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57]
왜 목수인가?
본원은 정형외과 응급 수술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수술이 외상 수술보다 인공 관절 치환 수술, 뼈의 암 수술, 선천기형 수술 등이 차지했다.
하지만 금요일 당직 새벽 1시경 갑작스런 응급 수술에 참여했다. 응급실로 내원한 당뇨 환자였는데 족부 궤양에 발생한 감염이 빠르게 전신을 타고 패혈증으로 진행되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발을 절단하는 수술을 앞당겨 응급으로 하게 된 것이다.
1년 내내 응급이 많다는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일정도 없었다. 심지어 일반외과 인턴 때도 한밤중에 발생하는 응급 수술은 모두 피할 정도로 내공이 좋았다. 하지만 1년이 다 끝나가는 막바지에, 그것도 한밤중에 정형외과에 응급 수술 스크럽에 들어갔다. 역시 어떻게든 이렇게 한 번은 새벽 중에 수술을 하는구나 싶었다.
하지 절단 수술이었다.
교통사고나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환자를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다리를 자르는' 과정을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접한 수술 중 가장 거칠었다. 수술을 하면 보통 흉터를 적게 남기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최소 조작으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다리 절단술은 처음부터 날카로운 10번 메스가 스윽 하고 종아리에 거침없이 들어간다.
찰나, 메스가 지나간 틈새로 피가 맺히지 않은 채 아래 근육이 보인다. 이내 절단면부터 피가 송송 맺히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집도의의 메스는 두터운 종아리 근육을 파헤치고 굵은 혈관을 차례로 지혈한다. 하얗게 정강이 뼈가 드러나고 톱을 이용하여 뼈를 절단한다. 절단하는 내내 환자의 허벅지를 붙들고 버티던 손에 기분 나쁜 진동이 전해진다.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환자의 발이 몸으로부터 댕강 분리된다. 감염의 징후가 농후한, 퉁퉁 부운 환자의 검붉은 발이 스테인리스 양동이에 덜컹 소리와 함께 떨어진다. 양동이에 담긴 핏기 잃은 발을 보고 있노라니 형언할 수가 없다.
이후 남은 건강한 조직들로 절단면을 감싸주어야지 환자가 수술 이후 의족을 문제없이 찰 수 있다. 절단면이 매끄럽지 못하면 의족을 찰 때마다 눌리는 부분에 욕창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발바닥의 해부학적 견고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번 환자의 경우 감염이 심해 건강한 조직이 나올 때까지 절단면으로부터 추가적인 절제가 진행됐다. 이미 감염으로 시커멓게 죽은 조직은 잘라도 피가 잘 나지 않아 빨간 피가 나올 때까지 수술은 진행됐다.
새벽 1시 즈음 시작한 수술은 새벽 4시에야 마무리됐다. 평상시보다 시간이 배로 걸렸다. 수술 내내 졸릴 틈이 없었다. 아드레날린이 뿜어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수술 같지 않은 수술이었다.
정형외과 교수님 중 몇몇은 자신들은 서젼이 아니라 '목수'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형외과에서 쓰는 수술 기구들은 '연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것들이 많았다. 망치, 끌, 톱, 드릴, 나사 등 집 짓는 데 쓰기 좋은 수술 기구들이다.
정형외과 로젯에서 '땅~땅~땅' 리드미컬한 소리가 매일 울려퍼진다. 신체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토대는 뼈다. 집을 지을 때 틀이 되는 버팀목을 뼈대라 일컫지 않는가.
가장 중요한 기초 공사가 뼈대를 튼튼하게 세우는 것이어서 정형외과 서젼의 '목수'라는 표현에 자부심도 보였다.
[58]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본원은 정형외과 응급 수술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수술이 외상 수술보다 인공 관절 치환 수술, 뼈의 암 수술, 선천기형 수술 등이 차지했다.
하지만 금요일 당직 새벽 1시경 갑작스런 응급 수술에 참여했다. 응급실로 내원한 당뇨 환자였는데 족부 궤양에 발생한 감염이 빠르게 전신을 타고 패혈증으로 진행되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발을 절단하는 수술을 앞당겨 응급으로 하게 된 것이다.
1년 내내 응급이 많다는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일정도 없었다. 심지어 일반외과 인턴 때도 한밤중에 발생하는 응급 수술은 모두 피할 정도로 내공이 좋았다. 하지만 1년이 다 끝나가는 막바지에, 그것도 한밤중에 정형외과에 응급 수술 스크럽에 들어갔다. 역시 어떻게든 이렇게 한 번은 새벽 중에 수술을 하는구나 싶었다.
하지 절단 수술이었다.
교통사고나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환자를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다리를 자르는' 과정을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접한 수술 중 가장 거칠었다. 수술을 하면 보통 흉터를 적게 남기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최소 조작으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다리 절단술은 처음부터 날카로운 10번 메스가 스윽 하고 종아리에 거침없이 들어간다.
찰나, 메스가 지나간 틈새로 피가 맺히지 않은 채 아래 근육이 보인다. 이내 절단면부터 피가 송송 맺히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집도의의 메스는 두터운 종아리 근육을 파헤치고 굵은 혈관을 차례로 지혈한다. 하얗게 정강이 뼈가 드러나고 톱을 이용하여 뼈를 절단한다. 절단하는 내내 환자의 허벅지를 붙들고 버티던 손에 기분 나쁜 진동이 전해진다.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환자의 발이 몸으로부터 댕강 분리된다. 감염의 징후가 농후한, 퉁퉁 부운 환자의 검붉은 발이 스테인리스 양동이에 덜컹 소리와 함께 떨어진다. 양동이에 담긴 핏기 잃은 발을 보고 있노라니 형언할 수가 없다.
이후 남은 건강한 조직들로 절단면을 감싸주어야지 환자가 수술 이후 의족을 문제없이 찰 수 있다. 절단면이 매끄럽지 못하면 의족을 찰 때마다 눌리는 부분에 욕창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발바닥의 해부학적 견고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번 환자의 경우 감염이 심해 건강한 조직이 나올 때까지 절단면으로부터 추가적인 절제가 진행됐다. 이미 감염으로 시커멓게 죽은 조직은 잘라도 피가 잘 나지 않아 빨간 피가 나올 때까지 수술은 진행됐다.
새벽 1시 즈음 시작한 수술은 새벽 4시에야 마무리됐다. 평상시보다 시간이 배로 걸렸다. 수술 내내 졸릴 틈이 없었다. 아드레날린이 뿜어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수술 같지 않은 수술이었다.
정형외과 교수님 중 몇몇은 자신들은 서젼이 아니라 '목수'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형외과에서 쓰는 수술 기구들은 '연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것들이 많았다. 망치, 끌, 톱, 드릴, 나사 등 집 짓는 데 쓰기 좋은 수술 기구들이다.
정형외과 로젯에서 '땅~땅~땅' 리드미컬한 소리가 매일 울려퍼진다. 신체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토대는 뼈다. 집을 지을 때 틀이 되는 버팀목을 뼈대라 일컫지 않는가.
가장 중요한 기초 공사가 뼈대를 튼튼하게 세우는 것이어서 정형외과 서젼의 '목수'라는 표현에 자부심도 보였다.
[58]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