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혈분석 현미경은 만능진단기?

김태화
발행날짜: 2005-02-28 06:50:05
  • 김태화(대공협 기획이사)

우리말에 ‘기가 막힌다.’라는 말이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계획한 한방 HUB 보건소에의 어혈분석 현미경 지원 사실을 접한후 의사들의 심정이 바로 이렇다. 정말 기가 막힌다. 아마도 현재 상태로 한의원에 간다면, 내 피를 한방울 뽑아서 어혈분석 현미경에 놓고는 혈액 염색도 없이 ‘적혈구가 뭉쳐 있으니 어혈입니다. 어혈에 좋은 보약이 있으니 꼭 드셔야 합니다.’라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다.

지난 2월 2일 보건복지부 한방 의료 정책 담당관실에서는 2005년도 ‘한방 공공보건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20개 시도에 ‘한방 HUB 보건소’를 선정하며, 이곳에 어혈분석현미경 및 물리치료기(저주파, 간섭파, 고주파 치료기)등의 장비를 보급한다고 한다.

문제는 한방 HUB 보건소에 설치한다는 어혈분석 현미경이다. 일부 한의원을 중심으로 시행되는 어혈분석이라는 것은 생혈분석 또는 OHS(Optimal health system)라고도 불려진다.

손끝 등에서 한, 두방울의 혈액을 채취하여, 염색없이 그대로 현미경에 올려서 혈액을 관찰하는 것으로, 현미경의 확대된 상을 외부 모니터를 통해 보여 준다. 화면에서 적혈구가 떨어져 있고, 둥근 모양을 나타내면, 혈액순환이 잘 된다고 표현하고, 적혈구가 뭉쳐 있으면 어혈이라고 진단하여 어혈을 푸는 한약복용 및 요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하며 보약을 처방한다.

그러나, 이것은 OHS를 파는 기구판매상과 일부 한의사들의 주장일 뿐 과학적인 근거가 하나도 없다. 학부 1학년때부터 현미경을 자주 접하는 의사, 수의사, 생물학자들이라면 적혈구들이 뭉쳐서 나타나는 것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혈액도말시 혈액을 잘 펴지못해서 잘못 도말할 경우 적혈구가 조밀하게 뭉쳐서 나타나는 현상을 자주 접한다. 어혈이라고 일부 한의원에서 정의내린 혈액의 형태가 바로 이렇듯 잘못 도말된 부분을 일컫고 있으며 이것을 환자에게 보여준후 한두달의 한약처방이나 수기요법후에 제대로 도말된 부분을 보여주며 어혈이 풀렸다라며 보약의 복용을 권한다.

그러나, 어혈분석 현미경 사용시 말하는 적혈구의 기능감소나, 모양 변성, 혈소판의 기능항진, 혈액 점도 등은 단순히 염색없이 광학현미경만으로는 절대 판별 불가능하다.

적혈구의 기능인 산소운반 능력이 ABGA(동맥혈가스분석)등을 통하지 않고 현미경이나 눈에 보일리 만무하며, 점도나 혈소판 기능항진 또한 그러한 것은 당연한 의학적 상식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어혈 관찰 현미경이 가스 분석도 되고, 점도 측정도 되고, 혈소판이나 적혈구를 따로따로 인식하도록 고안된 특수한 장비라면 몰라도 광학현미경을 단순히 이름만 어혈분석 현미경으로 고친 것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대국민 사기를 넘어 미신 수준의 일이다.

이는 한의사들이 그토록 부르짓는 한방의 과학화가 아니라, 과학기구를 이용한 한방의 사기화이다. 어혈분석 현미경에 의한 의료행위는 이미 2000년 12월에 보건복지부에서 중풍예방 레이저 요법이라던 ‘저용량 He Ne 레이저 유침치료’, 및 ‘경락기능 검사를 이용한 약제 적합성 검사’ 등과 함께 의학적 근거가 전혀없음으로 돈을 받고 시행하는 의료행위가 될 수 없다고 결정된바 있다.

그러나, 심각한 현실은 이제 이러한 일을 일부 한의원이 아닌 국가 공공기관인 보건소에서 시행하겠다고 하는데 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지도 않은 대국민 사기극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일이다.

국가 경제가 어려워 국민들은 신음하는 이때, 혈세를 이용한 대국민 사기극은 반드시 저지해야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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