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료원, 세브란스 실천정신 잊었는가"

이창진
발행날짜: 2007-08-16 06:06:51
  • 인요한 교수, 파업사태 진단...소외층 무료진료 제언

노사간 협상타결이 10일 경과한 지금도 연세의료원 파업에 따른 잠재적 불씨가 원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임금협상으로 시작해 의료 공공성과 신분보장에 이어 무노동 무임금, 고소고발로 이어지고 있는 28일간의 노사갈등은 많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123년이라는 세브란스 역사상 초유의 사태로 기록될 이번 파업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세브란스병원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인요한 교수의 푸른 눈에 비친 노사관계와 세브란스의 역할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초유의 파업사태를 바라본 인요한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에 내재된 문제점을 가감없이 피력했다.
지난 14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3층에 위치한 국제진료센터 소장인 인요한 교수(48, 본명 John A. Linton)와의 만남은 방학시기를 맞아 신체검사를 의뢰하는 외국인과 내국인으로 북적거려 1시간 남짓 기다려야 했다. (전날 기자의 취재요청을 전화인터뷰로 이해한 인요한 교수와의 소통 문제(?)로 인터뷰 대기시간이 길어졌다)

기자와 처음 대면한 인요한 교수는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정다운 말로 악수를 청했다.

비어있는 진료실에서 인터뷰를 시작한 인요한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의 파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첫 질문에 ‘과거로의 회귀’를 먼저 제언했다.

인요한 교수는 “50년 전 만해도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환자의 절반 이상이 무료진료의 소시민으로 선교목적과 사랑을 실천해왔다”며 “이같은 세브란스 정신이 지속됐다면 이번과 같은 파업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인요한 교수는 “경영진이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새로운 방안을 찾은데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로만 하나님과 기독교만을 외칠게 아니라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선교와 사랑을 몸소 실천한 예전 세브란스병원의 모습을 주창했다.

인 교수는 “이번 파업사태로 400억원에 이르는 경영손실을 본 것을 들었으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만을 찾을게 아니라 이중 절반만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한다면 세브란스에 대한 국민적 이미지가 새롭게 변모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빈부에 따라 진료비 적용을 차별화하는 일명 ‘로빈후드 정신’을 피력했다.

“순수성 사라진 노사관계 안타깝다”


전남 순천 태생인 인요한 교수는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일례로 그는 “과거 유신반대와 광주항쟁 등에서 보여준 시민의식은 순수했지만 지금은 보이지도 존재하지도 않은 ‘복수’와 ‘원수’라는 구태한 사고에 기인하고 있다”고 평하고 “97년 IMF 사태 후 고공행진을 더해가는 물가 상승이 오늘날 양극화와 노사관계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며 정부와 시민단체의 미흡한 사회적 순기능을 지적했다.

인요한 교수는 “경영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번 파업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세브란스병원은 경영진의 것도 교수들의 것도 아닌 모든 직종 구성원의 소유”라고 말해 교직원들의 화합을 당부했다.

노조와 관련, 인 교수는 “그동안 당할 만큼 당했으니 더 내놓으라는 식의 발상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하고 “이미 의사와 직원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우리가 아닌 소외계층을 챙겨야 할 때”라며 의료공공성 실천을 위한 자기희생을 강조했다.

파업기간 중 발생한 진료차질은 국제진료센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용한 소장을 포함한 11명의 의료진 중 4명이 파업에 참가해 밀려드는 환자진료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인요한 교수는 “파업기간 중 남은 사람이나 나간 사람이나 모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하고 “노사 타결 후 가진 전체회식에서 ‘소장이 조금만 더 잘 챙겼으면 나가지 않았을 텐데’라는 미안한 마음과 반성의 뜻을 피력했다”며 부서 책임자로서의 솔직한 마음을 토로했다.

#i3#"교수진, 권위 탈피한 수평적 사고전환 필요“


인 교수는 “남아있던 의료진에게 당부한 것은 나간 동료들이 돌아오면 내색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의사와 간호사, 일반직 등으로 점점 전문화·세분화되고 있는 대학병원의 특성상 엄밀히 파업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세브란스병원 교수진에게 권위가 아닌 인간미를 보여줄 것을 주문했다.

인 교수는 “이번 파업에서 이성을 잃지 않고 의연한 자세를 보여준 경영진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전하고 “일부에서는 파업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개진했으나 원장이 어차피 품어야 하는 식구들이라는 의젓한 자세를 보였다”며 흔들리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경영진을 격려했다.

인요한 교수는 “그동안 업무적으로만 서먹하게 지낸 직종별 벽을 깨고 이번 파업을 계기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며 “교수진도 전문직이라는 굴레에만 억매이지 말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인요한 교수는 “노조도 청춘을 의대에 바친 교수들이 지금도 새벽부터 밤늦도록 수술과 진료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피력하고 “교수와 직원 모두 남을 돕는 직업인 의료기관에 근무한다는 즐거운 마음을 갖고 서로를 배려한다면 이번과 같은 위기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며 수평적 사고에 근거한 교직원들의 사고전환을 역설했다.

인터뷰 동안 이번 파업을 바라본 솔직한 심정을 가감없이 피력한 인요한 교수는 조선시대 선교를 위해 방한한 미국인의 후손으로 세브란스 설립자인 알렌 박사와 친구인 증조부의 뜻을 이어 연세의대(87년졸)를 나와 91년부터 국제진료센터 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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