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이어진 눈치전쟁…병협, 극적합의 도출

박양명
발행날짜: 2014-06-03 06:09:40
  • 의협, 마감시한 전 타결…"불공정한 협상구조 피말리는 짓"

[현장]2015년도 유형별 수가협상

새벽 3시. 2015년도 유형별 수가협상이 끝난 시각이다.

마감시한을 넘기면서까지 협상은 이어졌지만 0.1% 인상을 놓고 건강보험공단과 7개 유형을 대표하는 공급자 단체들은 눈치전쟁을 해야만 했다.

건보공단이 전 유형에 야심차게 제안했던 '진료량 연동제'라는 부대조건은 결국엔 유명무실해졌다.

이런 와중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극적 타결을 달성하며 '선방'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행을 결정 했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유형별 수가협상을 한 이래 처음으로 건정심을 택해야만 했다.

이철호 부회장
의협은 유일하게 수가협상 마감시한을 10분 남겨두고 협상을 완료했다. 부대조건 없이 3.1%(3%와 같은 효과)를 인상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협상 결과와 같은 인상률이다.

의협 이철호 부회장은 "처음 요구했던 것보다는 아쉬운 결과"라고 평했다.

그는 부대조건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원격진료 시범사업 때문에 회원 정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부대조건까지 받으면 반대가 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수가협상에 처음 참여한만큼 느꼈던 점들도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그는 "추가 소요 재정(밴딩폭)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수가협상 과정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현재 수가협상 구조 자체가 서로 피를 말리는 짓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아무 내용도 없이 깜깜한데서 코끼리 코를 만지는 것 같다. 공단이 공급자를 설득 못하고 단순히 수치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쉽다. 거버넌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협이 부대조건도 없이 선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병협 수가협상단
병협은 어떤 다른 단체들보다도 드라마틱한 협상을 했고, 그 결과는 1.8%(1.7%와 수치 같음) 인상이라는 성적표로 이어졌다.

건보공단은 병협에 협상초반만 해도 1% 초반의 인상률을 제시한 데다가 ▲진료량 관리제 ▲유형 세분화 ▲회계자료 제출 등 3가지의 부대조건까지 제안했다.

병협은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건보공단과 눈치싸움을 치열하게 했다.

수가협상 마지막 날에도 다른 공급자 단체가 건보공단과 2번을 더 만나면서 협상을 할 때 4번을 더 만나야만 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유형이다 보니 병협의 협상 난항은 다른 유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병협은 협상 마감시한을 넘기면서까지 협상을 했지만 건보공단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을 선언했다.

이계융 상근 부회장은 "병협은 장렬히 전사했다"는 말을 남기며 수가협상 규탄 내용을 담은 성명서까지 즉시 배포했다.

그러나 이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약 한 시간만인 새벽 1시경 병협 수가협상단은 건보공단으로 발길을 돌렸다. 협상결렬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

재협상을 시작한지 약 20여분만에 병협은 건보공단과 부대조건 없이 건보공단과 최종 1.8% 인상에 합의했다.

그렇다면 부대조건도 없이, 1% 초반이었던 인상률이 1% 후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여기에는 병협 박상근 신임 회장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

박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취임사,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수가협상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이끌고, 적정 수가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수가협상단이 건보공단과 직접 접촉을 하고 있을 때, 박 회장은 청와대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을 직접 만나고, 재정운영위원회 위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병원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치협-한의협 건정심행…건보공단의 부대조건 유명무실

전체 소요 재정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의협과 병협의 협상이 잇따라 타결되자 다른 단체들의 협상에도 속도가 붙었다.

새벽 3시까지 이어진 수가협상에서 약사회는 3.2%(3.1%와 같은 효과) 인상을 약속했다. 물론 부대조건은 없었다.

그러나 치협과 한의협은 건보공단과 생각차를 좁히지 못하고 '건정심행'을 최종 선택했다. 치협은 병협과 마찬가지로 협상 결렬을 선언했음에도 다시 한번 건보공단과 마주 앉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로써 건보공단이 야심차게 제시했던 '진료량 연동제'라는 부대조건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상인 급여상임이사
건보공단은 협상초반부터 각 공급자 단체에 이메일로 진료비 목표 관리제를 부대조건으로 던졌다.

그리고 4차 협상에서 각 단체들에 진료량 연동제라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며 부대조건 관철의 의욕을 보였다.

진료량 연동제는 과거 3년치나 5년치 평균 진료량으로 표준 편차 범위를 정해 놓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공급자 단체들은 공단의 부대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건보공단은 부대조건을 포기하고 수치싸움만 했다.

모든 유형과의 협상을 끝낸 건보공단 이상인 급여상임이사는 "재정은 한정돼 있고 공급자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협상이) 상당히 어려웠다. 부대조건은 제안했는데 거부당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내년 재정 사정이 안좋기 때문에 밴딩폭이 많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계속 피력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각 단체별 수가인상률과 추가 투입재정은 3일 열리는 재정운영위원회의 심의 의결 후 최종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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