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잘 알려진 전 기업 총수는 뇌수술을 받고 마취를 깨자마자 회사에 일하러 간다고 소란을 부려 ‘돈을 벌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 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길상만 선생은 “분당서울대병원은 부분마취를 한 환자들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해 나이에 맞게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는데, 뽕짝을 들려준 어떤 노인 환자는 큰 소리로 따라 부르기도 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음악치료는 오용석 마취통증의학과장의 아이디어이다.

마취통증의사는 수술실의 ‘파일럿’

이영선 선생은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자신이 비행사가 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영선 선생뿐 아니라 이것은 마취통증의학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만한 생각이라고 이구동성이다.

“항공기는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가 가장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취도 처음 시작할 때와 환자가 깨어날 때가 가장 조마조마합니다. 특히 1, 2년차 때는 환자가 깨어날 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 근반, 세 근반하기 마련이지요.”

얼마 전 수술로 전신마취 경험이 있던 한 사람은 “마취과 의사여서 두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수술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가스마스크를 입에 댔을 때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됐어요. 그 때 깨어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죽음이 아니겠어요?”

수술실에 들어가다

마취 장면을 촬영하고 싶다는 기자의 끈질긴 부탁에 권원경 전임의가 두 손 들었다.

신발과 옷을 갈아입고 들어선 수술장 에는 여섯 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아홉 건 정도의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고, 기자가 들어간 곳은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의 수술장.

아이를 수술 침대로 옮기기 위해 한 의료진이 “엠보싱 침대로 올라와 아가”라는 농담이 인상 깊었다.

박희평 교수가 아이를 마취 가스로 잠을 들게 한 후 정맥마취와 근이완제를 주사했다. 사실 기자는 여기까지가 마취의 전 과정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박희평 교수는 “지금까지의 과정은 목에 튜브를 넣기 위한 전 단계일 뿐이고 목에 튜브를 넣는 ‘기관삽관’ 을 한 후 튜브를 통해서 마취가스로 마취를 하는 것”이라는 설명했다.

마취가 잘 되었는지 확인한 후 수술로 들어가며 수술 후 환자의 호흡 상태 등을 체크해 회복실로 옮긴다고 한다.

마취통증의국 ‘남겨진 이야기’, 그리고 ‘잊혀진 이야기’

종합병원 시스템을 잘 아는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마취통증의사에게 어떤 외과 의사나 내과 의사가 수술을 잘 하는지 물어본다.

모든 수술 집도의 바로 옆에서 전 수술 과정을 지켜보기 때문에 어떤 의사의 스킬이 가장 뛰어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마취통증의라고.

“수술 전 환자들은 마취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마취의에게 많은 부탁과 요구를 합니다. 반면 마취가 깨어난 후에 우리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하지만 수술이 끝난 환자가 숨을 쉬는 순간의 희열은 그것을 상쇄해 주고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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