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명훈 의대협 중앙집행위원장
|가천의대 의학과 2학년 백명훈| 인간은 물론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고 존엄하다. 그러나 전 세계에 70억이 넘는 사람들이 현존하고 있으며,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은 사라져 갔으며 미래에도 사람들이 오고 갈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 하나에 불과한 우리 자신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는 순간, 삶의 대한 허무를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존재를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간, 인간 하나가 갖는 존재감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영감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인간을 네트워크 속의 점(node)로서 생각할 수 있고, 상호 간 맺는 관계를 네트워크의 연결(link)에 대응할 수 있다.
하나의 점은 다른 많은 점들과 연결되는 동시에 그 점들은 다수의 점들과 연결을 공유한다. 복잡한 연결성 속에서 한 점이 하나의 네트워크 내에서 갖는 힘은 실로 파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망 속에서 타인과 상호작용한다는 맥락에서 인간의 존재는 작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가치를 자유롭게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치는 본질적으로 좋음에 대한 표현이거나 이익에 대한 추구일 수밖에 없다. 좋음과 이익은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각자의 영역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가치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관계를 지탱하는 규범의 역할이 여기서 드러난다.
규범은 서로 다른 가치들의 다양성과 이들이 타협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성을 균형 있게 확보해야 한다. 규범의 형성 과정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충분한 논의와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규범은 조화라는 대의 앞에 우리의 가치, 삶과 자유를 일정 수준 규정하고 제한하기 때문이다.
규범은 가치에 기반하여 형성되는 것이지만 가치와 보편 규범의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가치와 규범을 혼동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도덕적 우월감과 당위성을 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설득하는 쉬운 길일지 몰라도,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과도한 갈등을 야기할 뿐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선호와 이익 추구의 결과임을 직시하고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보편 규범과 혼동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타협에 참여하는 것이 조화로운 연대의 시작이다.
그렇게 시작된 연대는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으로 완성할 수 있다. 소통은 상호 간에 서로 다른 인식의 틀과 가치체계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가진 인식의 틀과 가치체계를 자각하지 못하거나 이를 적절하게 표현하지 않고 군중 속으로 침잠하는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존중의 자세로 보기 힘들다. 서로 다른 인식의 틀과 가치체계를 조화하려는 노력 없이,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끼리의 과잉 연결에 안주하는 것은 집단적인 트랜스(trance)와 다름 아니다.
연결(link)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이제는 연결이 가진 속성을 재고할 시점이 다가왔다. 현존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꾸밈없이 적절하게 표현하고, 타인에게 귀 기울이며, 진정한 조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함께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에 참여할 책임이 있다. 이 네트워크 속에서 진정한 자기 책임과 조화로운 연대를 실현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존재의 의미와 활력을 마주할 수 있다.
모든 이들은 각자마다 삶을 감내하고 있다. 그리고 무력감에 대응하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면, 희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