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먼저 화내는 사람이 진다…진료는 협상이다"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17-08-04 05:00:22
  •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26)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26)

내가 제일 잘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 하는데, 환자가 억지를 쓸 경우 감정 조절이 안돼 결국 내가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개원 21년째니까 진료에서는 고수가 된 느낌이다. 그리고 환자들이 나에게 명의라고 얘기를 해 준다. 그래서 진료에서만은 어디에 내 놔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조절 문제는 참 쉽지가 않다. 물론 개원 초창기에 비하면 정말로 좋아졌지만 주위에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어느 날 정치인과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정말로 화를 잘 조절했다. 단어를 선택할 때도 정말 신중했다. 나중에 후회할만한 일이나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정치적'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그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까웠다. 어떻게 저렇게 감정을 조절하고, 화를 하나도 내지 않고, 목소리도 올리지 않으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만일 내가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저렇게 행동하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 병원에는 상담실장이 있다. 그녀는 내가 바빠서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과 수술후 환자를 챙겨주는 것을 맡아서 한다. 특히 수술 전후 상담을 주로 한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의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환자가 보낸 문자 내용이나 상담 내용에 대해서 듣게 되는데 정말 토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떻게 이런 말이나 글들을 모두 상담하냐고 물어보니,
"그것이 저의 일이예요. 조금 참으면 우리병원이 돈을 벌잖아요. 걱정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일이예요. 제가 조금 참을게요!"라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

어느날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상담실장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 따위로 상담하면서 상담실장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렇게 거칠게 얘기하고는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기까지 했단다.

뿐만이 아니다. 전화상담을 하고 있는데 문자를 50개도 더 보내는 사람도 있고, 본인의 시시콜콜한 모든 얘기를 상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오래 기다리면 오래 기다린다고 불평하고, 분명히 설명하고 검사 했는데도 왜 설명도 안 하고 검사를 했냐고 불평하고,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진료한다고 화를 내고, 다른 병원에 갈 테니까 진료의뢰서를 써 달라고 한다.

이런 부정의 에너지들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얼마 전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한 환자가 보건소에다 나를 고발했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병원에 온 초진환자였다. 초음파를 보니 자궁내막에 용종이 있어서 오늘 용종을 제거해도 되고, 생리가 끝나고 초음파를 한 번 더 보고 용종을 제거해도 된다고 얘기를 했다. 그녀는 생각해보겠다는 얘기를 하고 갔다.

그리고는 다음날 다른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또 했다. 그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내막이 두꺼우니 생리 끝나고 다시 보자고 얘기를 했고 용종에 대한 설명은 안 했다고 한다. 그랬다며 그녀는 보건소에 나를 고발 했다. 내가 오진을 했고, 당장 수술을 하자고 얘기를 했다며 수사해 달라고 요청 했다고 한다.

보건소 직원은 나에게 차트를 카피해 달라고 요청 했다.내가 보기에는 영락없는 용종이었다고 초음파를 다시 보면서 설명했다. 결국 보건소 직원에게 엄청나게 화를 냈다.

"왜 내가 틀리고, 그 산부인과 의사가 맞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수술을 해서 환자가 죽었냐? 장애인이 됐냐? 후유증이 생겼냐? 그런데 왜 나를 범죄자 취급하고 차트까지 복사해 달라고 하느냐? 보건소가 사법기관이냐?"고 따져 물었다.

경험상 이렇게 보이면 거의 대부분 용종이고, 우리 병원이 생긴 이후 그녀가 처음 산부인과를 왔으면 21년 만에 산부인과에 온 것이니까 다시 언제 산부인과에 올 지도 모르는 환자이니까 어려운 발걸음을 한 것이다. 용종제거도 간단하고, 용종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직검사를 하면 가끔 자궁내막암으로도 나오니까 그 날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 만약 그 날 제거를 안 할 거면 반드시 생리 끝나고 초음파 봐야 된다고 '설명'을 했는데 왜 21년차 산부인과 의사의 말이 틀리고 개원 5년차 산부인과 의사 말이 맞다고 생각하느냐?

우리 병원 초음파 해상도가 엄청나게 좋아서 용종으로 보이고 그 산부인과 초음파의 해상도가 별로이면 그냥 자궁내막이 두껍게만 나올 수도 있는데 왜 내가 틀리다고 하느냐고 화를 냈다.

하…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차분하게 얘기를 했으면 좋으련만, 화부터 냈다. 결국 초음파 내용 CD로 주고 차트도 복사해서 줄거였으면서 말이다.

보건소 직원을 보내면서, 종합병원 진료가 끝난 후 누가 맞았는지, 나에게 꼭 전화를 달라고 얘기했지만 그는 끝내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협상을 안 한다. 협상의 기본은 일단 감정을 죽이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절대 되지 않는다. 이것도 훈련이 필요한 것인가? 내가 제일 못 참는 것은 '실력없다'는 말이다. 다른 말은 다 참는데, 그 말은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도 '의사가 실력없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필요이상으로 화를 낸다. 내가 실력이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부 하고, 학회를 다니며, 밤에 책을 보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만약 진료를 하다가 환자에게 화를 내는 것이, 즉 화풀이가 목적이라면 싸워도 좋다. 하지만 이기는 게임을 하고 싶거나 그 환자를 평생 나의 고객으로 만들 생각이라면 싸우는 것이나 싸워서 이기는 것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다. 얻는 것이 없다. 그 날 하루 화풀이로 끝나고 지는 게임을 한 것이다.

반드시 싸워서 져라. 그리고 대신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 고민하면서 대화를 해라. 이것이 이기는 화술이다. 이것도 고민하고 연구하고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기술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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