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일원화와 손자병법

박경철
발행날짜: 2005-04-20 06:43:07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한의사 CT 사용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후 드디어 의사와 한의사 사회가 전면전에 돌입하고 있다.

의사회는 이 기회에 한약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함으로서 의료일원화를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기세이고, 한의사는 한의사대로 "한의학 말살음모"를 분쇄하겠다는 섬뜩한 구호들을 앞세워 한약복용중단을 권하는 의사들을 고소고발하는 이전투구를 서슴치 않고 있다.

그러나 "의료일원화"라는 자극적인 구호를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양자간의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원래 과학이란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이며. 같은 관점에서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중요한 명제중의 하나이다, 때문에 의학의 진보는 시간을 거듭할 수록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또 이를 위해서는 의학발전을 위한 영역의 제한이란 원천적으로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버섯이나 이끼에서 항암성분이 있는것으로 추정되면 과학은 그것을 연구하고 실험하여 가능한한 질병의 치료에 활용하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특정 식물을 중탕하여 복용하는 방식보다, 그것을 근육조직에 직접투여함으로서 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면, 한의사가 소위 약침을 사용하여 치료하는 행위가 용인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통증 조절에 약물치료 뿐아니라 인체의 특정부위에 날카로운 자극을 가함으로서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현대의학이 당연히 침술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것 역시 지극히 타당한 일이다.

또 과거 중국황실에서 치핵의 덩어리를 실로 묶어 괴사시키는 방식을 사용했다면, 한의원에서 치핵을 같은 방식으로 수술 할 수도 있고. 과거 요통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상하의 판이 움직여지는 견인장치가 사용된적이 있었다면, 일부 한의사가 카이로프랙틱을 적당히 배운 후에 "추나요법"이라는 이름으로 시술하는 것도 정당하다면, 같은 관점에서 의사가 ICT 의 흡입부위가 불만족스러우면 부항을 사용해 보기도하고 핫팩의 온도가 부적당하다고 생각하면 숙뜸을 시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논리에서 보면 굳이 양한방을 구분하거나 분리할 필요없이 스스로 책임 질 수 있는 범위안에서 스스로의 양식으로 진료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의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치핵을 결찰함으로서 얻어지는 조직괴사의 심각한 부작용을 알지 못하고, Pharmacodynamics나 Pharmacokinetics에 대한 이해가 없이 처방되는 약침이나 기타 국적이 불분명한 시술들에대한 우려가 존재하고, 한의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경혈을 이해하지 못하고 IMS 라는 이름으로 마구잡이로 침을 찔러대는 의사들의 행태가 불안하다면 그것은 양한방의 경계가 명확하고 서로의 영역에 대한 접근이 신중해야 할 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의학이란 병용하자면 경계가 없고, 배척하자면 접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양한방의 분쟁은 어떤면에서는 차제에 이 문제를 공론화하여 양단체간의 철학적 입장정리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의미있는 사안이기도하다.

그러나 작금의 분쟁은 그 격이 다르다.

사실 이번 사태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영역은 전통의학 수호라는 명분아래 철옹성처럼 닫아걸고, 현대의학에 대한 접근은 "한방의 과학화"라는 주장을 내걸고 마구잡이로 침투하는 일부 한의사들의 행태가 곱게 보이지 않고, 한의사들의 입장에서는 호시탐탐 일원화의 명분으로 한방을 흡수하려는 의사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는데서 출발한 것이다.

때문에 그 시작이 바르지 못한만큼 그 끝 역시 양단체가 공히 상처를 입는것으로 마무리 될 것임은 마치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더우기 의사사회의 경우에는 그간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도부가 내부적 불신을 외부의 적에게로 돌리려는 다소 불순한 의도마져 엿보이고, 거기에다 선명성의 헤게모니를 선점하려는 내부적 알력까지 가세한 것이 아닌가라는 양심적 성찰이 필요하고, 한의사 사회는 처음 발단이 되었던 자신들의 명백한 잘못을 굳이 감싸려는 행위가 일파만파의 파란을 불러왔음을 인정치 못하는 편협함이 이번사태의 본질일지 모른다는 통렬한 반성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단체가, 서로 자신들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서로 관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과 독선에 빠져있음은, 오히려 사회로부터 "가진자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되어 어느쪽도 이기지 못하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충수가 될 것임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양 단체 공히 냉정하고,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비록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고 필요하다고 믿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이런 방식으로 벌이는 싸움에서 사회가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유아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 정말 지금 당장 싸움이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양단체 모두 전략과 전술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실패하고 있다.

사실 전략 전술적 측면에서는 상대를 깎아내려 내가 신뢰를 얻겠다는 네거티브적인 방식보다는, 차라리 상대를 무시하고 자신의 신뢰를 차츰 쌓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현명한 길이 아니겠는가.

손자병법에서도 싸우지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윗길이라고 설파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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