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소신대로 사는 방법, 비교하지 말기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18-02-02 11:13:52
  •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40)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40)

의대를 다닐 때 다른 사람들은 의대 공부가 정말로 힘들겠다고 걱정 했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배도 공부하고, 후배도 공부하고, 동료도 나와 똑같이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부터 온다.

즉 모두 다 부자인데 나만 가난하거나, 모두 따뜻한 옷을 입었는데 나만 따뜻한 옷을 못 입었거나, 모두 스마트폰을 쓰는데 나만 스마트폰이 없거나 이렇게 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만 무엇이 결핍되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처음 개업을 경기도 동두천에서 시작했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니까 나와 동료들 사이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아파트값이 5~10배 정도 올라서 저절로 재테크가 되는 동료가 있었고 병원을 지은 땅값이 올라서 평생 쓸 돈을 별 노력 없이 땅에 깔고 앉게 된 동료도 있었다. 그런데 내 주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직원을 구할 때마다 힘들었고, 열심히 환자를 보는데도 건물의 감가상각비는 떨어지고, 땅값이나 아파트값은 오르지 않아서 절대로 노후대책이 되지 않았다.

개원 후 약 10년 이상은 모임도 안 나간 것 같다. 바쁘기도 했지만 모임에 다녀오면 행복하지 않았고, 열등감만 느끼고 왔다. 차라리 모임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것이 속 편했다.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살기로 했다. 열심히 나의 일을 하면서 나에게 프라이드를 느끼면서 살고 싶었다.

개원 20년이 되어갔다. 행복지수가 높지 않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딸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엄마가 서울에 개원했으면 아마 병원이 이 정도로 커지지 못 했을 거야! 엄마가 작은 도시에서 개원해서 병원이 이만큼 커진 거야. 엄마, 잘했어. 동두천에 개원하기를 잘 했어. 우리가 잘 컸잖아! 걱정 마! 앞으로 우리가 엄마 잘 모실게."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갔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꿨다.

한 번 긍정적으로 생각 하기 시작하니까 나의 인생에서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나를 지금의 위치로 만든 디딤돌이 되었다. 이제는 내 인생에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내가 있는 위치, 나의 여건이 모두 신의 가호로 이루어진 것이고, 항상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

어떻게 '딸의 말 한마디'로 한 순간에 내 인생의 모든 걸림돌이 디딤돌로 바뀔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도 행복한 게 없는 나의 삶이 하나도 부족한 게 없는 삶으로 바뀔 수 있을까? 정말 신기했다.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릴게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고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너무 높은 곳하고만 비교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를 봐도 끝이 없는데, 너무 위만 봤구나!

이제는 열등감이 하나도 없다. '나는 나다!' 나는 나의 삶을 열심히 살면 되고, 내가 열심히 한 만큼 내 자신에게 프라이드를 느끼고 살면 되고, 마음을 비우면서 더 겸손하게 살 것이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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