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서경화 연구원
"2030년 의사 인력은 최대 1만명이 부족하게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은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의료인력의 수가 가장 적은 편이다." -OECD 보고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천편일률적 내용이 등장하는 보고서들, 과연 공통된 의견일까? 이들 보고서를 기반으로 의대 정원 확충 정책을 펼치는 것이 과연 가치 중립적인 선택일까?
최근 2030년 의사의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주요 국가의 의료 인력 수급 균형 모델을 비교 분석한 결과물을 이달 발표할 예정이다.
메디칼타임즈는 한국의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OECD 보고서의 허점을 지적한 바 있는 서경화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을 지난 1일 만나 국내 의사 수요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거리마다 눈을 어지럽히는 동네 병의원 간판, 그리고 전공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대학병원. 의사 인력은 부족한 것일까, 넘치는 것일까.
"명쾌한 해답은 어렵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뗀 서 연구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편일률적으로 "의사가 부족하다"는 보고서들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연구 보고서는 이미 많은 전제와 가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미묘한 관점 차이에 따라 연구의 해석과 결과가 달라집니다. 한마디로 말해 수 많은 통계와 데이터 중에 무엇을 '선택하냐'에 따라 연구의 결과가 큰 폭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연구에 앞서 최대한 가치중립적인 분석 모형의 개발과 함께 편견을 배제할 객관적인 지표 설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소리다.
실제로 서 연구원은 수 년 간 의사 인력 확충의 근거가 됐던 OECD의 의사 인력 보고서(OECD Health Data 2014)가 허점 투성이라는 지적을 제기한 바 있다.
의사 인력을 집계하는 방식과 범위가 상이해 단순히 국가별 인력을 비교하는 데 한계가 있고 그나마 OECD에 자료를 제출한 국가도 회원국 대비 8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경화 연구원은 "OECD 회원국은 총 34개 국가이지만 지표별로 해당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국가도 있고 이는 평균 산출 시 분석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제출된 국가의 자료만으로 OECD 회원국의 평균을 산출하고 이를 기준으로 각 국가의 지표를 비교하는 것은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활동 의사 수, 면허 의사 수와 같은 의사 인력 자료를 제출한 국가는 각각 24개 국가, 20개 국가에 불과해 OECD 회원국 대비 70.6%, 58.8%에 그칠 뿐더러 의과대학 졸업생 수나 CT, MRI 현황을 제출한 나라 역시 OECD 국가 중 70% 중반 대에 머물고 있다.
서 연구원은 "OECD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인구수 대비 활동 의사 수가 회원국 평균(3.2명)보다 1.1명이 적은 2.1명으로 산출했다"며 "반면 국토 면적 대비 의사 수로 의사 밀도를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의사 밀도가 3번째로 높다"고 강조했다.
어떤 지표를 중심으로 분석하느냐에 따라 연구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 그대로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의료 인력 보고서에 대해서도 아쉬운 소리가 이어졌다.
서경화 연구원은 "분석에 사용된 시계열(ARIMA) 모델은 단기 분석에는 유용할 지 몰라도 장기적인 분석에는 편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근무일수를 기준으로 만든 시나리오도 치밀하지 못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사연은 의사의 근무일수를 연간 255일, 265일 두 가지 가정을 두고 2030년의 인력 상황을 추계했다. 결과는 255일 기준일 때 9960명이 부족하고, 265일 기준일 때 4267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서 연구원은 "연구에 사용된 근무일 수는 1998년 문헌에 나왔던 기준을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현재 의사들의 근로 환경과는 차이가 있다"며 "실제로 다수의 의사들이 주 6일 근무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연간 300일 정도 근무를 하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의사의 근로일수와 인력 공급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근로일수 기준 변경 하나만으로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수요-공급 곡선이 크게 바뀔 수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의료 인력 모형에 ▲인구학적 변화 ▲수련의로 복귀 ▲사회문화적 변화 ▲이민자의 노동시장 복귀 ▲직업 관련 기술적 변화 등 세세한 25가지 지표를 활용하는데 반해 국내 연구의 지표는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연구자마다 상이한 지표를 차용하고 있는 마당한 치밀한 인력 수급 시뮬레이션 모형 개발없이 일부의 보고서만을 가지고 의대 정원 등 의료정책을 결정을 하는 일은 위험하다는 게 그의 판단.
"의사의 총량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역적 불균형을 고려해서 의사 인력에 대한 추계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총량만을 가지고 의사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의대를 증설하거나 입학정원을 늘리자는 주장은 문제가 있습니다. 의사가 교육 과정을 거쳐 배출되는 10년의 과정 동안 상황이 바뀐다고 그에 맞춰 정책을 또다시 변경하기도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대 증원이나 신설 요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보다는 근거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의료 인력이 균형과 불균형의 반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 시점의 '불균형'이 미래의 의사 부족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서경화 연구원은 "체계적 문헌 고찰과 메타 분석 등 근거 중심 의학에 대한 공부를 해 왔고 현재는 각국의 의료인력의 추계에 사용된 모형이 우리나라의 모형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연구원으로서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거 중심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격의료를 강행하는 정부를 보면서 정책을 만들어 놓고 근거를 끼워맞추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며 "의사 인력과 관련해서도 단순 추계로 정책을 펴지 말고 다양한 의견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