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의사가 부도덕해야 환자를 살린다"

안창욱
발행날짜: 2007-01-02 06:48:20
  • 임의비급여 부당청구 오명 불구 "보험보다 생명 우선"

[2007 새해특집] 임의비급여,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최근 성모병원의 임의비급여사태가 터지면서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정부가 적정 진료환경을 외면한 채 생색내기식 보장성강화에만 골몰하면서 임의비급여가 해소되지 않고, 의료왜곡이 심화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기관과 환자가 상생하는 것은 요원한지 짚어본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상>보험기준에 맞추면 중증환자는 죽는다
<중>생색내기 보장성강화, 의료기관 삼중고
<하>의료 질 보장해야 병원도, 환자도 산다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환자들은 의사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환자들은 그런 신뢰할 수 없는 의사한테 진료를 받고 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혈액종양내과) 교수의 말이다.

백혈병환우회가 최근 가톨릭대 성모병원의 진료비 불법청구 실태를 폭로하면서 의료계가 큰 충격에 빠져들고 있다.

“오늘 저녁 친척 어른 한분이 제게 전화했는데 첫마디가 ‘너도 그렇게 사기 치냐’였다”면서 “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전 집안의 자랑이 아니라 수치가 되어버렸다”

백혈병환우회의 폭로 직후 자신을 ‘평범한 국민’이라고 소개한 의사가 미디어 다음에 올린 글이다. 이 글은 순식간에 10만건 이상이 조회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의사들이 공감을 표시하는 댓글을 수백개나 남겼다.

환자들이 무섭다

부당청구기관으로 낙인찍힌 가톨릭대 성모병원의 의료진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종욱(혈액내과) 교수는 “우리 병원 조혈모세포이식센터가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지만 겨우 적자를 면하고 있고, 가톨릭재단을 설득해 겨우 끌어가고 있다”면서 “병원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진료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이젠 환자들까지 의사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교수들의 사기가 바닥이다. 환자들이 무섭다고 한다”고도 털어놓기도 했다.

백혈병환자의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환자의 면역기능저하를 예방, 치료하기 위해 쓰이는 프루코나졸. 요양급여기준상 이 약제는 14일만 급여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의사가 이 약제를 15일 이상 처방하면 삭감대상이 되고, 환자가 약값을 전액 부담하겠다고 동의서에 서명했더라도 나중에 심평원에 진료비확인요청 민원을 내면 의료기관이 꼼짝없이 환자에게 약값을 되돌려줘야 한다.

항생제 맥스핌주도 급여 인정기간은 10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의들은 어떤 근거로 10일만 급여가 인정되는지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전문의들은 보험기준에 맞추다보면 환자들이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더 심각한 문제로 꼽고 있다.

#i3#의료기관 임의비급여 복마전

이런 임의비급여 약제와 치료재료는 얼마나 될까.

성모병원은 복지부가 지난 12월 13일부터 백혈병진료의 허위부당청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실사에 착수하자 현 요양급여기준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다.

프루코나졸과 유사한 사례를 담은 것으로 분량이 수백장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액암 뿐만 아니라 전체 진료영역으로 확대한다면 요양급여기준과 충돌해 임의비급여를 할 수밖에 없는 항목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이런 보험제도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설명했다면 이런 사태를 피할 수 있진 않았을까.

의사들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종욱 교수는 “골수이식을 하거나 항암치료를 하기 이전에 투여할 약제가 뭐고, 급여가 되는지 여부를 상세히 설명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는 “응급상황, 예를 들어 환자가 고열을 호소하는데 일일이 보험이 되지 않으니까 동의서부터 작성하라고 할 수 있겠느냐”면서 “임의비급여항목이 수백개에 달하는데 세세하게 설명하고 다 동의서를 받는다면 그 자체가 넌센스”라고 못 박았다.

동의서를 받기 위해 이리저리 쫒아 다니고, 난해한 영어로 표기된 약제나 시술을 설명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의료기관들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의사들은 최선의 진료를 위해 필요한 약제라면 삭감이 되든, 향후 환자에게 진료비를 환급해줘야 하는 일이 벌어지든 일단 쓰려고 하고, 병원 보험심사팀은 의사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린다.

약을 한알 더 투여한다고 해서 병원 수익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의사들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보험의 한계선을 수시로 넘나들고, 병원 행정부서는 성모병원과 같은 사태가 터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복마전을 펴는 게 현실이다.

보험기준보다 환자생명이 우선

하지만 이런 임의비급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은 냉담하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현실에는 관심이 없고, 의료기관들은 부도덕하다고 공격하기에 바쁘다.

2006년도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일부 의원들은 심평원의 ‘진료비 확인신청’ 자료를 근거로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진료비를 환불한 금액이 2003년 2억7200만원에서 2005년 14억8100만원으로 6배 이상 급증했다는 자료를 언론에 뿌렸다.

이들은 진료비 환불행위를 부당청구로 규정했다. 특히 대형병원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며,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부당한 피해를 받고 있다면서 부당 진료비 청구액이 많은 10개 의료기관 명단도 공개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의료원, 세브란스병원 등 국내의 대표적 의료기관들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반면 이들 의원은 진료비 환급에는 실제 허위청구 외에 불가피한 임의비급여가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오로지 부도덕한 의료기관을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했고, 의료의 암적 존재인 임의비급여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었다.

이런 문제를 쉬쉬해오면서 국민들은 병원과 의사의 양심을 의심하고 있고, 허대석 교수의 말처럼 환자들은 부도덕한 의료기관에 목숨을 내맡겨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의료기관들은 정말 부도덕한가.

서울의 모대형병원 관계자는 “백혈병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증질환은 의료수가가 진료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면서 ““임의비급여까지 감수하면서 진료를 계속하는 이유는 환자들의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사회를 향해 의사들이 느끼는 배신감도 폭발직전으로 치닫고 있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잘해주고 욕만 얻어먹고 완전 동네북이다. 앞으로 보험급여가 되는 것만 하고, 나머지는 하지 말자. 환자가 죽든 말든” 식의 댓글이 성모병원 사태 이후 메디칼타임즈에 넘쳐나고 있다.

서울의 모대학병원 교수는 “보험기준대로 진료하면 죽어나는 환자가 부지기수일 것”이라면서 “의사들은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든, 삭감이 되든 일단 환자를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우리 사회는 대학병원이, 교수들이 부도덕하지 않으면 환자를 살릴 수 없는 사회”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요양급여기준이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성모병원 김학기 진료부원장은 백혈병환우회의 임의비급여 폭로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백혈병의 특성상 환자의 중증도, 합병증 여부에 따라 최선의 진료를 하다보면 상당부분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는 게 사실”이라면서 “생명을 다루는 의료현장에서는 법적 정의보다 생명의 존엄성이 우선한다”

사회적 무관심과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진료현장을 지키는 의사가 비단 김학기 부원장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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