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항 의료와 사회포럼 정책위원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이중성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의 의미는 국가가 국민 각자의 생애 모든 기간 건강과 복지를 책임지겠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너무나 매혹적인 말이라서 이 말을 외치는 정치가가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국가가 내 인생 모두를 책임질 수 있다는 황당한 말에 당연히 의심이 든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지 국가의 것이 아니다. 국가가 올바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를 모든 국민들에게 강요할 경우 히틀러와 무솔리니, 스탈린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보였든 공포정치를 연상하게 한다. 국가는 내 인생의 일부분만을 이롭게 해 줄뿐 모든 부분을 이롭게 해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봐 주겠다는 말은 국민들에게 매혹적인 말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국가가 정해 준 요람과 무덤을 선택하지 않으면 배척시키겟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어떤 국가도 모든 국민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국가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세금을 국민들에게 빼앗아야 한다. 그리고 빼앗은 세금을 관리하고 분배하기 위해서 엄청난 수의 관료들을 늘여야 하고 이렇게 늘어난 관료들 사이에 부패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부패뿐만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본다는 기치아래 국민들을 정해진 ‘틀’ 속으로 몰아넣어서 그 틀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형벌을 가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현하기위한 틀이 많아질수록 그 틀을 벗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겨나고 틀을 벗어나면 범죄가 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전체주의는 그 두 나쁜 사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들이 던지는 희망 메시지에 다수 국민들의 열광적이며 무조건적인 동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이들에게 동의한 다수 국민들의 열광은 반대하는 소수 사람들에게 형벌을 가했고 그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가치가 동일하다면 그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틀을 벗어난 사람들에게도 그 틀을 벗어 낫다는 이유로 형벌을 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말 인권을 존중한다면 그 틀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간에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을 선택한 사람에게 물리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대한민국의 현실로 돌아가서 살펴보자.
초보 정치가들 일수록 국민들에게 ‘공짜’로 무었을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아무른 원칙도 없이 국민들의 혀에 달콤한 것들을 공짜처럼 보이게 하여 법으로 지급한다. 실제로는 절대로 공짜가 아니다. 다른 누군가는 '정치가가 공짜처럼 공급하고자 하는 것'의 비용을 지불한다. 아무튼 그런 정책들이 국민들을 환호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초보 정치가들은 잘 알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의식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도 아이들이 태어나면 일정기간이 될 때 까지 무상으로 혹은 극히 일부의 적은 금액으로 건강을 돌봐주겠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아동들은 학교에서 무료로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하여 아이들의 건강을 조사하여 준다. 성인이 되면 무료로 1-2년에 한 번식 극히 일부 검사이긴 하지만 의료보험 공단에서 검사를 해준다. 최근에는 노인이 거동이 불편하게 될 경우 싰겨 주고 닦아주고 호흡곤란이 오면 기도유기까지 해주는 제도도 만들었다. 물론 완전히 무료는 아니고 일부는 본인 부담이며 대부분 의료보험 공단의 비용으로 지불한다.
민노당은 이 정도를 넘어서서 의료를 모두 무상으로 전부 공급하겠다고 정책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일부 사회주의 시민단체에서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므로 모두 같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서 결국 무상의료를 주장하게 되어 민노당의 정책에 동의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이제 조만간에 일 안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복지 정치가’들이 일 안해도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돌보아 줄 것 같이 말하니 말이다. 이런 주장을 지지하면 일 안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올수 있는 것 일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유아를 위한 검진이나 학교에서의 정기 점진이나 의료보험 공단에서의 무료 검진이나 노인용양보험이나 모두 공짜가 아니다. 이러한 주장보다 더욱 강력한 민노당의 무상의료나 이러한 민노당의 정책과 맞아 떨어지는 사회주의 시민단체들의 의료정책은 더더욱 공짜가 아님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봐주겠다던 정치가들의 화려한 약속은 일반 국민들이 열심히 벌어서 허리가 휘어지게 국세와 지방세를 내고 의료보험, 산재, 고용보험, 종합소득세 등등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는 무수한 세금을 내면 그 돈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들을 돌봐준다는 정치가의 사탕발림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모아진 돈으로 정치가과 관료들은 마치 국민들에게 ‘베풀듯’ 보기에 화려한 정책을 마구잡이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꼭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정치가들이 만들어 논 복지의 ‘틀’을 벗어나 내가 원하는 개인적 복지를 만들려고 할 때 정치가가 만든 틀을 벗어났다고 비난하거나 불법이라고 처벌을 가하지는 않을까? 의료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의료보험공단이 정한 틀을 벗어나면 형벌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원하지도 않는 복지의 틀 속에 강제로 갇혀야 하는 세상을 좋다고만 봐야 할까? 진정한 복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가 정한 한정된 의료보험의 ‘틀’을 벗어나 개인의 비용으로 좀 더 좋은 검사와 약과 복지 시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정한 복지의 틀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몫으로 남겨야하고 더 이상의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으로 남겨야 한다.
왜! 모든 사람이 똑 같은 복지의 틀 속에 들어가야 하는가? 이러한 틀이 강화되어 이 틀을 벗어나게 되면 형벌을 가하는 세상이 되면 히틀러와 무솔로니와 스탈린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일수록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틀 속에 들어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선택의 자유’가 보다 폭넓게 보장되는 국가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의 의미는 국가가 국민 각자의 생애 모든 기간 건강과 복지를 책임지겠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너무나 매혹적인 말이라서 이 말을 외치는 정치가가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국가가 내 인생 모두를 책임질 수 있다는 황당한 말에 당연히 의심이 든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지 국가의 것이 아니다. 국가가 올바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를 모든 국민들에게 강요할 경우 히틀러와 무솔리니, 스탈린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보였든 공포정치를 연상하게 한다. 국가는 내 인생의 일부분만을 이롭게 해 줄뿐 모든 부분을 이롭게 해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봐 주겠다는 말은 국민들에게 매혹적인 말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국가가 정해 준 요람과 무덤을 선택하지 않으면 배척시키겟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어떤 국가도 모든 국민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국가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세금을 국민들에게 빼앗아야 한다. 그리고 빼앗은 세금을 관리하고 분배하기 위해서 엄청난 수의 관료들을 늘여야 하고 이렇게 늘어난 관료들 사이에 부패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부패뿐만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본다는 기치아래 국민들을 정해진 ‘틀’ 속으로 몰아넣어서 그 틀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형벌을 가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현하기위한 틀이 많아질수록 그 틀을 벗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겨나고 틀을 벗어나면 범죄가 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전체주의는 그 두 나쁜 사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들이 던지는 희망 메시지에 다수 국민들의 열광적이며 무조건적인 동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이들에게 동의한 다수 국민들의 열광은 반대하는 소수 사람들에게 형벌을 가했고 그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가치가 동일하다면 그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틀을 벗어난 사람들에게도 그 틀을 벗어 낫다는 이유로 형벌을 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말 인권을 존중한다면 그 틀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간에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을 선택한 사람에게 물리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대한민국의 현실로 돌아가서 살펴보자.
초보 정치가들 일수록 국민들에게 ‘공짜’로 무었을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아무른 원칙도 없이 국민들의 혀에 달콤한 것들을 공짜처럼 보이게 하여 법으로 지급한다. 실제로는 절대로 공짜가 아니다. 다른 누군가는 '정치가가 공짜처럼 공급하고자 하는 것'의 비용을 지불한다. 아무튼 그런 정책들이 국민들을 환호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초보 정치가들은 잘 알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의식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도 아이들이 태어나면 일정기간이 될 때 까지 무상으로 혹은 극히 일부의 적은 금액으로 건강을 돌봐주겠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아동들은 학교에서 무료로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하여 아이들의 건강을 조사하여 준다. 성인이 되면 무료로 1-2년에 한 번식 극히 일부 검사이긴 하지만 의료보험 공단에서 검사를 해준다. 최근에는 노인이 거동이 불편하게 될 경우 싰겨 주고 닦아주고 호흡곤란이 오면 기도유기까지 해주는 제도도 만들었다. 물론 완전히 무료는 아니고 일부는 본인 부담이며 대부분 의료보험 공단의 비용으로 지불한다.
민노당은 이 정도를 넘어서서 의료를 모두 무상으로 전부 공급하겠다고 정책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일부 사회주의 시민단체에서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므로 모두 같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서 결국 무상의료를 주장하게 되어 민노당의 정책에 동의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이제 조만간에 일 안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복지 정치가’들이 일 안해도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돌보아 줄 것 같이 말하니 말이다. 이런 주장을 지지하면 일 안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올수 있는 것 일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유아를 위한 검진이나 학교에서의 정기 점진이나 의료보험 공단에서의 무료 검진이나 노인용양보험이나 모두 공짜가 아니다. 이러한 주장보다 더욱 강력한 민노당의 무상의료나 이러한 민노당의 정책과 맞아 떨어지는 사회주의 시민단체들의 의료정책은 더더욱 공짜가 아님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봐주겠다던 정치가들의 화려한 약속은 일반 국민들이 열심히 벌어서 허리가 휘어지게 국세와 지방세를 내고 의료보험, 산재, 고용보험, 종합소득세 등등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는 무수한 세금을 내면 그 돈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들을 돌봐준다는 정치가의 사탕발림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모아진 돈으로 정치가과 관료들은 마치 국민들에게 ‘베풀듯’ 보기에 화려한 정책을 마구잡이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꼭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정치가들이 만들어 논 복지의 ‘틀’을 벗어나 내가 원하는 개인적 복지를 만들려고 할 때 정치가가 만든 틀을 벗어났다고 비난하거나 불법이라고 처벌을 가하지는 않을까? 의료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의료보험공단이 정한 틀을 벗어나면 형벌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원하지도 않는 복지의 틀 속에 강제로 갇혀야 하는 세상을 좋다고만 봐야 할까? 진정한 복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가 정한 한정된 의료보험의 ‘틀’을 벗어나 개인의 비용으로 좀 더 좋은 검사와 약과 복지 시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정한 복지의 틀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몫으로 남겨야하고 더 이상의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으로 남겨야 한다.
왜! 모든 사람이 똑 같은 복지의 틀 속에 들어가야 하는가? 이러한 틀이 강화되어 이 틀을 벗어나게 되면 형벌을 가하는 세상이 되면 히틀러와 무솔로니와 스탈린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일수록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틀 속에 들어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선택의 자유’가 보다 폭넓게 보장되는 국가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