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훈정 전 대한의사협회 감사
조금 식상한 비유지만 중국 음식점의 예를 들어보겠다. 한 그릇 만드는데 원가가 4000원인 자장면에 이익을 남기려면 5000원은 받아야 한다(본전 장사를 할 수는 없으니까). 주변에 경쟁 업소가 많다면 4500원만 받을 수도 있고, 맛집으로 소문나 손님들이 몰려든다면 6, 7000원을 받을 수도 있다. 그걸 결정하는 것이 시장(市場)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가 명령을 내려 물가안정 차원에서 '국민음식'인 자장면 값을 원가의 75%인 3000원만 받으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보상 기전이 없다면 몇 달 못 가 전국 중국음식점은 다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생긴 것이 예외다. 자장면은 국가에서 고시한 금액 이상으로 받을 수 없지만, 군만두나 탕수육 가격은 알아서 받으라는 거다.
이쯤 되면 눈치 챘겠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의료제도, 국민건강보험의 작동 원리다.
수년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대가치연구개발단 연구 결과에 의하면(의사 단체가 연구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 의료수가는 원가(原價)의 70% 정도라고 한다. 이후 몇 년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의사들이 이 자료를 근거로 수가를 올려달라고 주장하면 보건의료 관련 '시민 없는' 시민단체들이 앵무새처럼 주장하던 얘기가 "원가가 70%라면 어떻게 병의원들이 생존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을 강제당한 중국음식점이 생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박리다매(薄利多賣)다. 하루에 30그릇정도 자장면을 만들 때 원가가 4000원이라면, 80그릇 정도 만들면 원가가 3000원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주방장은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팔이 빠져라 반죽을 쳐야 한다(면을 뽑는 기계를 사면 편하지만 정부에서 그 기계 값을 대어주지는 않는다). 또 가격이 싸고 손님이 느는 대신 서비스는 엉망이 된다.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실내는 지저분해지며 물이나 반찬은 셀프다.
둘째는 군만두, 탕수육이다. 정부가 가격을 강제하지 않은 메뉴를 파는 것이다. 자장면을 팔아서 밑지는 것을 군만두, 탕수육을 팔아서 그 마진으로 메우는 거다. 예컨대 원가가 3000원인 군만두를 4000원에 팔고, 원가 8000원인 탕수육을 1만원에 파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두 가지 편법을 동원한다고 해서 중국음식점들이 번창하는 건 아니다. 음식점 업주의 투자나 노력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업주를 화나게 하는 것은 정부가 가격을 통제할 뿐,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르다가 망하는 가게들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고생하는 중국음식점 업주들에게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더 나은 식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앞으로는 군만두나 탕수육도 정부가 정한 가격을 받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일부 음식점들이 손님에게 '지나치게 높은' 군만두나 탕수육 가격을 받고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면 정부가 과연 군만두 4000원, 탕수육 1만원을 받으라고 고시할까?
짐작하는 대로, 지금 자장면 값처럼 원가 3000원인 군만두는 2000원, 원가 8000원인 탕수육은 6000원만 받으라고 강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나마도 하루에 몇 그릇 이상 팔지 말라고 해서 박리다매 경영도 어렵게 하고, 몰래 몇 그릇 더 팔았다가 단속에 걸리면 즉시 문을 닫게 될 것이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원가에 맞는 의료수가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개과천선 해서 병의원들이 먹고살만한 수가를 매겨줄 것인가. 시쳇말로 한두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잘못이지만 여러 번 속으면 속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당해왔으면 이젠 학습효과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정부가 이번 '비급여 전면 급여화' 과정에서 원가 이상의 수가를 절대로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는 증거는 또 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한데, 그럴만한 돈이 애당초 없다는 거다.
지금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인구고령화와 신약/신의료기술 증가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은 자연증가분을 감당하기도 벅차다. 올해 초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내년부터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적자로 전환될 예정이고, 작년 52조원이었던 건강보험 지출이 -현재의 보장률을 유지한 상태로도- 매년 8% 이상 증가해 2025년에는 무려 111조원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에 발표한대로 5년 내 건강보험 보장률 70% 달성이나 비급여 전면 급여화를 강행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공언하는 '보험료나 세금을 올리지 않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좀 전에 들어온 손님이 만원짜리 한 장 던지면서 탕수육 하나, 자장면 두 개를 갖고 오라고 한다. 뻔히 적자 나는 것을 알면서도 팔고 망할 것인지, 아니면 그 돈으로는 음식을 못해드리겠다고 용기를 내어 말할 것인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외부 필자 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가 명령을 내려 물가안정 차원에서 '국민음식'인 자장면 값을 원가의 75%인 3000원만 받으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보상 기전이 없다면 몇 달 못 가 전국 중국음식점은 다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생긴 것이 예외다. 자장면은 국가에서 고시한 금액 이상으로 받을 수 없지만, 군만두나 탕수육 가격은 알아서 받으라는 거다.
이쯤 되면 눈치 챘겠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의료제도, 국민건강보험의 작동 원리다.
수년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대가치연구개발단 연구 결과에 의하면(의사 단체가 연구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 의료수가는 원가(原價)의 70% 정도라고 한다. 이후 몇 년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의사들이 이 자료를 근거로 수가를 올려달라고 주장하면 보건의료 관련 '시민 없는' 시민단체들이 앵무새처럼 주장하던 얘기가 "원가가 70%라면 어떻게 병의원들이 생존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을 강제당한 중국음식점이 생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박리다매(薄利多賣)다. 하루에 30그릇정도 자장면을 만들 때 원가가 4000원이라면, 80그릇 정도 만들면 원가가 3000원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주방장은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팔이 빠져라 반죽을 쳐야 한다(면을 뽑는 기계를 사면 편하지만 정부에서 그 기계 값을 대어주지는 않는다). 또 가격이 싸고 손님이 느는 대신 서비스는 엉망이 된다.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실내는 지저분해지며 물이나 반찬은 셀프다.
둘째는 군만두, 탕수육이다. 정부가 가격을 강제하지 않은 메뉴를 파는 것이다. 자장면을 팔아서 밑지는 것을 군만두, 탕수육을 팔아서 그 마진으로 메우는 거다. 예컨대 원가가 3000원인 군만두를 4000원에 팔고, 원가 8000원인 탕수육을 1만원에 파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두 가지 편법을 동원한다고 해서 중국음식점들이 번창하는 건 아니다. 음식점 업주의 투자나 노력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업주를 화나게 하는 것은 정부가 가격을 통제할 뿐,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르다가 망하는 가게들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고생하는 중국음식점 업주들에게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더 나은 식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앞으로는 군만두나 탕수육도 정부가 정한 가격을 받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일부 음식점들이 손님에게 '지나치게 높은' 군만두나 탕수육 가격을 받고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면 정부가 과연 군만두 4000원, 탕수육 1만원을 받으라고 고시할까?
짐작하는 대로, 지금 자장면 값처럼 원가 3000원인 군만두는 2000원, 원가 8000원인 탕수육은 6000원만 받으라고 강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나마도 하루에 몇 그릇 이상 팔지 말라고 해서 박리다매 경영도 어렵게 하고, 몰래 몇 그릇 더 팔았다가 단속에 걸리면 즉시 문을 닫게 될 것이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원가에 맞는 의료수가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개과천선 해서 병의원들이 먹고살만한 수가를 매겨줄 것인가. 시쳇말로 한두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잘못이지만 여러 번 속으면 속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당해왔으면 이젠 학습효과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정부가 이번 '비급여 전면 급여화' 과정에서 원가 이상의 수가를 절대로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는 증거는 또 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한데, 그럴만한 돈이 애당초 없다는 거다.
지금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인구고령화와 신약/신의료기술 증가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은 자연증가분을 감당하기도 벅차다. 올해 초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내년부터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적자로 전환될 예정이고, 작년 52조원이었던 건강보험 지출이 -현재의 보장률을 유지한 상태로도- 매년 8% 이상 증가해 2025년에는 무려 111조원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에 발표한대로 5년 내 건강보험 보장률 70% 달성이나 비급여 전면 급여화를 강행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공언하는 '보험료나 세금을 올리지 않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좀 전에 들어온 손님이 만원짜리 한 장 던지면서 탕수육 하나, 자장면 두 개를 갖고 오라고 한다. 뻔히 적자 나는 것을 알면서도 팔고 망할 것인지, 아니면 그 돈으로는 음식을 못해드리겠다고 용기를 내어 말할 것인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외부 필자 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