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불신만 증폭...처방률 낮은 의료기관도 불만
<긴급진단>항생제 처방률 공개 1개월항생제 처방 변화 미미, 원성만 자자
복지부가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한지 9일로 만 한달이 지났다. 당시 복지부는 참여연대의 정보공개청구 소송 결과를 수용, 전국 병의원의 감기 등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했고, 처방률이 높은 일부 의료기관들은 병원 실명이 공개되면서 이미지 타격을 받았다. 항생제 처방률 공개 한 달, 의료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점검했다. <편집자주>
복지부가 전국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한지 한 달이 지났다.
메디칼타임즈가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일부 의료기관을 취재한 결과 처방 자제를 위한 가시적 움직임은 미미했고, 정부 정책을 맹렬히 공격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의료기관들도 이런 목소리에 가세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상기도감염에 대해 항생제를 약 18% 처방해 국내 종합전문요양기관 가운데 최저를 기록했다.
그러나 서울아산병원의 한 교수는 10일 “복지부가 처방률을 공개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이런 식의 발표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못박았다.
그는 “항생제 처방에 대한 적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처방이 낮다, 높다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면서 “처방률을 공개하려면 평가 자료 역시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처방은 그대로, 싹트는 편법
게임의 룰이 부재하면서 항생제 처방률이 공개되면 의료기관들도 사용을 자제할 것이란 예측도 현 상태에서는 과녁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항생제 처방률이 높게 나온 지방의 한 대학병원은 발표 직후 주임교수회의에서 TF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키로 한 바 있지만 한달이 지나면서 유야무야되고 있다.
기껏 내놓은 대책은 상기도감염에 대한 진료비를 청구할 때 반드시 질병코드를 명시하자는 정도다.
이런 움직임은 개원가에서도 뚜렷하다. 다시 말해 지표상 상기도감염의 항생제 처방률을 낮추기 위해 병명이나 주상병명, 부상병명을 바꾸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향후 이들 의료기관은 항생제 처방에 변동이 없지만 처방률을 떨어뜨릴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한 결과 편법만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의료계 항생제 내성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료기관들이 항생제 남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종합전문요양기관 가운데 항생제 처방 최소 기관은 18.55%였지만 최대 기관은 79.92%로 집계돼 4배가량 차이가 나고 있다. 동일한 3차의료기관에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미 보도한 것처럼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의료기관들은 의료진을 설득하고, 항생제위원회 등을 통해 불필요한 처방을 차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항생제 처방률을 처음으로 공개했기 때문에 처방행태가 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항변했다.
게임의 룰 제정 시급
문제는 이미 복지부가 밝힌 대로 정부는 매 분기별로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할 예정이지만 이런 식의 발표가 지속될 경우 내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의료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언제까지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당분간 분기별로 발표해 나갈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항생제 처방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감염학회 한 교수는 “항생제 처방을 낮추기 위해서는 의사들에게 납득할만한 처방지침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처방률을 공개하는 것은 의사와 환자간 불신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가 공동으로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최소 3년 이상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여서 항생제를 둘러싼 공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