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북제 유주(北齊 劉晝)의 "신론(新論)"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혜왕(惠王)이 촉(蜀)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계략을 짰다. 혜왕은 욕심이 많은 촉후(蜀侯)를 이용해 지혜로 촉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래서 신하들로 하여금 소를 조각하게 해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넣고 '쇠똥의 금'이라 칭한 후 촉후에 대한 우호의 예물을 보낸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들은 촉후는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진나라 사신을 접견했다.
진의 사신이 올린 헌상품의 목록을 본 촉후는 눈이 어두워져 백성들을 징발하여 보석의 소를 맞을 길을 만들었다. 혜왕은 보석의 소와 함께 장병 수만 명을 촉나라로 보냈다. 촉후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도성의 교외까지 몸소 나와서 이를 맞이했다. 그러다 갑자기 진나라 병사들은 숨겨 두었던 무기를 꺼내 촉을 공격하였고, 촉후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로써 촉은 망하고 보석의 소는 촉의 치욕의 상징으로 남았다.
후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가리켜 촉후의 "소탐대실"이라 부르며. 작은 것에 눈이 어두워져 큰 것을 잃는다는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소탐 대실의 사례는 일상에서 무수히 경험하게되는데, 작게는 한푼의 돈에 눈이 어두워 남의집 담을 넘는 도둑에서 부터,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검은돈을 취하는 탐관오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삶의 고비마다 이러한 소탐대실의 유혹과 맞닥트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냉정하다.
우리는 25년전에 위장전입으로 땅을 산 부총리의 수완을 비난하고, 이동통신사 간부로 있으면서 납품사에 수십억의 뇌물을 받아챙긴 사람을 손가락질 한다, 또 우리는 학생의 성적을 조작하면서 금전을 취한 교사에게. 한의사 CT 사용 합법소송에서 승소를 이끌어낸 변호사의 전관예우에 대한 의혹에 대해 분노와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붓는다.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태인 제사장들에게 살해당하기전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중에 죄 없는자 돌로 쳐라.."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개선되지 않는 정교한 부패 상납의 사슬과, 관행이라 불리는 온갖 불합리한 일들에 대한 치밀한 연결고리에 분노하고, 이것이야 말로 이나라의 가장 심각한 병폐임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전에 우리 스스로 "관행"이라 불리는 불합리한 사슬들을 먼저 돌아 볼 때가 되었다.
이제 거의 대부분 사라진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제약사의 리베이트의 관행에 대해 도덕적 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는것을 부인 할 수 없다, 또 우리는 아직도 교통사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관행" 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한 청구를 해온 것도 또한 부인 할 수 없다, 사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중의 1%는 여전히 부당 청구를하고, 또 우리중의 1 %는 여전히 사무장에게 도장을 맡기고 3주짜리 진단서를 남발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것은 집단 불감증이다.
사실 아직도 우리 의사사회에는 제약사와의 관계에서 관행상 가능한 일들에 대한 "관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 의사사회가 아닌 사회전체의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비록 그것은 탈세를 감안한 고세율정책처럼, 과거 의료보험 수가 억제의 과정에서 관행상 묵인되어 온 일종의 "정부와의 묵계"임도 분명하지만, 사실이 어떻던 그것은 그문제를 서로 주고받는 관행상의 묵계로 담합을 했던 우리선배들의 잘못임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사회는 서서히 과거의 관행이 무너지고,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던, 관료,정치인부터 재벌,전문직 종사자들의 입지가 먼저 흔들리고, 이제 그 변화의 방향은 서서히 민간기업으로, 또 하부조직으로 조금씩 이전되어 가고 있으며, 과거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불합리성들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문제가 없던 정치자금으로 정치인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재벌들이 법정에 서며, 군인들의 승진 관행이 수사대상이되는 과정에서 우리 의사사회도 의료보험 실사에. 자동차보험 부당청구에 이제 드디어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시작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실제 그것의 이유가 어떻던 우리가 이문제를 단순히 의사사회를 목조르는 압력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도덕성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약품명 처방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록, 우리 스스로 대체조제가 불합리하다고 인정할 수록, 우리 스스로 무차별적인 삭감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록, 우리가 약품과 관련해서 제약사들과 주고받는 리베이트의 관행을 혁파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주장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고, 우리가 목표하는 싸움을 해나 갈 수있다. 만약 우리들이 우리들의 문제는 관행이고, 다른 사람들의 관행은 부패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소외될 것이 분명하다.
또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철학적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실제로도 조만간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정부차원에서 부패방지차원에서 의약품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대대적인 문제제기가 시작될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이미 상당량의 자료를 축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필자의 칼럼을 읽으신 독자께서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시더라도, 오늘 필자의 칼럼이 말하고자하는 메시지의 이면을 꼭 읽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소탐대실은 반드시 화를 부른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혜왕(惠王)이 촉(蜀)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계략을 짰다. 혜왕은 욕심이 많은 촉후(蜀侯)를 이용해 지혜로 촉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래서 신하들로 하여금 소를 조각하게 해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넣고 '쇠똥의 금'이라 칭한 후 촉후에 대한 우호의 예물을 보낸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들은 촉후는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진나라 사신을 접견했다.
진의 사신이 올린 헌상품의 목록을 본 촉후는 눈이 어두워져 백성들을 징발하여 보석의 소를 맞을 길을 만들었다. 혜왕은 보석의 소와 함께 장병 수만 명을 촉나라로 보냈다. 촉후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도성의 교외까지 몸소 나와서 이를 맞이했다. 그러다 갑자기 진나라 병사들은 숨겨 두었던 무기를 꺼내 촉을 공격하였고, 촉후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로써 촉은 망하고 보석의 소는 촉의 치욕의 상징으로 남았다.
후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가리켜 촉후의 "소탐대실"이라 부르며. 작은 것에 눈이 어두워져 큰 것을 잃는다는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소탐 대실의 사례는 일상에서 무수히 경험하게되는데, 작게는 한푼의 돈에 눈이 어두워 남의집 담을 넘는 도둑에서 부터,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검은돈을 취하는 탐관오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삶의 고비마다 이러한 소탐대실의 유혹과 맞닥트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냉정하다.
우리는 25년전에 위장전입으로 땅을 산 부총리의 수완을 비난하고, 이동통신사 간부로 있으면서 납품사에 수십억의 뇌물을 받아챙긴 사람을 손가락질 한다, 또 우리는 학생의 성적을 조작하면서 금전을 취한 교사에게. 한의사 CT 사용 합법소송에서 승소를 이끌어낸 변호사의 전관예우에 대한 의혹에 대해 분노와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붓는다.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태인 제사장들에게 살해당하기전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중에 죄 없는자 돌로 쳐라.."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개선되지 않는 정교한 부패 상납의 사슬과, 관행이라 불리는 온갖 불합리한 일들에 대한 치밀한 연결고리에 분노하고, 이것이야 말로 이나라의 가장 심각한 병폐임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전에 우리 스스로 "관행"이라 불리는 불합리한 사슬들을 먼저 돌아 볼 때가 되었다.
이제 거의 대부분 사라진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제약사의 리베이트의 관행에 대해 도덕적 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는것을 부인 할 수 없다, 또 우리는 아직도 교통사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관행" 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한 청구를 해온 것도 또한 부인 할 수 없다, 사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중의 1%는 여전히 부당 청구를하고, 또 우리중의 1 %는 여전히 사무장에게 도장을 맡기고 3주짜리 진단서를 남발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것은 집단 불감증이다.
사실 아직도 우리 의사사회에는 제약사와의 관계에서 관행상 가능한 일들에 대한 "관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 의사사회가 아닌 사회전체의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비록 그것은 탈세를 감안한 고세율정책처럼, 과거 의료보험 수가 억제의 과정에서 관행상 묵인되어 온 일종의 "정부와의 묵계"임도 분명하지만, 사실이 어떻던 그것은 그문제를 서로 주고받는 관행상의 묵계로 담합을 했던 우리선배들의 잘못임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사회는 서서히 과거의 관행이 무너지고,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던, 관료,정치인부터 재벌,전문직 종사자들의 입지가 먼저 흔들리고, 이제 그 변화의 방향은 서서히 민간기업으로, 또 하부조직으로 조금씩 이전되어 가고 있으며, 과거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불합리성들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문제가 없던 정치자금으로 정치인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재벌들이 법정에 서며, 군인들의 승진 관행이 수사대상이되는 과정에서 우리 의사사회도 의료보험 실사에. 자동차보험 부당청구에 이제 드디어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시작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실제 그것의 이유가 어떻던 우리가 이문제를 단순히 의사사회를 목조르는 압력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도덕성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약품명 처방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록, 우리 스스로 대체조제가 불합리하다고 인정할 수록, 우리 스스로 무차별적인 삭감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록, 우리가 약품과 관련해서 제약사들과 주고받는 리베이트의 관행을 혁파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주장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고, 우리가 목표하는 싸움을 해나 갈 수있다. 만약 우리들이 우리들의 문제는 관행이고, 다른 사람들의 관행은 부패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소외될 것이 분명하다.
또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철학적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실제로도 조만간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정부차원에서 부패방지차원에서 의약품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대대적인 문제제기가 시작될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이미 상당량의 자료를 축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필자의 칼럼을 읽으신 독자께서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시더라도, 오늘 필자의 칼럼이 말하고자하는 메시지의 이면을 꼭 읽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소탐대실은 반드시 화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