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점안제 재사용 불가, 누굴 위한 선택인가

박양명
발행날짜: 2015-11-26 05:15:59
  • 전문가 반대하고 환자에겐 부담되는, 식약처의 이해 못 할 결정

콘택트 렌즈 착용을 생활화하고 있는 기자는 안구건조증 때문에 일회용 점안제를 종종 쓴다. 말이 일회용이지 양쪽 눈에 번갈아 넣어도 약이 남아 있다. 그럴 때 고민한다, 한 번 더 써야 할까 그냥 버려야 할까.

'개봉 후에는 가급적 즉시 사용하고 최초 개봉 후 12시간 이내에 사용하라'는 안내 문구를 떠올리고 조금 더 사용한다. 그러다가도 뚜껑을 한 번 열었다는 찜찜함(?)에 남은 약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때도 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기자뿐이 아니다. 한 지인은 라식 수술 후 안구건조증이 생겨 안과에서 1회용 점안제를 수시로 처방받는다. 1회용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양쪽 눈에 넣어주고 두세 번 정도 더 쓴다. 그는 혹시 모를 세균 번식 걱정에 12시간이 지나지 않았어도 그냥 버린다.

그런데 식약처는 이달 초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고 일회용 점안제 허가사항을 바꾸기로 했다. 일회용 점안제라는 말에 충실해 재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문구 하나가 바뀐 것 뿐이지만 그동안 일회용 점안제를 애용해온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결정이다. 이미 환자들이 알아서 세균 번식 등을 염려해 통제를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설득할 충분한 설득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안구건조증 환자들은 보통 일회용 점안제 30개가 들어있는 박스를 한 박스 처방받는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갔을 때 환자가 내야 하는 비용은 약 6000원이다. 건강보험공단의 부담금은 1만4000원이다. 즉 약 값은 총 2만원이라는 소리다. 12시간 이내에 4~5번 나눠 쓸 수 있는 것을 한번만 쓰고 버리면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일회용 점안제 한박스 사용 기간이 단축되는 것은 자명하다. 사용 기간이 단축되는 만큼 의원을 찾는 횟수는 늘어날 것이고, 약 값 부담 역시 증가한다.

앞서 언급했던 기자 지인은 진료비에 일회용 점안제 약값 6000원, 안구건조치료제 값까지 더하면 한 번에 약 3만원 정도가 주머니에서 나간다고 한다. 하루에 일회용 점안제를 평균 2개씩 쓰고 주말에는 쓰지 않는데, 허가사항이 바뀌면 일회용 점안제 지출 금액이 두배로 늘어날 것이다.

전문가 집단인 안과 의사들도 근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안과 개원의는 식약처의 일방적 결정이 "황당한 코미디"라고 했다. 10년이 넘도록 유지해온 허가사항을 특별히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근거 없이 바꿨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안과 개원의는 "요즘도 여러 번 넣을 수 있는 점안제를 달라는 환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일회용 점안제 재사용을 불가하면 기존 일회용 점안제를 쓰던 환자 민원이 이어질 것"이라며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또 의사들의 몫 아닌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회용 점안제를 안 쓰는게 낫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대한안과의사회는 "약 오염도를 줄이겠다는 기본 취지는 동감한다"면서도 "부작용 사례 조사, 세균배양검사 같은 전향적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도 반대하고, 환자가 써야 할 시간과 비용도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일회용 점안제 재사용 불가 방침. 식약처는 누구를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관련기사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