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닫은 의협, 쇄신만이 살 길

박경철
발행날짜: 2005-05-09 06:58:45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진나라는 함곡관너머 변경의 약소국가에서 출발하여 중원을 통일하고 명실상부한 중국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웠고, 이후 중국 2000년 역사의 시발점이 된 강력한 국가였지만, 진시황이 나라를 개창하고 천하를 통일한지 단 14년만에 무너져버린 미스테리의 나라이기도하다.

사실 중국역사에서 진나라의 의미는 자못 흥미로운 위치를 차지한다.

진나라는 중국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만리장성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나타내는 영문표기 China 의 Chin (진) 어원이 되는 나라. 사특한 지식인들의 폐해에 주목하여 분서갱유를 시행한 나라, 근대적 의미의 외교를 시작한 나라(합종연횡), 중국 역사의 고질인 환관정치의 폐해를 물려준 나라.. 등등.. 양손가락으로 모두 꼽기가 힘들만큼 많은 이야기와 교훈을 후대에 남겨주고 있다.

그 중에서 압권은 천하를 통일하고 왕권을 반석위에 올린 강력한 왕조가 나라를 세운지 14년, 진시황이 죽은지 단 3년만에 그것도 단 일격에 농민봉기로 무너졌다는 점인데, 후세의 사가들은 진나라의 이런 어이없는 붕괴에대해 옹폐지 국상야(雍蔽之 國傷也-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의 이치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평가한다.

사마천의 사기중 <진본기>와 <진시황 본기>는 "진시황은 천성이 고집불통이므로 남의 의견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였다. 제후 출신으로 천하를 통일하여 어느 누구도 자신을 따르지 못할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했다"라고 적고 , 또 다른 구절에는 "당시라고하여 생각이 깊고 시세의 변화를 아는인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진시황의 잘못을 막지 못했던 이유는 진시황이 남의 말을 듣기를 꺼리고, 거슬리는 소리에 귀를 닫았기 때문이다... 중략.. 심지어는 천하가 어지러워진 다음에도 이일을 황제에게 알리지 않았을 정도이니 ,이 어찌 안타까운일이 아니겠는가.." 라는 탄식으로 끝을 맺고 있다.

사실 진시황은 자만에 빠져 남의 의견을 듣지 않으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아첨으로 일관하는 환관 "조고"의 말만 들었는데. 환관 조고는 진시황이 죽은뒤에 농간을 부려 2 대황제에 둘째아들 "호해"를 옹립한 다음 그에게 이렇게 간한다

"앞 황제께서는 현명하셨기 때문에 군신들이 감히 그릇된 짓을 하고나, 사악한 말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폐하께서는 젊으신데다, 이제 막 즉위하신 분이신데 어찌하여 군신들과 더불어 국사를 결정하려 하십니까.? 그러시다가 일이 잘못되면 군신들에게 약점만 보이게 됩니다. 천자가 <짐>이라고 자칭하는 것은 본래 천자의 소리를 다른 사람이 듣고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조고는 천자에게 올리는 정보를 차단하여 진나라의 국사를 농단하였다.

조고는 심지어 천자에게 사슴 한마리를 올리면서 "말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에 황제가 "왜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 라고 묻자 호해는 옆에 있는 다른 신하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어떤 신하들은 잘 모르겠다하고, 또 다른 신하들은 조고의 말처럼 "말" 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조고의 위세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하는데, 후세의 사가들은 이를 가리켜 "위록지마"라 부른다.

굳이 토인비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는 순환한다.

때문에 인간은 매번 과거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실패를 회피하려 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계속 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되면서 실패의 사책(史冊)을 두텁게한다. 더우기 이런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은 비단 국가경영이나, 왕조의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란 바로 사람의 이야기이고, 오늘의 이야기이다.

오늘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사기"의 교훈을 끄집어 낸 이유는 작금의 의협과 그 지도부의 행태가 과거 진나라의 흥망의 역사를 닮아있기 때문이다.

지금 의협은 진시황이후의 중국처럼 "지도자의 무능력과 ,정통성의 부족, 불투명한 행정, 시대를 읽지 못하는 무지와, 내부의 부패"등 이제 회생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썪어버린 총체적 부실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 옹폐지 국상야(雍蔽之 國傷也) "의 원리를 저버리고, 외부의 조언이나 바른소리에 귀를 닫아 걸고 있다.

심지어, 조직을 구성하는 인적구성은 가히 역대 중국왕조 몰락의 일등공신인 환관 조고나 전국시대의 환관조직 "십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대목에서 굳이 "궁즉변"을 외치지 않더라도 궁지에 몰렸을 때 안주하는 조직은 이미 죽은것이나 다름없으며, 상하의 의사 소통이 되지않고 소수의 아집에 끌려다니는 조직은 확정판결을 받은 사형수나 다름이 없다.

늦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빠르다.

의협지도부는 지금이라도 변해야 산다는 각오로 새출발을 해야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진시황의 나라처럼 특정인의 나라도 아니고, 특정인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은 더더욱 아니며, 특히 환관 조고처럼 특정인이 호가호위 하면서 조직의 명운을 쥐고 흔들어서는 더더욱 안되는 소중한 조직이다.

더우기 지금은 향후 우리 의사사회의 위상을 결정지을 절대적 위기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부가 한편으로는 회비미납회원의 투표권 박탈을 운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최고급호텔을 의사협회의 상근회의실로 여기거나 임원들의 전용식당으로 여겨서도 안되고, 정치세력화 운운하면서 특정정당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 생각하는 친위대의 역할을 하는것은 대단히 부당하고 시의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더우기 투쟁의 순간에는 앞에서는"사생결단"을 외치면서 뒤에서 건배하고, 정작 타협과 설득의 국면에서는 주무장관을 초대해서 안방에서 뒤통수를 때리는 파행적 사고를 가진 지도부는 지금 당장 물러나거나,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거듭나는 것이 회원 대중을 위하는 길이다.

의협지도부의 쇄신을 촉구한다.

*이 칼럼은 메디칼타임즈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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