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비의사 동거, '자살·맞소송' 비극적 결말

안창욱
발행날짜: 2010-07-16 06:50:35
  • 사무장-합법투자 경계 위험한 곡예…동료 의사도 적

|기획특집| 사무장병원 덫에 걸린 의사들
사무장병원 폐해가 심각하다. 의사로부터 면허를 대여해 병원을 설립한 후 환자들을 싹쓸이하는가 하면 탈세 등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원장이나 봉직의들은 의사 면허정지처분 뿐만 아니라 진료비 환불처분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메디칼타임즈는 사무장병원의 실상을 점검하고,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발을 들여놓는 순간 전과자, 낙오자 전락
(중)위험한 상생…결국 서로에게 칼을 겨뤘다
(하)판례로 본 사무장병원과 바지원장의 말로
얼마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홈페이지에 소위 사무장병원 대표원장의 양심선언문이 올라오면서 성형외과 개원가가 발칵 뒤집혔다.

양심선언을 한 사람은 성형외과 전문의 A씨.

그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P성형외과의 실질적인 주인은 의사가 아닌 병원이었다”면서 “병원 지하에 있는 법인이 병원을 개설, 운영하는 형태”라고 폭로했다.

그는 “의사가 실질적인 오너가 아니기 때문에 엄연히 불법이라고 생각되지만 병원경영지원회사(MSO) 형식을 빌어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이 MSO 법인에 5억원을 투자해 강남에 P성형외과를 확장 개원했으며, 자신이 직접 봉직의들을 초빙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스스로 양심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자세히 적었다.

A씨는 “개원 초기부터 MSO 대표가 마음대로 병원에 권한을 휘두르면서 저와 끊임 없이 충돌했고, 결국 사무장병원 아닌 사무장병원이 됐다”고 토로했다.

A씨는 “심지어 법인 대표는 자신의 허락 없이 저녁회식조차 못하게 할 정도였다”면서 “지난 5월 방을 비워달라고 해 대항 한번 못하고 쫒겨나는 신세가 돼 버렸고, 투자한 5억원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MSO를 상대로 형사, 민사 소송을 할 계획이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고 밝혔다.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그는 후배 성형외과 전문의들에게도 목숨 걸고 당부드릴 게 있다고 했다.

“정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속칭 사무장병원에서 개설하거나 취직을 하는 일은 절대 피하라. 당장 금전적으로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두고두고, 평생 전과처럼 선생님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다.”

A씨는 "이미 의사로서 형사적, 행정적, 세무적인 처벌을 달게 받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병원경영지원회사는 통상 병원의 구매, 인력관리, 진료비 청구, 마케팅 등의 서비스를 대행해주고, 수수료를 받거나 수익을 공유하는 사업이다.

A씨가 양심선언을 하자 해당 MSO 대표인 B씨가 반박하고 나섰다.

비의료인인 B씨에 따르면 A씨는 MSO에 5억원을 투자하는 대신 법인 출자금 총 35억원의 33%를 지분으로 받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두 사람은 원장을 초빙하거나 해고할 때 서로 협의하고, 매출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만약 P성형외과 매출과 무관한 개인 수술을 하다 적발되면 10배의 위약금을 물기로 약정했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B씨는 “법인 수익구조의 핵심은 광고와 마케팅 등에 선투자하고 그 성과급을 받는 것”이라면서 “만약 (개인 수술로 인해) 정확한 매출을 알 수 없다면 법인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런 약정을 했다”고 환기시켰다.

하지만 MSO와 A씨의 윈-윈 관계는 이런 약정을 체결한지 1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B씨는 “나중에 확인한 결과 A씨가 비밀리에 수억원에 달하는 개인 수술을 했다”면서 “이 모든 수술은 세금을 내지 않고, 개인적으로 차트를 관리하는 탈법적인 시술이었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A씨가 법인에 모든 리스크와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이를 방패삼아 개인 장사를 했기 때문에 주주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B씨는 “A씨는 약속을 어긴 것 때문에 궁지에 몰리니까 투자 자체가 의료법 위반이라는 식으로 협박하고, 본인을 사무장병원의 피해자로 포장했다”면서 “이 사태의 핵심은 계약 위반과 탈세를 한 책임자가 거꾸로 상대방에게 주홍글씨를 씌워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경영권 갈등이 의사 동료간 맞소송으로 비화

두 사람의 싸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최근 B씨가 신주 인수대금 명목으로 5억원을 편취했다며 사기죄로 고발했고, 비의료인이 P성형외과를 개설했다며 해당 보건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P성형외과는 K씨와 J씨가 공동 원장을 맡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지난해 A씨가 초빙해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의 불화는 P성형외과 개설의 적법성 여부를 넘어, 의사가 동료 의사에게 칼을 겨누는 비극적 상황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극은 A씨 이전에 이 MSO와 주주 관계를 맺은 마취과 전문의 C씨 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C씨는 이 MSO로부터 투자를 받기 이전인 2007년 자신이 성형외과를 개원하려고 하는데 원장을 맡아달라고 A씨에게 제안했다.

C씨는 A씨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L성형외과를 열면서 A씨와 또 한명의 의사 K씨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했다.

따라서 A씨와 K씨가 명의상 원장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봉직의였고, 성형외과를 개설할 수 없는 마취과 전문의 C씨는 사실상 사무장병원을 운영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후 C씨는 이 사건 MSO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L성형외과를 P성형외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의료기관 개설 둘러싼 위험한 동거

하지만 P성형외과로 변경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C씨는 자신의 병원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C씨가 왜 자살을 했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다만 A씨와 B씨는 C씨 자살을 두고 상대방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B씨는 “C씨는 자신이 병원을 만들었는데 A씨 병원이 돼 있었다고 사망하기 전에 눈물로 호소했다”면서 “A씨는 L성형외과에 있을 때부터 개인수술을 일삼았고 병원을 사유화했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A씨는 “돌아가신 C씨가 눈물을 흘리며 B씨를 죽일 사람처럼 말하던 것을 잊을 수 없다”고 반격했다.

분명한 것은 C씨가 성형외과를 운영하면서 빚이 적지 않았고, 그의 죽음이 사무장병원 개설, MSO로부터 투자를 받는 과정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현재 MSO 대표인 B씨와 P성형외과 공동원장인 K씨, J씨도 A씨를 상대로 민사, 형사상 책임을 물을 태세다.

P성형외과를 합법적으로 개설했고, MSO와의 전략적 제휴 과정에서 위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A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역시 P성형외과를 사무장병원으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만약 사법당국 조사결과 P성형외과가 사무장병원으로 드러나면 현 대표원장인 K씨, J씨 외에 A씨까지 의료법 위반으로 행정처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MSO 대표인 B씨 역시 무자격자의 병원 개설 혐의로 형사상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던 이들 사건은 의료기관 개설과 관련,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든 의사와 의사, 의사와 비의료인간 위험한 동거와 탐욕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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