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CT사용 논리의 오류

박경철
발행날짜: 2005-01-10 06:12:04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정초부터 양한방의 경계와 통합에 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논의의 발단은 한의사가 CT 를 사용 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다. 이 문제에 대해 1심법원은 사용할 수 있다는 쪽에 손을 들어 주었고, 이에대해 의학계에서는 판결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상당한 반발을 하고 있다.

원래 한의학은 기존의학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의학은 요소론의 관점에서 출발한 학문이지만, 한의학은 관계론에서 출발하였다.

한의학은 음양오행의 관계론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원래 음양과 오행은 전혀 다른 관점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오행은 순환론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가치체계일 뿐 이것이 오행의 상생 상극론과는 하등 무관한 이론체계이다,

그러나 서경의 '홍범구주'에 수,화,목,금,토성을 상징하는 오행론이 처음 등장하면서, 이를 모든 사물에 빗댄 사물의 5 요소등의 추상적구조가 성립되고, 다시 이것을 관계론으로 정리한 '동중서'의 '통일이론'을 '황제내경'에서 받아들임으로서 음양과 오행을 결합하는 결합논리가 등장한다.

때문에 한의학의 상생상극론은 오행을 사람의 장기인 간,심,비,폐,신과 연결하지만, 현대의학과 달리 간장,비장등의 '장( 臟 )'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장( 臟 )을 붙이고 붙이지 않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를들면 심장은 사람의 몸속에 있는 구체적인 덩어리를 가리키지만, 심(心)은 덩어리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말해 장기의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덩어리 개념으로서의 심장은 요소론적 개념이지만, '심'은 그것의 기능, 즉 역할을 보는 유기체적 표현이 된다.

이런 차이는 치료법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난다. 현대의학은 환자의 몸에서 피를 뽑아 분석하거나 사진을 찍어 병의 원인되는 병인,혹은 병원균(etiology)을 찾으려 한다, 즉 병원균을 찾고 병인을 찾는 것은 병의 원인이 되는 요소를 찾으려 하는 것이며, 어떤 요소에 병의 원인을 돌린다는 점에서 '환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병의 원인을 못 찾으면 불치라고 하거나 원인을 모른다고 한다.

심지어 현대의학에서는 심장이나 간에 불치의 문제가 생기면 장기를 이식하여 갈아끼우기 까지 한다.

그런데 한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병원균이라는 개념과 수술개념이 없으며, 장기를 교체한다는 생각은 아예 나올 수가 없다, 다만 모든 병의 원인은 음양, 오행의 균형이 깨져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병을 치료하는 법도 깨진 균형을 다시 맞춰주는데서 찾기 때문에, 현대의학과 달리 원인을 모르는 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예를들어 비위( 脾,胃)가 약하면 어지럼증과 함께 구토가 일어나고, 이 경우 처방은 당연히 비위를 강화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위를 강화시키는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 예를들어 비(脾)는 토 土에 해당하므로 방법은 당연히 토, 즉 비의 기능을 더 강화시키는 것이지만, 상극론의 관점으로 보면 '물난리가 나면 흙으로 막는 것인데, 물이 너무 넘치면 흙이 감당을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물에 해당하는 신 (腎)의 기능을 약화시킴으로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또 다른 하나는 흙이 무너지면 나무(木)로 방책을 세우는 것인데. 나무에 해당하는 간 기능이 너무 약해 흙의 기운을 조절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본다면 간의 기능을 강화하여도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의학은 각각의 장기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가 맺어진 한 덩어리로보고 치료에 임한다. 이것이 바로 유기체적 관점, 혹은 관계론적 관점이며 구체적으로는 '상생'과 '상극'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렇듯 현대의학과 한의학은 출발선이 다르고, 접근론이 다르며 철학이 다르다.

때문에 양자간의 통합논의도 그만큼 쉽게 다루어 질 문제는 아니지만, 때문에 더더욱 상대방의 영역을 쉽게 생각하고 임의로 접목을 시도 하는것도 근원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의사가 한의사들의 과정과 똑같이 침술강의 120시간을 수강했다고 해서, 전선처럼 엮어진 경락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처럼, 한의사가 CT를 찍어서 뇌졸증 환자를 진료하겠다고 시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한의사 스스로 한의학의 존재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아울러 현대의학에서 한장의 CT를 판독하고 뇌졸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6년간의 의대교육과정과, 5년간의 전문적인 수련을 마치고도 2.3.년의 펠로우쉽을 거쳐어야 겨우 접근이 가능한 것을, 한의대에서 6년간 음양오행을 배운 한의사가 CT를 설치하고 진료를 하겠다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양심의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그것은 의사가 병원에서 침과 부항을 뜨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 할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현대의학과, 한의학 모두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긍정적인 노력은 바람직하지만, 충분한 사전 준비와 검토없이 자신의 근본적 존립근거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는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한 헛된 욕심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이쯤에서 일전에 화제가 되었던 대장금의 대사를 떠올려 보자.

"의원된 자가 의술을 행하기를 함부러하면 그것은 망나니에게 칼을 맡긴것과 같으니, 의원된 자가 가장 먼저 해야할 도리는 의술을 닦기보다 먼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닦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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