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정신과 전문의
뭐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지난 정권에 이어 의료계는 여전히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다. 한때 언론에 흘러 다니던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는 물 건너 간지 오래고, 노무현 정부의 코드를 잘 읽는 장관 중 하나로 꼽히며 담뱃값 3000원 인상 등 시의적절한 정치적 이슈를 터뜨리는데 능한 김화중 복지부 장관을 협상 파트너로 둔 채 신임 김재정 회장의 의협집행부는 힘든 임기 초반을 맞닥뜨리고 있다.
아무리 의사들이 죽는소리를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그러다 보니 국가보건정책 전반에 대한 입바른 정책제안마저도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몰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매장 당하거나 도리어 말을 꺼내지 않는 게 나았다는 자조 섞인 평가를 할 정도로 ‘의사들이 싫어하고 반대하는 정책이 국민을 위해 올바른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요즘 ‘코드’다.
최근 조제내역서의 의무화를 두고 공방전이 치열한 상황인데 이 역시 의사들이 원하는 대로 100%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사안은 아니라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사들이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쌍수를 들어 반대하던 시민단체 중 경실련에서 이례적으로 "의협이 처방전을 2매 발행하는 대신 약사 조제내역서 발급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는 조제내역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몇년동안 DJ정권기간동안 정권의 파트너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강력한 NGO인 참여연대, 경실련, 그리고 이전 정부의 시민단체를 통한 정책추진이라는 드라이브를 업고 의약분업 사태를 통해 급격히 부상한 건강연대, 마지막으로 병원노조, 사회보험노조 등이 보여준 의료계 정책에 대한 그동안의 입장과는 무척 다른 것이라 반갑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큰 기조는 변하지 않은 채 단발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좀더 정확한 평가라 생각한다.
요즘들어 비대화된 시민단체가 여론의 공격을 받고, 또 자체적으로 반성을 하면서 조금 위축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참여정부에서도 시민단체가 정책결정에 주요한 변수로 기능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당논의가 한참인 집권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절대 의석수가 적은 여소야대의 상황으로 국회에서 입법권한이 위축되어있으며, 정권 초기부터 언론과 청와대는 대치국면에 있고 그 갈등은 점차 첨예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참여정부가 어떤 정책을 끌고 나가는데 있어서 믿을 수 있는 파트너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금의 자리에 앉힌 인터넷의 힘과 시민단체 둘 뿐이다. 그러므로 시민단체의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시민단체의 비중은 줄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가끔 인터넷 게시판 등에 의료계 현안을 놓고 의-약-정이 모일 때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시민을 대표한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은 시민이 없는 시민단체나 소비자 단체는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때문에 의료계의 현안을 논할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위의 필자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런 식의 주장은 감정적일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를 배제할 수는 없고, 그들의 영향력은 이번 정권 내내 계속될 것이라는 이 현실에서 의료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이 시점에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경실련, 참여연대등의 시민단체에 참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의협에서 정책을 정교하게 만들어 협상테이블에서 시민단체, 약계, 정부와 협상을 잘 이끌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민단체의 전문성을 높이고, 의료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도 의식있는 의사들이 시민단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사법고시 1000명 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여러 명의 변호사가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시민단체의 상근직으로 들어갔다. 또 경제, 경영, 공학등 여러 그룹의 전문가들이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목소리만 크던 시민단체의 정책제안이나 대기업의 부정을 폭로가 매우 정교해졌고 폭발력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의료계는 어떠한가? 최근 이적단체로 규정된 진보의련이나 현재 의사사회 전체적인 정서와는 어긋난 관점을 갖고 있는 인의협이 시민단체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개인적인 의견교환을 하는 경우는 있으나 조직내부에서 주도적으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든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도 지금 전문성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부단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럴 때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천력, 그리고 정책대안을 만들 논리를 가진 의사가 나타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굳건히 닫힌 성문 밖에서 그들의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성안에 들어가 그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민건강 전체를 책임질 의사들중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해야 할 일은 의약분업 현안, 의료보험 수가, 공공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책과 같이 지금 의료계가 정부와 협상을 해야 할 사안뿐만 아니라 글리벡 문제, 의료급여 및 저소득층의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부분 등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도 산적해있는 상황이다.
의약분업이후 의사들은 빠른 진화를 하였고, 정치적 색깔이 사뭇 다른 조직들이 생겨나고 또 분파들이 갈라지고 있다. 그리고 여섯 명이 후보로 출마했던 지난 의협회장 선거는 그 분화가 어느 수준이상으로 올라갔음을 보여줬다. 이는 전체 조직의 활성화와 탄력을 위해 긍정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의협회장 선거 이후 낙선한 후보와 그를 지지했던 핵심인력들은 정중동중이다. 나는 이분들이 다음 의협회장 선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과감히 더 큰판으로 나가보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이미 자신이 지향하는 바가 의사사회 더 나아가 국민건강을 위한 큰 틀을 짜는데 있다면 시민단체와 같은 곳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그동안 갈고 닦은 의료계 현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비젼을 그들과 공유하며 일부 학자와 정책입안자에 의해 왜곡되어있던 면들을 바로잡으며 실천적 대안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시민단체와 여론이 갖고 있는 부정적 시각을 고쳐나가게 될 것이다.
의사사회 내부에 안주하며 대안 없는 비판이나 논쟁으로 소모하기에는 이분들의 능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트로이 성은 밖에서는 깨고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성안에 목마를 집어넣음으로써 비로소 난공불락이던 트로이 성은 점령되었다. 지금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긴장을 윈윈으로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트로이의 목마가 아닐까?
하지현 박사(정신과전문의)
아무리 의사들이 죽는소리를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그러다 보니 국가보건정책 전반에 대한 입바른 정책제안마저도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몰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매장 당하거나 도리어 말을 꺼내지 않는 게 나았다는 자조 섞인 평가를 할 정도로 ‘의사들이 싫어하고 반대하는 정책이 국민을 위해 올바른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요즘 ‘코드’다.
최근 조제내역서의 의무화를 두고 공방전이 치열한 상황인데 이 역시 의사들이 원하는 대로 100%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사안은 아니라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사들이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쌍수를 들어 반대하던 시민단체 중 경실련에서 이례적으로 "의협이 처방전을 2매 발행하는 대신 약사 조제내역서 발급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는 조제내역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몇년동안 DJ정권기간동안 정권의 파트너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강력한 NGO인 참여연대, 경실련, 그리고 이전 정부의 시민단체를 통한 정책추진이라는 드라이브를 업고 의약분업 사태를 통해 급격히 부상한 건강연대, 마지막으로 병원노조, 사회보험노조 등이 보여준 의료계 정책에 대한 그동안의 입장과는 무척 다른 것이라 반갑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큰 기조는 변하지 않은 채 단발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좀더 정확한 평가라 생각한다.
요즘들어 비대화된 시민단체가 여론의 공격을 받고, 또 자체적으로 반성을 하면서 조금 위축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참여정부에서도 시민단체가 정책결정에 주요한 변수로 기능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당논의가 한참인 집권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절대 의석수가 적은 여소야대의 상황으로 국회에서 입법권한이 위축되어있으며, 정권 초기부터 언론과 청와대는 대치국면에 있고 그 갈등은 점차 첨예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참여정부가 어떤 정책을 끌고 나가는데 있어서 믿을 수 있는 파트너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금의 자리에 앉힌 인터넷의 힘과 시민단체 둘 뿐이다. 그러므로 시민단체의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시민단체의 비중은 줄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가끔 인터넷 게시판 등에 의료계 현안을 놓고 의-약-정이 모일 때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시민을 대표한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은 시민이 없는 시민단체나 소비자 단체는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때문에 의료계의 현안을 논할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위의 필자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런 식의 주장은 감정적일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를 배제할 수는 없고, 그들의 영향력은 이번 정권 내내 계속될 것이라는 이 현실에서 의료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이 시점에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경실련, 참여연대등의 시민단체에 참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의협에서 정책을 정교하게 만들어 협상테이블에서 시민단체, 약계, 정부와 협상을 잘 이끌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민단체의 전문성을 높이고, 의료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도 의식있는 의사들이 시민단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사법고시 1000명 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여러 명의 변호사가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시민단체의 상근직으로 들어갔다. 또 경제, 경영, 공학등 여러 그룹의 전문가들이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목소리만 크던 시민단체의 정책제안이나 대기업의 부정을 폭로가 매우 정교해졌고 폭발력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의료계는 어떠한가? 최근 이적단체로 규정된 진보의련이나 현재 의사사회 전체적인 정서와는 어긋난 관점을 갖고 있는 인의협이 시민단체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개인적인 의견교환을 하는 경우는 있으나 조직내부에서 주도적으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든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도 지금 전문성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부단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럴 때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천력, 그리고 정책대안을 만들 논리를 가진 의사가 나타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굳건히 닫힌 성문 밖에서 그들의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성안에 들어가 그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민건강 전체를 책임질 의사들중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해야 할 일은 의약분업 현안, 의료보험 수가, 공공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책과 같이 지금 의료계가 정부와 협상을 해야 할 사안뿐만 아니라 글리벡 문제, 의료급여 및 저소득층의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부분 등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도 산적해있는 상황이다.
의약분업이후 의사들은 빠른 진화를 하였고, 정치적 색깔이 사뭇 다른 조직들이 생겨나고 또 분파들이 갈라지고 있다. 그리고 여섯 명이 후보로 출마했던 지난 의협회장 선거는 그 분화가 어느 수준이상으로 올라갔음을 보여줬다. 이는 전체 조직의 활성화와 탄력을 위해 긍정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의협회장 선거 이후 낙선한 후보와 그를 지지했던 핵심인력들은 정중동중이다. 나는 이분들이 다음 의협회장 선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과감히 더 큰판으로 나가보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이미 자신이 지향하는 바가 의사사회 더 나아가 국민건강을 위한 큰 틀을 짜는데 있다면 시민단체와 같은 곳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그동안 갈고 닦은 의료계 현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비젼을 그들과 공유하며 일부 학자와 정책입안자에 의해 왜곡되어있던 면들을 바로잡으며 실천적 대안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시민단체와 여론이 갖고 있는 부정적 시각을 고쳐나가게 될 것이다.
의사사회 내부에 안주하며 대안 없는 비판이나 논쟁으로 소모하기에는 이분들의 능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트로이 성은 밖에서는 깨고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성안에 목마를 집어넣음으로써 비로소 난공불락이던 트로이 성은 점령되었다. 지금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긴장을 윈윈으로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트로이의 목마가 아닐까?
하지현 박사(정신과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