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규제혁신, 정작 업계는 무지·무능·무관심?

정희석
발행날짜: 2018-12-07 00:06:30
  • 정부 상대 제안·의견 제시 부재…소극적이고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

지난 5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한 ‘혁신의료기술(기기) 규제혁신 심포지엄’ 모습.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의료기기분야 규제혁신안이 내년 본격 시행을 앞두고 관련부처와 의료기기업계가 연일 분주하다.

지난 9월 식약처 ‘첨단의료기기 규제개선 설명회’, 11월 한국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 학술대회 ‘의료기기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12월 5일 심평원 ‘혁신의료기술(기기) 규제혁신 심포지엄’, 12월 6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IVD위원회 정기 워크숍’까지 의료기기 규제혁신 세부방안을 놓고 정부와 업계 간 사전 의견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것.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분야 규제혁신안을 발표한 후 5개월 간 복지부 식약처 심평원 NECA 등 관련부처는 의료기기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시장진입 과정의 합리적 개선을 목표로 정책 방향 밑그림을 의료기기업계에 제시해왔다.

환기하자면 정부는 앞서 큰 틀에서의 3가지 규제혁신안을 발표했다.

첫째 혁신(첨단)의료기기는 신의료기술평가를 포함한 별도 인허가 트랙을 만들어 시장진입을 최대한 앞당기겠다.

둘째 혁신의료기기 개발·판매를 촉진하고자 산·병협력체를 구성해 지원하고, 공동연구로 개발한 제품에 대해 부가적인 지원을 하겠다.

셋째 체외진단기기는 선시장진입·후평가를 통해 신속한 시장진입을 유도하겠다.

하지만 업계가 이러한 정부 규제혁신 추진방안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례로 기자가 만난 국내 의료기기제조사 대표는 체외진단기기에 한정된 ‘선시장진입·후평가’, 즉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모든 의료기기에 적용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물론 정부가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기기업계의 혼란과 이해부족은 일견 이해할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의료기기 규제혁신 정책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업계가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경로로 정책 대안을 관련부처에 제안하고 의견을 내기보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실례로 식약처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등 관계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의료기기 담당부서 한 국장은 “정부가 의료기기 규제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업계는 아무런 의견도 내고 있지 않다”며 “4차 산업혁명이고 규제혁신이건 다 필요 없고 의료기기업체들은 기본이나 지켜라”며 직설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 헬스케어특별위원회 한 위원 역시 의료기기업계의 무기력한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이 위원은 “지난 7월 대통령 규제혁신안 발표 이후 정부 측에 전달할 혁신의료기기 급여 산정 등 구체적인 의견을 달라고 의료기기단체에 비공식적으로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아온 답은 정부가 정책안을 가져오면 그걸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며 “의료기기업계가 진정 의료기기 규제혁신을 원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다국적기업 한 위원은 업계가 정부의 의료기기 규제혁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했다.

그는 “현재 국회에서 발목 잡혀 있는 의료기기산업육성법에 따른 혁신의료기기 인증제 도입과 각종 지원은 국내 제조사들만 해당되기 때문에 다국적기업과 수입사 입장에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국내사들은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하는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의 정책 기능이 약하다보니 세부적인 규제혁신 정책 제안이나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기업계는 또한 여러 공청회·설명회 자리에서 시민단체나 학계가 안전성 우려를 내세워 선진입·후평가, 혁신의료기기 인허가 별도 트랙 적용, 수가 가산 등에 이견을 제시해도 이를 합리적 근거로 설득하기는커녕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정부 의료기기 규제혁신을 비판하고 의료기기업체의 대리수술과 허술한 제품 부작용 관리 등 업계를 바라보는 사회적 우려와 부정적 시각 또한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의료기기업계는 규제혁신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내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무기력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사회 곳곳의 목소리와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으며 중도적 입장에서 정책을 수립·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마련.

당초 정부가 업계 애로사항 해소와 의료기기산업 활성화를 위해 구상한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을 오롯이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걱정되는 이유다.

정부의 의료기기 규제혁신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올해가 한 달도 채 안남은 상황에서 거시적 규제혁신 틀을 조정하기란 이미 불가능해 보인다.

의료기기업계는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정부에 미시적 정책 제안을 통해 혁신적인 새로운 의료기기가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아 시장에 신속히 진입하도록 합당한 대우를 요구하고, 결국 그로 인한 이익이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본연의 의무를 다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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