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걱정할 일은?

양기화
발행날짜: 2009-08-05 09:27:36
  • 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최근 <의협신문>에 보도된 “항생제 처방률 왜곡됐다”는 제하의 기사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사이에 형성된 난기류가 적절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의협신문 기사의 골자는 “심평원이 항생제 처방률 자료를 의도적으로 왜곡하였고, 제외국의 항생제 사용률에 대한 데이터를 왜곡”한 것으로 요약된다. 특히 기사의 도입부분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한국 의사의 감기에 대한 항생제 과다사용을 질타하기 위해 만든 데이터가 왜곡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할 만큼 엉터리 자료인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심평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평가사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심평원은 「건강보험법」에 따라 설립된 공법인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심평원에서는 요양급여 등의 ‘심사’와 ‘평가’를 주업무로 하고 있는데, 각종 평가사업은 “건강보험법 제56조(업무 등)②요양급여의 적정성평가” 및 “건강보험법 시행규칙 제21조(요양급여 등의 적정성 평가)”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명세서에 근거한 개별 행위에 대하여 ‘심사’하는 것과는 달리, ‘평가’는 의료기관 혹은 의료서비스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를 이용하는 국민의 의료이용권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평가대상 항목을 선정하는 과정도 의료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회의를 통하여 적절한 평가지표를 도출하고, 관련단체에서 추천하는 인사로 구성된 중앙평가위원회에서 평가사업의 틀을 검토하여 승인을 얻는 절차를 거친다. 평가는 설명회를 통하여 의료기관에 평가목적과 방법 등을 상세히 소개한 다음 평가가 이루어지며, 평가결과 역시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논의한 다음, 중앙평가위원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 발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중앙평가위원회에는 의협 대표도 참석하여 모든 내용을 심의하고 있다. 따라서 심평원이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왜곡하였다는 의협신문의 주장은 자가당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항생제 및 주사제 처방률 등을 포함하는 심평원의 약제급여 적정성평가는 8년째 이어진 대표적인 평가사업이다. 특히 급성상기도 감염의 항생제 처방률은 평가 초년인 2002년에는 72.89%에 달했으며, 평가실시 이듬해 10% 가까이 떨어졌으며, 평가결과가 전면공개된 2006년에는 다시 10%에 가까운 53.7%로 감소되었다. 2006년 평가결과를 전면공개하게 된 것도 시민사회단체 등이 정보공개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데 따른 것이었다.

급성상기도염에서 항생제 처방률 평가는 의료기관에서 청구한 자료를 대상으로 외래 항생제 처방률을 분석한 것으로 바이러스성질환으로 분류되는 상병을 대상으로 국한한 것이다. 의협신문에서는 “외국의 논문에 발표된 자료에서 일부 상병을 축소하거나 고의로 누락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국가 간의 질병분류체계가 다르며, 연구자들이 선정한 조사자료 및 조사범위, 연구방법 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평원 실무자들은 우리나라의 상병분류체계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의학적 타당성과 근거를 토대로 비교대상을 산출해낸 것이기 때문에 “왜곡하였거나 고의로 누락하였다.”는 지적은 의협신문의 일방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심평원이 항생제 처방률을 고의로 왜곡하여 얻을 수 있는 사사로운 이익은 없다.

마법의 탄환이라 불린 항생제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만해도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성 세균을 박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세균들이 역시 재빨리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해서 항생제내성 세균이 등장하게 되었다.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되는 속도보다도 내성세균이 확산되는 속도가 더 빠르게 되었다.

항생제내성 세균이 등장하게 되는 원인으로는 선진국에서는 환자의 불필요한 요구와 의사의 과다처방에 따르는 오남용이 지목되며, 후진국에서는 경제적 이유로 충분한 양의 항생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지목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항생제를 적정하게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진작부터 시작되어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시작된 의약분업의 목표에 불필요한 항생제의 사용을 줄이자는 내용이 포함되었을 정도로 적절한 항생제 사용의 필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항생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는 국민들이나 의료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원에서 항생제처방이 불필요한 급성상기도감염에 항생제 처방률은 55.46%로 전문요양병원의 35.16%(2008년 4분기 기준)으로 여전히 높으며, 항생제 처방률이 80%넘는 의원이 3,000여 개소(전체평가대상 의원의 20%)에 이르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각급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는 것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저해함으로써 의사의 처방권을 침해한 다는 주장이 있다. 당연히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의사의 고유권한이다. 항생제내성세균이 확산되는 문제는 해결하기 위하여 항생제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된다는 것이 대세이다. 의학만큼 새로운 지식이 급속하게 많아지고 있는 분야도 없다. 새로 등장하는 학술성과를 의료현장에 적용해야하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평생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도 관행적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는 일부 의료인들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깨달아야 한다. 만연된 항생제내성 세균에 의한 감염증 환자에게 듣는 항생제가 없게 되는 상황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후배들이 “더 이상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감염증환자에게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의료인들이 지키고 싶은 항생제 처방권은 지금 심평원이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항생제내성균이 제한하게 될 수도 있다. 항생제는 우리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우리의 의료자산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메디칼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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