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밴드 등 삶의 활력소 "인생 살찌우는 성취감 느껴"
|창간 6주년 특집|개원의들 취미생활 엿보기'버티고 6년 버티다' 그들만의 즐거운 인생
주말도 없이 매일 진료하다보면 진료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개원의들의 숙명일지 모른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진료실을 지키는 의사들의 취미 및 여가생활은 어떠할까. 메디칼타임즈는 개원의들의 다양한 취미생활를 알아보고 이들이 느끼는 삶의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선생님들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신가요?
<중>동호회 입맛 따라 고른다
<하>이색취미 별난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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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김지우 원장(연세이비인후과)
"내일을 향해서라면 과거는 필요없지~ 힘들은 나의 일기도 내일을 향해서라면~"
6월 27일 저녁 7시, 안양시 평촌역 인근의 작은 라이브카페. 안양시 개원의 록밴드 '버티고'의 공연으로 카페 안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가수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가 끝나자 영화 즐거운 인생 OST로 알려진 '비와 당신'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3년만에 열리는 정기공연이라 그룹 '버티고'에게는 더욱 의미있고 떨리는 순간이다.
'버티고'의 리더를 맡고 있는 김지우 원장(사진,연세의대 87년졸)은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서 긴장 속에서 공연을 했다"며 "연습할 때의 70%밖에 못보여준 것 같아 아쉽다"고 이번 공연의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공연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만족감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화 '즐거운 인생'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김 원장은 '버티고'를 통해 제2의 즐거운 인생을 만끽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에 시작한 음악은 이제 그의 활력소가 됐단다.
6년 전 '버티고'를 결성하면서 베이스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김 원장은 이제 제법 원하는 곡을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늘어난 것은 기타 실력 만이 아니다. 병원 진료, 환자, 골프, 주식, 부동산 등 제한돼 있던 대화 주제에 음악이라는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버티고'식구들이 모이면 "오늘은 환자가 더 줄었다" "골프채는 어디서 샀다"는 등의 이야기거리 보다는 "이번 공연은 어떻게 할까" "좋은 음반이 나왔다"는 등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난다.
김 원장은 "개원의들은 매일 진료실 안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반복하지만 이렇게 가끔 공연을 하고 동료들끼리 모여 연습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연을 본 아이들과 아내의 칭찬과 격려에서 다시한번 에너지를 얻는다"며 "평소 딱딱하고 재미없는 아빠의 다른 면을 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볼 때 특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산행을 위해 100km 마라톤을 달린다"
②김동석 원장(김동석이비인후과)
시도의사회마다 빠지지 않은 동우회 중 하나가 산악회이다. 이중 악명 높은(?) 곳으로 유명한 지역은 인천시이다.
인천시 의사산악회 총무를 맡고 있는 김동석 원장(사진, 인제의대 88년졸)은 평범한 체격에 조용한 성격이나 의사들 사이에서도 별종으로 통한다.
그가 등산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의약분업부터다. 인천시 남동구의사회 총무를 맡고 있던 김 원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마라톤 회의와 투쟁으로 밤샘을 하던 때 선배의 권유로 북한산을 등반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동석 원장은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던 때에 피하지 말고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등산을 하게 됐다”면서 “청바지 차림으로 따라 나섰다가 구기동에서 칼바위능선으로 내려오는 8시간의 강행군에 녹초가 됐다”며 땀 냄새로 얼룩진 첫 산행의 추억을 회상했다.
속도 산행으로 매몰찬 선배들을 뒤쫓아 가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마라톤’이다.
2001년 인천마라톤 하프 코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풀코스 완주 35~40회, 63km 1회, 100km 울트라 마라톤 3회 완주 등 왠만큼 뛴다는 사람들도 손사래를 칠 정도로 무서운 기록이다.
김동석 원장은 “주위에서 무슨 고민 있느냐, 미친 게 아니냐 하는 걱정 섞인 농담도 한다”고 전하고 “집과 병원인 답답한 생활방식을 벗어나 좋은 사람들과 온종일 신나게 즐기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동료의사들의 여가생활을 조언했다.
김 원장이 가장 떠올리는 기억은 ‘불암-수락-사패-도봉-북한산’으로 이어진 16시간의 오산종주와 울트라 마라톤 도중 건강이상으로 중도 포기한 때이다.
그는 “새벽 4시에 출발해 저녁 8시까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산에서 경험할 때 오는 성취감은 대단하다”면서 “반면,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의 분함과 아픔은 또 다른 나를 성숙시킨다”고 말했다.
김동석 원장은 “성인병을 예방한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제쳐 놓더라도 자연과 사람과의 만남은 멋있고 신명나는 일”이라고 말하고 “동료들에게 알을 깨고 나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제도 속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배려만 있고 다툼이 없는 새로운 열정을 느끼길 바란다”며 새로운 인생의 묘미에 동참할 것을 조언했다.
"문화유산 모르는 의사들 답답해서 시작"
③김정혜 원장(양생산부인과의원)
1년 중 일요일은 총 54번. 그중 25~30번 가량을 문화유산 답사를 떠나는 개원의가 있다. 2주에 한번 꼴인 셈. 그러나 이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그가 올해 71세의 여의사라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그 주인공은 은평구 양생산부인과의원 김정혜 원장(고려의대 64년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를 전국 방방곡곡으로 이끄는 힘은 문화유산에 대한 그의 애착에서 나온다.
90년도 어느날 평소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았던 김 원장은 동료의사들과 함께 떠난 거제도 여행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당시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던 김 원장에게 와중에 잠에서 깨어난 한 동료가 "이순신장군한테 첩이 3명이 있었어?"라며 엉뚱한 질문을 던진 게 계기가 된 것.
김 원장은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지만 배울만큼 배운 의사들이 문화유산에 대해 이렇게 무지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후 그를 데리고 함께 문화유산 답사를 다닌지 3년째, 어느새 문화유산에 대해 척척박사가 된 그를 보면서 너무도 기쁘고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5년전 문화유산사랑회를 결성, 1년에 3번 회원들과 함께 문화유산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여자치과의사회의 부탁으로 치과의사들과도 문화유산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답사 일정이 하나 더 늘어난 것. 기존에 친구와 동료, 남편의 친구들까지 함께 다니던 모임까지 합하면 주말이 바쁘다.
벌써 안다녀 본 곳 없이 다녔지만 그는 여전히 답사를 떠나기전 회원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 서적을 찾는 등 사전준비에 정성을 다한다.
그는 "아직도 답사를 다니는데 전혀 피곤함을 못 느낄 정도로 건강하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문화유산 답사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른 개원의들도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며 "이 같은 활동으로 우리나라 보물 1, 2, 3호와 국보 1, 2, 3호가 무엇인지 정도는 언제 어디서라도 답할 수 있는 의사들이 조금이나마 늘어나길 바란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바위를 오르는 락 크롤링은 또 다른 나"
④박대영 원장(현대가정의원)
길이 아닌 곳을 달리는 오프로드 주행에 식상함을 느껴 거대한 바위를 오르는 ‘락 크롤링’(rock crawling) 경기에 미친 의사가 있다.
인천 남구에서 15년차 개원의인 박대영 원장(사진, 조선의대 86년졸)은 1988년 사륜구동차를 구입한 이후 현재까지 오토캠핑과 오프로드 경기에 푹 빠져있다.
박 원장은 “평발이라 등산을 하고 싶어도 오르지 못하는 답답함속에 차를 이용해 산을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오프로드를 선택했다”면서 “20년 이상 사륜구동차를 타다보니 일반 승용차는 익숙지 않다”며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짚차의 성능을 산길에 맞춰 개조한 그가 몇 해 전 바위를 오르는 경기용차인 ‘락 버기’ 제작에도 참여해 튜닝의 한계를 극복했다.
한국 락크롤링협회(RCAK) 회장직을 맡고 있는 박대영 원장은 그동안의 경기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거대한 바퀴를 치켜들고 괴성을 지르며 바위산을 오르는 ‘락 버기’의 모습을 희열과 긴장감이 담긴 목소리로 설명했다.
박 원장은 “토요일 오후 진료를 마친 후 사륜차를 타고 강원도 국도에 접어들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고 말하고 “차 지붕을 오픈시키면서 속도를 줄이면 풀벌레와 개구리, 엔지소리가 화음을 내며 나만의 시간으로 안내한다”고 말해 진료에 찌든 일주일을 벗어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귀띔했다.
오프로드 매니아를 넘어선 그는 최근에 발굴한 최고의 험한 길로 강원도 갑둔리를 소개했다.
박대영 원장은 “평지로 가면 15분이면 통과할 길을 돌을 나르고 견인하고 하면서 밤에 들어가 아침에 돼야 나온다”면서 “골프장 같은 인공구조물이 아닌 오토캠핑을 하면 자연속이 오프로드가 보일 것”이라며 숨어있는 오프로드의 매력을 전했다.
박 원장은 특히 “오토캠핑은 아내와 아이들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하고 “회색 도시를 떠난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쁨이나 자연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생을 살찌울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수가에 얽매여 있는 평범한 의사인 그는 “자연과 진료실에서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중생활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의사로서 나를 잊고 숨어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해 야생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라며 취미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자아에 대한 만족감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