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대 조한익 교수
무엇에 의해 휘둘렸는가?
지난해 몸과 마음이 바쁘게 살아왔다는 사람이나 단체는 왜 그랬는가를 반문해 보자. 스스로 그렇게 살아왔는가? 제도나 타의에 의해 그랬는가? 정부 정책이 우왕좌왕 해서 그랬는가? 우리 스스로가 좌충우돌하느라 그랬는가? 무엇에 의해 휘둘려서 그렇게 살아왔다고 핑계를 대는 것이 연말연시에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 보면 무엇에 의해 휘둘렸는지도 명확치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 불안해 진다. 무엇인가에 의해 휘둘려 바쁘게 살아왔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휘둘렀는지가 명확치 않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우왕좌왕하는 연극 주인공을 바라보는 관중이었다면 분명 즐거웠어야 했다. 그런데 무대에서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이 관중을 쥘락 필락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관중들은 그에 따라 불안하고 바쁘게 살다보니 또 한해가 지난 것이다. 도대체 우리를 그렇게 만든 힘센 주인공들이 누구이고 무엇인가? 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고 우리는 힘이 없음을 한탄만하다가 또 한해를 보내는 것인가?
‘공급자 중심의 기업’은 어떻게 유지 되는가?
의료계는 의료를 피폐시키고 의료인을 힘들게 한 것이 시민 단체와 사회주의 의료를 정착시키려는 정책 입안자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높은 의료 수준과 의료 인력에 상응하는 정당한 투자 없이 의료인과 의료기관을 쥐어짜서 의료혜택을 넓혀가겠다는 이들을 비난하고 투쟁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정말 이들의 힘에 의해 의료가 피폐되고 있는가? 우리를 억누를 수 있는 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국민을 호도하여 얻은 사회적 공감이 그들의 힘의 원천이라고 의료계는 가정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우리를 고달프게 만든 힘이 이것인가?
최근 대선자금이나 측근 비리 쇼를 보면서 국민들을 쥘락 필락 하는 힘의 구성 요소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이해 할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돈을 광고에 쏟아 붓는 것도 결국 공급자 중심으로 소비자를 끌어 들이는 작업이다. 이런 것을 통해 현재 기업들은 국가와 거의 대등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다국적 기업들은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공급자 중심의 경제 환경을 만들고 지켜갈 만큼 힘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 중심의 의료’라는 말의 원조가 ‘소비자 중심의 경제’ 인데 기업들은 의료 소비자들 보다 더 큰 소비자들의 힘을 억누르고 그렇게 막강한 힘을 구축한 것이다.
최근 우리 의료계의 주장을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공급자 중심의 의료’ 환경이 만들어져야 가능한 것들이 많다. ‘공급자 중심의 경제’가 비난 받기는 하지만 ‘민주 국가 체제’ 와 함께 현대의 민주 시민 사회를 가능하게 만든 양대 축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 같이 ‘공급자 중심의 의료’가 나쁜 것이 아니다.
사실 공급자 중심이냐 소비자 중심이냐를 구분하는 것이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과 이익 창출을 생각하는 기업인이나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만을 고집하는 의사는 같은 부류이다.
그런데 기업가는 힘을 가진 자들에게 위법적인 서비스까지 하면서 ‘생산자 중심의 기업’을 유지하는데 의료계는 무엇을 했는가?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해야 힘을 나누어 갖게 되는데 의료계는 무슨 서비스를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고달프고 의료는 발전이 더딘가? 의료에 영향을 주는 힘 있는 자가 누구인가? 정부인가? 국민인가? 사회인가? 기업인가? 소비자 단체인가?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가들인가? 이들에게 의료계는 어떤 서비스를 해 주어 의료의 진실을 이해하는 우군으로 끌어 들일 것인가?
의료계는 우수 인재를 사회 각 분야로 되돌려 보내자
서비스로 내 줄 수 있는 의료계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업들처럼 ‘차떼기’할 돈도 없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광고비를 부담할 능력도 없다.
그런데 의료계는 정말로 큰 자산을 가지고 있다. 최근 의료계가 이과계 수학능력 시험 석차 5000등 까지 흡인하고 있다는 놀라운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 도대체 의료라는 소비 업종에 매년 최상급 인재 5000명이 흡인된다면 그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지는 끔찍한 현상이다.
10년 후 20년 후 우리를 먹여 살릴 산업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의학의 밑바탕인 과학 지식은 누가 공급해 줄 것인가? 결국 의료 자체도 붕괴하고 의학과 의료는 다른 나라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의료계는 이들 인재를 사회 각 분야로 되 돌려보내야 한다. 우수한 인재가 의료계로 들어오는 것을 어느 정도 조절 할 수 있으면 최선이다. 사실 의료는 그렇게 특출한 인재를 싹쓸이 할만한 분야도 아니고 그런 인재는 20-30% 정도의 소수만 필요하다.
사회 분위기로 미루어 당분간 오는 사람을 막는 것 자체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온 사람을 되돌려 보내는 일은 의료계 손으로 가능할 것이다. 의과대학 졸업자를 의 공학 분야로 인도하면 공학계열을 지원하는 것이고 기초의학으로 이끌어 주면 이것이 곳 생명과학을 지원하는 것이다.
인문 계열로의 성장 지원도 가능하다. 당장 보건 정책 분야 의사 공무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의료계로 들어온 우수한 인재를 사회 전 분야로 되돌려 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의사단체, 의과대학, 연구소등 모든 의료 기관 및 의학 분야에서 의사들의 비 의료 활동을 지원하여 각 분야로 인력을 되돌려 보내자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의료계가 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최선의 서비스이다. 이런 서비스가 의료에 힘을 실어 줄 것이고 공급자가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양질의 의료(공급자 중심의 의료)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지난해 몸과 마음이 바쁘게 살아왔다는 사람이나 단체는 왜 그랬는가를 반문해 보자. 스스로 그렇게 살아왔는가? 제도나 타의에 의해 그랬는가? 정부 정책이 우왕좌왕 해서 그랬는가? 우리 스스로가 좌충우돌하느라 그랬는가? 무엇에 의해 휘둘려서 그렇게 살아왔다고 핑계를 대는 것이 연말연시에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 보면 무엇에 의해 휘둘렸는지도 명확치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 불안해 진다. 무엇인가에 의해 휘둘려 바쁘게 살아왔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휘둘렀는지가 명확치 않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우왕좌왕하는 연극 주인공을 바라보는 관중이었다면 분명 즐거웠어야 했다. 그런데 무대에서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이 관중을 쥘락 필락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관중들은 그에 따라 불안하고 바쁘게 살다보니 또 한해가 지난 것이다. 도대체 우리를 그렇게 만든 힘센 주인공들이 누구이고 무엇인가? 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고 우리는 힘이 없음을 한탄만하다가 또 한해를 보내는 것인가?
‘공급자 중심의 기업’은 어떻게 유지 되는가?
의료계는 의료를 피폐시키고 의료인을 힘들게 한 것이 시민 단체와 사회주의 의료를 정착시키려는 정책 입안자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높은 의료 수준과 의료 인력에 상응하는 정당한 투자 없이 의료인과 의료기관을 쥐어짜서 의료혜택을 넓혀가겠다는 이들을 비난하고 투쟁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정말 이들의 힘에 의해 의료가 피폐되고 있는가? 우리를 억누를 수 있는 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국민을 호도하여 얻은 사회적 공감이 그들의 힘의 원천이라고 의료계는 가정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우리를 고달프게 만든 힘이 이것인가?
최근 대선자금이나 측근 비리 쇼를 보면서 국민들을 쥘락 필락 하는 힘의 구성 요소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이해 할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돈을 광고에 쏟아 붓는 것도 결국 공급자 중심으로 소비자를 끌어 들이는 작업이다. 이런 것을 통해 현재 기업들은 국가와 거의 대등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다국적 기업들은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공급자 중심의 경제 환경을 만들고 지켜갈 만큼 힘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 중심의 의료’라는 말의 원조가 ‘소비자 중심의 경제’ 인데 기업들은 의료 소비자들 보다 더 큰 소비자들의 힘을 억누르고 그렇게 막강한 힘을 구축한 것이다.
최근 우리 의료계의 주장을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공급자 중심의 의료’ 환경이 만들어져야 가능한 것들이 많다. ‘공급자 중심의 경제’가 비난 받기는 하지만 ‘민주 국가 체제’ 와 함께 현대의 민주 시민 사회를 가능하게 만든 양대 축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 같이 ‘공급자 중심의 의료’가 나쁜 것이 아니다.
사실 공급자 중심이냐 소비자 중심이냐를 구분하는 것이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과 이익 창출을 생각하는 기업인이나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만을 고집하는 의사는 같은 부류이다.
그런데 기업가는 힘을 가진 자들에게 위법적인 서비스까지 하면서 ‘생산자 중심의 기업’을 유지하는데 의료계는 무엇을 했는가?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해야 힘을 나누어 갖게 되는데 의료계는 무슨 서비스를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고달프고 의료는 발전이 더딘가? 의료에 영향을 주는 힘 있는 자가 누구인가? 정부인가? 국민인가? 사회인가? 기업인가? 소비자 단체인가?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가들인가? 이들에게 의료계는 어떤 서비스를 해 주어 의료의 진실을 이해하는 우군으로 끌어 들일 것인가?
의료계는 우수 인재를 사회 각 분야로 되돌려 보내자
서비스로 내 줄 수 있는 의료계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업들처럼 ‘차떼기’할 돈도 없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광고비를 부담할 능력도 없다.
그런데 의료계는 정말로 큰 자산을 가지고 있다. 최근 의료계가 이과계 수학능력 시험 석차 5000등 까지 흡인하고 있다는 놀라운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 도대체 의료라는 소비 업종에 매년 최상급 인재 5000명이 흡인된다면 그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지는 끔찍한 현상이다.
10년 후 20년 후 우리를 먹여 살릴 산업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의학의 밑바탕인 과학 지식은 누가 공급해 줄 것인가? 결국 의료 자체도 붕괴하고 의학과 의료는 다른 나라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의료계는 이들 인재를 사회 각 분야로 되 돌려보내야 한다. 우수한 인재가 의료계로 들어오는 것을 어느 정도 조절 할 수 있으면 최선이다. 사실 의료는 그렇게 특출한 인재를 싹쓸이 할만한 분야도 아니고 그런 인재는 20-30% 정도의 소수만 필요하다.
사회 분위기로 미루어 당분간 오는 사람을 막는 것 자체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온 사람을 되돌려 보내는 일은 의료계 손으로 가능할 것이다. 의과대학 졸업자를 의 공학 분야로 인도하면 공학계열을 지원하는 것이고 기초의학으로 이끌어 주면 이것이 곳 생명과학을 지원하는 것이다.
인문 계열로의 성장 지원도 가능하다. 당장 보건 정책 분야 의사 공무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의료계로 들어온 우수한 인재를 사회 전 분야로 되돌려 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의사단체, 의과대학, 연구소등 모든 의료 기관 및 의학 분야에서 의사들의 비 의료 활동을 지원하여 각 분야로 인력을 되돌려 보내자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의료계가 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최선의 서비스이다. 이런 서비스가 의료에 힘을 실어 줄 것이고 공급자가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양질의 의료(공급자 중심의 의료)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