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매 사건' 판결과 본인부담상한제

김창보
발행날짜: 2004-07-26 07:12:36
  •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

얼마전 대법원에서는 환자가 퇴원하면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의사가 퇴원을 허용한 행위는 살인방조죄에 해당한다는 첫 확정 판결이 나왔다.

보건의료계에서 일명 '보라매 사건'으로 불리우는 이 사건은 지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뇌를 다쳐 수술을 받은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을 하고 있었는데 환자의 부인이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퇴원을 요구하였고, 병원측에서는 "퇴원하면 사망한다"고 만류하였지만 결국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환자 부인이 쓰고 나서 퇴원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호흡기를 뗀지 5분만에 환자는 사망하였고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하여 퇴원을 결정한 의사를 '살인 혐의'로 기소하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1심 재판에서는 '살인죄'로 인정하였으나 2심 재판은 '살인죄' 대신 '살인방조죄'를 적용하여 의사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그리고 7년 가까이 시간을 끌던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서 '살인방조죄'로 최종 결정이 된 것이다.

물론 이 사건에 대하여 의사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의식불명인 환자를 대신하여 환자 보호자인 부인의 의견을 존중한 것"이라며 이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의료법학회도 법 논리적 측면에서 판결을 존중하지만, 법적-제도적 기준에서 어디까지가 의사의 책임인지 불명확한 상황에서 1차적 책임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유죄판결을 받은 의사의 사면복권을 촉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기사가 실린 인터넷 언론에는 의사들에 의하여 수많은 리플이 달렸다. 그만큼 의사들이 받은 충격이 컸을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도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적 조건 앞에서 퇴원을 요구했던 환자의 부인과 퇴원을 결정해 준 의사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의료비 때문에 집안이 망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이에 대한 제도적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의료비에 대한 부담은 순전히 환자와 그 가족에게 지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과연 누가 그 환자의 부인과 의사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있을가?

건강세상네트워크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환자단체들이 "의료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였지만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과 행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비급여를 제외한 본인부담상한제'로 응답하는 답답한 나라에 살고 있는데, 어찌하여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환자의 가족과 이를 이해하여 불가피하게 퇴원을 결정한 의사가 그 죄를 뒤집어 써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이번 '보라매 사건'을 정부 정책의 미비로 인한 책임을 '의사' 개인에게 돌리는 국가의 폭력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번 일에 대한 대비책을 '의식이 없는 환자인 경우 치료에 대한 의사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환자 가족의 의견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라고 하는 차원에서 찾는 것은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가 "의료비"라고 하는 경제적 이유로 인해 침해당하고 있는 상황을 국가가 제도.정책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이번 '보라매 사건'의 판결에 대해 언급이 없다. 사실 복지부 입장에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가만히 엎드려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비급여 서비스 비용을 제외하여 실효성이 떨어지는 본인부담상한제를 내놓고 게다가 적용방식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아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부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보라매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비급여 서비스 비용을 포함하는 본인부담상한제를 실시해야 또 다른 '보라매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두어야 한다. 사실 의료비때문에 집안이 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본인부담상한제가 실시되고 있었다면 환자의 부인은 사망할지도 모르는 환자를 퇴원시켜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건복지부야말로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받아야 할 대상인지도 모른다.

의사들에게 한마디만 하고 글을 맺으려 한다. 이번 '보라매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의사들이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환자의 상태가 위급한줄 알면서도 환자의 보호자가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환자의 퇴원을 요구했을 때 이에 응해준 의사들이 이번에 유죄판결을 받은 의사 Y씨 말고도 더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의사들이 또 다시 이런 '보라매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비급여 서비스 비용을 포함한 실효성있는 본인부담상한제를 보건복지부에 촉구하는데 나서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길인 동시에 환자들을 위한 방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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