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김진(닥터헬프 대표이사)
개원 러시가 한창이던 작년, 개원 시장에는 클리닉빌딩이니 클리닉센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의사들은 여러 의원이 한 곳에 모였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였고 건물주는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의원들을 입점시킨다는 장점을 생각했다. 여기 저기 문 닫을 걱정을 할 정도로 경기가 좋지 않은 요즘에도 그 열기는 아직 남아 있는 듯 하다. 여전히 건물만 올라갔다 하면 클리닉센터니 빌딩이니 이름이 붙고 광고지가 뿌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먼저 용어부터 정리해보겠다. 클리닉빌딩이나 센터를 정의하는 데 명확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클리닉빌딩은 단독 건물 전체 혹은 대부분을 의료기관이 사용하는 것을 말하고, 클리닉센터는 대규모 주상복합이나 큰 상가의 상당 부분 구획을 차지한 경우로 구별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오늘은 편의상 클리닉센터라고 통칭하고자 한다.
클리닉센터의 장점에 대해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장을 편 뒤이므로 반복하지는 않겠다. 오늘은 반대로 클리닉빌딩에 연관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굳이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고생한 선배 의사의 예를 통해 비슷한 시행착오를 피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클리닉센터가 실망스러운 이유
1. 자리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군 !
그럴 듯해 보이는 클리닉센터의 광고나 홍보물은 대개 임대나 분양을 대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들은 분양이나 임대가 성사되었을 때 수익을 얻으므로 부동산 중개인과 같이 [물건의 우수성 알리기]와 [계약의 성사]를 최고의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부분은 은폐하거나 소극적으로 알리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광고에 흔히 등장하는 [배후 2만 세대의 개원 최적지]나 [1만 세대의 독점적인 메디컬 빌딩] 등등…의 유혹적인 조건. 그러나 많은 선생님들이 경험으로 이미 파악하고 계시듯이, 그런 것은 없다. 그저 ‘좀 더 나은’ 자리가 있을 뿐이다. 파는 사람 입장을 담은 문구와 포장에 지나친 기대를 할 이유는 없다.
직접 방문해 보면 결론은 대개 다음 두 가지 중의 하나다. 하나는 “자리가 참 좋네, 그러나 그만큼 비싸고 주변에 경쟁기관이 많군”, 다른 하나는 “여기서 병원을 하라고? 제정신인가?” 이름만 붙인다고 다 클리닉빌딩이건 메디컬 센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알려진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의원의 경우는 어떨까? 자리가 좀 나빠도 우리 브랜드 정도라면 통한다라는 자신감이 통할까? 구리에 들어간 한 클리닉빌딩은 이른바 ‘브랜드의 힘’을 믿고 대로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입지를 잡았다. 아무리 우겨도 그 입지가 썩 좋은 자리는 아니었고, 브랜드의 경쟁력으로도 손쉽게 넘을 수 없는 진입장벽도 분명 존재했다. 게다가 나머지 자리에 입점해야 하는, 이른바 [브랜드 경쟁력이 없는] 의원들의 입장은 어땠을까? 예상대로 임대나 분양은 지지부진하였다.
2. 1년 후에 어떻게 될 줄 알고 분양을 받는담 ?
일반적인 경우, 같은 진료권에 경쟁 의원이 단 한 개만 더 생겨도 균형은 금방 깨진다. 요즘처럼 서울의 한 구에 다달이 생겼다 없어지는 의원이 적어도 몇 개씩은 되는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장미빛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개 좋은 자리를 표방하며 이야기하는 클리닉센터는 6개월에서 1년, 길게는 2년 후에 입점이 가능한 분양물이 많다. 6개월 정도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미래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이상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 신기루를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말만 믿고 투자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입점이 가능한 빈 자리의 경우도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계획된 건물이라면 오래 전부터 임대 분양을 시도했을 터인데, 완공을 앞둔 시점이나 완공 후까지 공실이 있다는 점은 꺼림칙할 수 밖에 없다. ‘말처럼 정말 좋은 물건일까?’ 라는 의심을 가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부동산 업무를 대행하는 업자의 입장에서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임대보다는 분양을 줄 때 수수료가 크다. 그러므로 대행업자는 우선 분양을 목표로 하고, 어렵게 되면 그때서야 차선으로 다른 투자자를 통해 임대를 시도한다.
대규모 택지 개발이 되어 만들어지는 신도시는 세대수가 많은 만큼 상가도 많다. 잘 구획된 상업시설은 요지에 몰려있고, 대개 비슷비슷하게 좋은 자리이다. 분양가도 비싸지만 투자 가치를 생각하여, 1, 2 년 뒤 개원을 계획하여 분양을 받기도 한다.
부천의 중동에선 일찌감치부터 준비해오던 중대형 안과 세 개가 거의 앞, 옆 건물에 나란히 분양을 받았다. 개원을 코앞에 두고 이를 알았을 때 서로 당혹해 했지만 이런 상황을 분양 시에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산이 변하는 데에도 10년이 채 안 걸리는 세상이다. 의료 환경이 뒤집히는 데에는 1년이면 충분하다.
완공이 된 이후에도 고민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대규모 택지 개발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경우, 충분히 입주가 끝나고 배후가 형성되고 상권이 활성화되려면 수 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분당의 한 역 인근은 대규모 주상복합들이 들어서고 최근 상가들의 입점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5년 말이 되어야 대부분 입주가 끝나는 상황이지만, 벌써 의원들이 속속 열리고 있다. 물론 역에 백화점도 있다지만, 멀찌감치 그 역에 오는 사람을 모아 꾸려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어렵사리 역 앞 가장 좋은 자리를 분양 받은 선생님은 고민이 많다. 지금은 개원을 한다고 해도 배후 인구가 적어 마이너스가 날 것은 뻔하고, 기다리자니 다른 의원이 생길 것이고, 일단 임대를 주고 한 두 해 뒤에 마케팅으로 승부를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1, 2년 있으려고 비싼 임대료를 내고 살아줄 사람은 없을 것 같고…
3. 이거 좀 비싼 거 아니야?
클리닉센터는 비싸다. 애초 이러한 센터를 짓겠다고 계획하여 진행하면 비용 절감을 할 수 있고 공사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실제 완공 후의 클리닉센터의 분양이나 임대가를 보면 일반 사무실의 약 120% 내외이다.
분양가에는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건축비보다도 기본적으로 땅값이 문제이고, 또한 건축주가 대출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투자와 이자비용, 수익 등을 모두 생각하여 그 가격이 정해진다. 또한 파이낸싱을 통한 투자일 경우도 역시 투자자의 수익률이 중요해진다.
최근 건물만 지었다 하면 다 클리닉빌딩이라 우기는 것도 이러한 수익률이 일반 사무실보다 낫기 때문인 것은 당연하다. 입지를 최우선으로 치는 의사들이 좋은 자리라면 어느 정도의 추가 비용을 감수하곤 했으니 클리닉빌딩 바람에도 일조한 셈이다.
실제로 역삼동에 짓는 큰 건물의 한 층을 모두 클리닉센터로 분양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일단 분양가도 상당했지만, 무엇보다 통일된 프로모션을 하자는 제안이 포함되면서 이러한 대행비용까지 분양가에 반영되어 미리 가격만 훌쩍 올라버렸다.
관리비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관리비는 광고에서 알리지 않으므로 처음에 고지가 잘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강남 지역만 보더라도 임대 평당 2만원 정도의 관리비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의원이 많이 입점한 경우 다른 건물과 달리 건물주가 전반적으로 관리할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실제로는 관리비가 오히려 조금씩 비싼 경향이 있다.
최악의 경우는 건물주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는 임대료 분쟁이 엉뚱한 비용 지출로 번지는 예도 있다. 선릉역 근처의 한 한의원은 확장 이전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임대료 문제로 분쟁이 생겼고, 건물주는 뜻대로 되지 않자, 건물의 주차비를 엄청나게 인상해버렸다. 결국 다른 주차 공간이 없는 한의원에서는 방문 환자의 주차비로만 수 백 만원을 지불할 수 밖에 없었다.
전문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거나 특별한 경우(건물주가 1층 약국을 운영한다든지 ^^;)를 제외한다면 실제적으로 클리닉센터의 장점으로 꼽히는 여러 종류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이런 장점마저도 상대적으로 높은 분양가나 임대가에 묻혀 버리기 일쑤이다.
4. 이름만 붙이면 클리닉빌딩이 되는 건가 ?
건물의 수익률이 좋다는 이유로, 그리고 한 때 임대 수요 자체가 많았기 때문에 병의원을 입주 시키려는 건물주도 많았다. 한참 붐일 때는 1층 약국자리에 억대의 바닥권리금을 부르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새 건물에 클리닉빌딩이란 이름을 붙이고 두 세 층 정도를 몰아서 의원 입주용으로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름만 붙인다고, 의원이 몇 개 들어와 있다고 클리닉빌딩이 되는 걸까? 의료기관을 몇 개씩 유치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의료기관의 특성을 알고 기본적인 환자에 대한 배려가 되어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 경사로 하나 없고, 턱없이 부족한 전기용량에, 휠체어 하나 간신히 들어갈 엘리베이터 뿐이면서도 클리닉빌딩이라고 우기는 곳이 없지 않다.
입점 예상 종목이나 희망 종목을 적은 계획표를 보면 가관인 경우도 많다. 피부과, 성형외과 옆에, 미용실이나 피부관리실이 들어서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고, 정형외과와 접골원을 묶어 놓고, 1층에 동물병원을 넣은 클리닉빌딩을 계획하기도 하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빌딩 이름이야 건물주 마음대로 짓는 것이겠지만 – 실제로 메디컬 센터 등의 이름은 함부로 붙일 수 없다 유권해석이 있긴 하다 – 작명만으로 클리닉빌딩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5. 엉뚱한 돈이나 조건이 붙는 거 아니야 ?
일반적인 부동산에는 중개수수료라는 것이 있다. 클리닉센터의 경우도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소개가 되기도 하지만, 기획부터 사후 관리까지 담당하는 전문 컨설팅 회사가 담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회사의 수익은 분양 수수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문 회사의 도움을 얻을 경우, 더 나은 자리를 찾게 될 수도 있겠지만, 비싼 반대급부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
한편 대부분 의원은 임대를 선호하는 편이므로, 임대가 주로 이루어지는 건물의 경우엔 이런 회사가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아진다. 이런 경우 인테리어나 장비, 기타 마케팅 대행 등과 같은 부분을 수주하여 수익을 보존코자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한 클리닉빌딩의 경우, 입점 의원의 지속적인 공동 마케팅 관리 등을 이유로 관리비 이외에 추가의 비용이 책정되고 있었다.
그런 업체를 소개 받고 장단점을 따져 결정하면 되는 옵션(Option)이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겠으나, 일단 의무조항(Obligation)이 된다면 접고 시작하는 셈이다. 선택은 자유로울수록 좋은 것 아닌가?
6. 시너지 효과, 진짜 있을까 ?
모여 있음으로써 생기는 장점은 분명 있다. 주변 환자들에게 종합적인 의료기관으로 인식될 수도 있고, 다른 과에 방문한 환자에 노출이 되면서 자연스레 방문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부분적인 것이고, 클리닉센터 안에서도 잘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은 분명 나누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공동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부분은 가장 애매하다. 잘만 되면 홍보든 광고든 비용을 상당히 절감하며 좋은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른바 [공동의 뜻]이 조금씩 다를 경우 이런 꿈은 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공동개원이야 한 배를 탄 사람들이므로 툭탁거리건 말건 내부 사정이지만, 각기 다른 의원이 한 곳에 모여있는 상황에서 각 원장들의 이해관계가 같을 리 없다.
강남의 한 클리닉빌딩은 역전 교차로에 위치해 있다. 건너편에 비해 통행량은 적고 시선을 덜 끌지만, 그래도 역세권인지라 적잖은 가격에 분양과 임대가 되었다. 애초 건물 홍보 시에 이야기되었던 공동 마케팅에 대해서는 꿈을 접었다. 처음에 간판을 비슷하게 맞추고 지하철 광고를 내는 것까지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사사건건 문제가 생겼다. 건물 입구의 도우미 하나를 쓰거나 공동으로 전단 광고를 하나 하려 해도 성형외과와 가정의학과의 이해가 같을 리 없었다. 게다가 각 원장마다 다 제 각각의 취향과 색깔이 있는 법. 결국 원활하게 공동마케팅은 진행되지 못하였고, 이를 주관한 컨설팅 회사는 분쟁을 겪었다.
클리닉센터에 모이는 것이 시너지(Synergy)가 될지 슬러지(Sludge)가 될지를 미리 판단할 수는 없다. 대부분 의원이 선호하는 자리들은 비슷비슷하므로 꼭 클리닉빌딩이 아니더라도 자연히 모여지게 되어있기도 하다.
클리닉센터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가능한 단점을 예상하고, 이를 보완하거나 제거하고 그 장점을 살리려고 애를 써야 할 것이다. 훨씬 적은 비용, 훨씬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내고자 한다면 서로의 마음부터 잘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 김진(닥터헬프 www.drhelp.net 대표이사)
먼저 용어부터 정리해보겠다. 클리닉빌딩이나 센터를 정의하는 데 명확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클리닉빌딩은 단독 건물 전체 혹은 대부분을 의료기관이 사용하는 것을 말하고, 클리닉센터는 대규모 주상복합이나 큰 상가의 상당 부분 구획을 차지한 경우로 구별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오늘은 편의상 클리닉센터라고 통칭하고자 한다.
클리닉센터의 장점에 대해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장을 편 뒤이므로 반복하지는 않겠다. 오늘은 반대로 클리닉빌딩에 연관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굳이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고생한 선배 의사의 예를 통해 비슷한 시행착오를 피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클리닉센터가 실망스러운 이유
1. 자리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군 !
그럴 듯해 보이는 클리닉센터의 광고나 홍보물은 대개 임대나 분양을 대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들은 분양이나 임대가 성사되었을 때 수익을 얻으므로 부동산 중개인과 같이 [물건의 우수성 알리기]와 [계약의 성사]를 최고의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부분은 은폐하거나 소극적으로 알리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광고에 흔히 등장하는 [배후 2만 세대의 개원 최적지]나 [1만 세대의 독점적인 메디컬 빌딩] 등등…의 유혹적인 조건. 그러나 많은 선생님들이 경험으로 이미 파악하고 계시듯이, 그런 것은 없다. 그저 ‘좀 더 나은’ 자리가 있을 뿐이다. 파는 사람 입장을 담은 문구와 포장에 지나친 기대를 할 이유는 없다.
직접 방문해 보면 결론은 대개 다음 두 가지 중의 하나다. 하나는 “자리가 참 좋네, 그러나 그만큼 비싸고 주변에 경쟁기관이 많군”, 다른 하나는 “여기서 병원을 하라고? 제정신인가?” 이름만 붙인다고 다 클리닉빌딩이건 메디컬 센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알려진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의원의 경우는 어떨까? 자리가 좀 나빠도 우리 브랜드 정도라면 통한다라는 자신감이 통할까? 구리에 들어간 한 클리닉빌딩은 이른바 ‘브랜드의 힘’을 믿고 대로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입지를 잡았다. 아무리 우겨도 그 입지가 썩 좋은 자리는 아니었고, 브랜드의 경쟁력으로도 손쉽게 넘을 수 없는 진입장벽도 분명 존재했다. 게다가 나머지 자리에 입점해야 하는, 이른바 [브랜드 경쟁력이 없는] 의원들의 입장은 어땠을까? 예상대로 임대나 분양은 지지부진하였다.
2. 1년 후에 어떻게 될 줄 알고 분양을 받는담 ?
일반적인 경우, 같은 진료권에 경쟁 의원이 단 한 개만 더 생겨도 균형은 금방 깨진다. 요즘처럼 서울의 한 구에 다달이 생겼다 없어지는 의원이 적어도 몇 개씩은 되는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장미빛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개 좋은 자리를 표방하며 이야기하는 클리닉센터는 6개월에서 1년, 길게는 2년 후에 입점이 가능한 분양물이 많다. 6개월 정도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미래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이상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 신기루를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말만 믿고 투자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입점이 가능한 빈 자리의 경우도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계획된 건물이라면 오래 전부터 임대 분양을 시도했을 터인데, 완공을 앞둔 시점이나 완공 후까지 공실이 있다는 점은 꺼림칙할 수 밖에 없다. ‘말처럼 정말 좋은 물건일까?’ 라는 의심을 가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부동산 업무를 대행하는 업자의 입장에서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임대보다는 분양을 줄 때 수수료가 크다. 그러므로 대행업자는 우선 분양을 목표로 하고, 어렵게 되면 그때서야 차선으로 다른 투자자를 통해 임대를 시도한다.
대규모 택지 개발이 되어 만들어지는 신도시는 세대수가 많은 만큼 상가도 많다. 잘 구획된 상업시설은 요지에 몰려있고, 대개 비슷비슷하게 좋은 자리이다. 분양가도 비싸지만 투자 가치를 생각하여, 1, 2 년 뒤 개원을 계획하여 분양을 받기도 한다.
부천의 중동에선 일찌감치부터 준비해오던 중대형 안과 세 개가 거의 앞, 옆 건물에 나란히 분양을 받았다. 개원을 코앞에 두고 이를 알았을 때 서로 당혹해 했지만 이런 상황을 분양 시에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산이 변하는 데에도 10년이 채 안 걸리는 세상이다. 의료 환경이 뒤집히는 데에는 1년이면 충분하다.
완공이 된 이후에도 고민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대규모 택지 개발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경우, 충분히 입주가 끝나고 배후가 형성되고 상권이 활성화되려면 수 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분당의 한 역 인근은 대규모 주상복합들이 들어서고 최근 상가들의 입점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5년 말이 되어야 대부분 입주가 끝나는 상황이지만, 벌써 의원들이 속속 열리고 있다. 물론 역에 백화점도 있다지만, 멀찌감치 그 역에 오는 사람을 모아 꾸려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어렵사리 역 앞 가장 좋은 자리를 분양 받은 선생님은 고민이 많다. 지금은 개원을 한다고 해도 배후 인구가 적어 마이너스가 날 것은 뻔하고, 기다리자니 다른 의원이 생길 것이고, 일단 임대를 주고 한 두 해 뒤에 마케팅으로 승부를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1, 2년 있으려고 비싼 임대료를 내고 살아줄 사람은 없을 것 같고…
3. 이거 좀 비싼 거 아니야?
클리닉센터는 비싸다. 애초 이러한 센터를 짓겠다고 계획하여 진행하면 비용 절감을 할 수 있고 공사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실제 완공 후의 클리닉센터의 분양이나 임대가를 보면 일반 사무실의 약 120% 내외이다.
분양가에는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건축비보다도 기본적으로 땅값이 문제이고, 또한 건축주가 대출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투자와 이자비용, 수익 등을 모두 생각하여 그 가격이 정해진다. 또한 파이낸싱을 통한 투자일 경우도 역시 투자자의 수익률이 중요해진다.
최근 건물만 지었다 하면 다 클리닉빌딩이라 우기는 것도 이러한 수익률이 일반 사무실보다 낫기 때문인 것은 당연하다. 입지를 최우선으로 치는 의사들이 좋은 자리라면 어느 정도의 추가 비용을 감수하곤 했으니 클리닉빌딩 바람에도 일조한 셈이다.
실제로 역삼동에 짓는 큰 건물의 한 층을 모두 클리닉센터로 분양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일단 분양가도 상당했지만, 무엇보다 통일된 프로모션을 하자는 제안이 포함되면서 이러한 대행비용까지 분양가에 반영되어 미리 가격만 훌쩍 올라버렸다.
관리비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관리비는 광고에서 알리지 않으므로 처음에 고지가 잘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강남 지역만 보더라도 임대 평당 2만원 정도의 관리비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의원이 많이 입점한 경우 다른 건물과 달리 건물주가 전반적으로 관리할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실제로는 관리비가 오히려 조금씩 비싼 경향이 있다.
최악의 경우는 건물주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는 임대료 분쟁이 엉뚱한 비용 지출로 번지는 예도 있다. 선릉역 근처의 한 한의원은 확장 이전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임대료 문제로 분쟁이 생겼고, 건물주는 뜻대로 되지 않자, 건물의 주차비를 엄청나게 인상해버렸다. 결국 다른 주차 공간이 없는 한의원에서는 방문 환자의 주차비로만 수 백 만원을 지불할 수 밖에 없었다.
전문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거나 특별한 경우(건물주가 1층 약국을 운영한다든지 ^^;)를 제외한다면 실제적으로 클리닉센터의 장점으로 꼽히는 여러 종류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이런 장점마저도 상대적으로 높은 분양가나 임대가에 묻혀 버리기 일쑤이다.
4. 이름만 붙이면 클리닉빌딩이 되는 건가 ?
건물의 수익률이 좋다는 이유로, 그리고 한 때 임대 수요 자체가 많았기 때문에 병의원을 입주 시키려는 건물주도 많았다. 한참 붐일 때는 1층 약국자리에 억대의 바닥권리금을 부르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새 건물에 클리닉빌딩이란 이름을 붙이고 두 세 층 정도를 몰아서 의원 입주용으로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름만 붙인다고, 의원이 몇 개 들어와 있다고 클리닉빌딩이 되는 걸까? 의료기관을 몇 개씩 유치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의료기관의 특성을 알고 기본적인 환자에 대한 배려가 되어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 경사로 하나 없고, 턱없이 부족한 전기용량에, 휠체어 하나 간신히 들어갈 엘리베이터 뿐이면서도 클리닉빌딩이라고 우기는 곳이 없지 않다.
입점 예상 종목이나 희망 종목을 적은 계획표를 보면 가관인 경우도 많다. 피부과, 성형외과 옆에, 미용실이나 피부관리실이 들어서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고, 정형외과와 접골원을 묶어 놓고, 1층에 동물병원을 넣은 클리닉빌딩을 계획하기도 하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빌딩 이름이야 건물주 마음대로 짓는 것이겠지만 – 실제로 메디컬 센터 등의 이름은 함부로 붙일 수 없다 유권해석이 있긴 하다 – 작명만으로 클리닉빌딩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5. 엉뚱한 돈이나 조건이 붙는 거 아니야 ?
일반적인 부동산에는 중개수수료라는 것이 있다. 클리닉센터의 경우도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소개가 되기도 하지만, 기획부터 사후 관리까지 담당하는 전문 컨설팅 회사가 담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회사의 수익은 분양 수수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문 회사의 도움을 얻을 경우, 더 나은 자리를 찾게 될 수도 있겠지만, 비싼 반대급부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
한편 대부분 의원은 임대를 선호하는 편이므로, 임대가 주로 이루어지는 건물의 경우엔 이런 회사가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아진다. 이런 경우 인테리어나 장비, 기타 마케팅 대행 등과 같은 부분을 수주하여 수익을 보존코자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한 클리닉빌딩의 경우, 입점 의원의 지속적인 공동 마케팅 관리 등을 이유로 관리비 이외에 추가의 비용이 책정되고 있었다.
그런 업체를 소개 받고 장단점을 따져 결정하면 되는 옵션(Option)이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겠으나, 일단 의무조항(Obligation)이 된다면 접고 시작하는 셈이다. 선택은 자유로울수록 좋은 것 아닌가?
6. 시너지 효과, 진짜 있을까 ?
모여 있음으로써 생기는 장점은 분명 있다. 주변 환자들에게 종합적인 의료기관으로 인식될 수도 있고, 다른 과에 방문한 환자에 노출이 되면서 자연스레 방문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부분적인 것이고, 클리닉센터 안에서도 잘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은 분명 나누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공동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부분은 가장 애매하다. 잘만 되면 홍보든 광고든 비용을 상당히 절감하며 좋은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른바 [공동의 뜻]이 조금씩 다를 경우 이런 꿈은 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공동개원이야 한 배를 탄 사람들이므로 툭탁거리건 말건 내부 사정이지만, 각기 다른 의원이 한 곳에 모여있는 상황에서 각 원장들의 이해관계가 같을 리 없다.
강남의 한 클리닉빌딩은 역전 교차로에 위치해 있다. 건너편에 비해 통행량은 적고 시선을 덜 끌지만, 그래도 역세권인지라 적잖은 가격에 분양과 임대가 되었다. 애초 건물 홍보 시에 이야기되었던 공동 마케팅에 대해서는 꿈을 접었다. 처음에 간판을 비슷하게 맞추고 지하철 광고를 내는 것까지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사사건건 문제가 생겼다. 건물 입구의 도우미 하나를 쓰거나 공동으로 전단 광고를 하나 하려 해도 성형외과와 가정의학과의 이해가 같을 리 없었다. 게다가 각 원장마다 다 제 각각의 취향과 색깔이 있는 법. 결국 원활하게 공동마케팅은 진행되지 못하였고, 이를 주관한 컨설팅 회사는 분쟁을 겪었다.
클리닉센터에 모이는 것이 시너지(Synergy)가 될지 슬러지(Sludge)가 될지를 미리 판단할 수는 없다. 대부분 의원이 선호하는 자리들은 비슷비슷하므로 꼭 클리닉빌딩이 아니더라도 자연히 모여지게 되어있기도 하다.
클리닉센터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가능한 단점을 예상하고, 이를 보완하거나 제거하고 그 장점을 살리려고 애를 써야 할 것이다. 훨씬 적은 비용, 훨씬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내고자 한다면 서로의 마음부터 잘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 김진(닥터헬프 www.drhelp.net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