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붕괴 없었다는 정부…응급실 현장은 "현실 뭉개기"

발행날짜: 2024-09-20 05:32:00
  • 연휴 이후 비상진료체계 연이어 자찬…현장은 우려 팽배
    응급실 인력난 가중되는데…신규 의사 인력 충원은 요원

추석 연휴가 지나면서 정부·대통령실이 우려했던 응급의료 붕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선 이미 위기가 시작됐으며 걷잡을 수 없다는 반발이 나온다.

19일 추석 연휴가 지나면서 인력난을 호소하는 응급실이 늘어날 전망이다. 전공의 사직 이후에도 가용 인력 자원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는데, 내년 응급의학과 전문의나 전공의 충원을 기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응급의료 붕괴가 없었다는 정부·대통령실 주장과 일선 현장의 온도 차가 극명한 모습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서 정부·대통령실이 우려했던 응급의료 붕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힌 반면, 일선 현장은 인력난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대통령실은 추석 연휴 기간 우려했던 응급의료 붕괴가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19일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모두발언을 통해 응급실 대란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 역시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큰 불상사 없이 추석 연휴가 마무리됐다고 평가했다.

또 복지부에 따르면 추석 연휴 동안 문을 연 동네 병의원은 일평균 8743곳으로, 당초 계획했던 7931곳보다 10.2%(812곳) 많았다. 이는 지난해 추석 연휴와 비하면 74.2%, 올해 설 연휴에 비해서는 140% 많은 숫자다. 반면 연휴 응급실에 방문한 환자는 일 평균 2만6983명으로 지난해 추석 대비 32%, 올해 설 대비 27% 감소했다.

하지만 일선 응급실 현장에선 반발이 나온다. 인력난이 심화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응급실을 운영하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이탈이 심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또 추석 연휴 환자 수가 줄어든 것은 응급의료 위기가 부각한 덕분도 있는데, 정부가 이를 축소해 평가한다면 다음 연휴엔 이용량이 예년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정부가 문제없이 잘 지나갔다고 박수칠 상황이 아니다. 전공의 사직 당시에도 2~3월 응급실 환자들이 감소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늘어난 전례가 있다"며 "응급의료 위기가 심각하게 다뤄지니 아예 오지 않은 환자들이 있을 수 있고, 접수했다가 그냥 돌아간 환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이 아예 치료받지 못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대학병원은 한계만큼 환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기서 더 환자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추석 연휴 환자 수가 비상진료체계의 마지노선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다른 응급의학과 교수 역시 "당장 다음 달부터 한 명이 그만두는데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지금 부족한 것은 인력이고 최종 치료 능력인데 이 두 가지 모두 해결될 기미가 전혀 없다"며 "결국 인력이 필요한데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해도 사람 자체가 없다. 현재 신규 구인 공고가 40명 정도로 계속 늘어나고 있고 개중엔 3~4명을 한 번에 뽑는 병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들 최대한으로 근무하고 있어 그 이상으로 근무 시간을 늘릴 수도 없다. 현 상황에서 팀원이 한 명이라도 빠지면 그 사람의 근무 시간 동안 응급실을 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병원끼리 서로 인력을 돌려쓰다가 그만두는 사람이 나오는 만큼 응급실 운영 시간이 줄어드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큰 문제는 향후 몇 년간 신규 인력 유입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전공의 사직, 의대생 휴학이 계속되면서 신규 전공의·전문의를 모두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것.

정부는 진료지원 간호사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이지만, 면허 범위상 이들이 할 수 있는 업무는 전공의 4분의 1수준인데다가 임금은 2배 가까이 높다.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만큼, 이 역시 한계가 있는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어느 쪽이건 대책이 되지 않는다. 인력은 없는데, 그렇다고 환자 수를 줄이자니 오히려 전국 응급실 절반 이상이 문을 닫게 된다"며 "현 상황이 길어질수록 대학병원 적자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기본적인 문제들부터 심각하게 대두할 것이다. 이미 일부 현장은 민영화 수순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 대책이 없기에 현실을 뭉개고 넘어가고 있다고 본다. 특히 국립대들은 병상 회전율이 60% 언저리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어서 어떻게 버티는지 의문인 수준"이라며 "결국 정치적으로 한 번에 해결하는 수밖에 없지만, 정작 정치권은 주도권 싸움만 벌이고 있어 오히려 꼬여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입장문을 내고 추석 연휴 응급의료 붕괴가 없었다는 정부 입장은 황당한 자화자찬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응급실 경증 환자 본인 부담률을 90%까지 인상하는 등 겁박에 가까운 미봉책을 내놓은 결과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전공의 없이도 의료체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면 의대 증원은 필요 없다는 것.

이와 관련 의협은 "복지부는 현 의료사태 발생부터 지금까지 응급의료 관련 통계를 제 입맛에 맞게 이용해, 마치 우리나라 의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듯이 발표하고 있다"며 "정부는 의료가 별문제 없다고 주장하려면 왜 당장 교육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하는지부터 답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렇게 정부가 국민을 압박하고 거짓말하는 동안 의료계는 추석 연휴 국민이 걱정 없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긴장을 놓지 않았다"며 "우리 의료계는 앞으로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향후 의료시스템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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