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빈 세브란스병원 교수
레지던트 없는 의료 환경의 실현은 가능할까? 지난 수 십 년간 국내 의료기관의 입원환자 진료를 지탱해온 레지던트의 존재는 여전히 절대적이다. 지난 여름, 수련 받는 의사의 존재가 여전히 굴지의 대형병원들마저 뒤흔들 수 있음을 함께 지켜보았고, 극적으로 시행된 의사 실기시험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근대적 레지던트 수련 제도의 기틀을 완성한 Willam Osler, William Halsted 교수의 영향 아래 국내에서도 1951년 전문과목 표방허가제와 1957년 수련병원 지정제도가 시행되면서 레지던트 수련은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2021년 레지던트 정원은 3399명으로, 인턴을 포함하여 매년 전국 1만 5000여명의 젊은 의사들이 수련을 받고 있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레지던트는 ‘수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료현장을 지탱하며 ‘저절로 수련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레지던트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처럼 레지던트는 ‘피교육자’와 ‘근로자’의 경계에서 누구도 쉽사리 한쪽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아주 미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레지던트를 둘러싼 이중적 잣대 아래서 젊은 의사들이 소진되어 가는 동안, 정작 그들을 보호해야 할 수련환경은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대학병원의 수술실은 전임의와 PA들로 가득하여 배움과 집도의 기회는 멀어져만 가고, 레지던트 첫날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교수들은 밀려드는 수술과 외래, 연구, 학회 등으로 하루에 한번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
같이 밤을 새며 환자를 살피고 앞서 배운 지식을 가르치던 상급 년차 레지던트는 이미 주 80시간 근무를 초과하여 더 이상 곁에 없으며, 중환자라도 발생하는 날에는 입원전담전문의, 중환자실전담전문의, 신속 대응팀 등 어디선가 전문의들이 잔뜩 나타나서 환자를 채가기 일쑤인데, 그럼에도 담당환자는 많고 80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레지던트는 과연 제대로 된 수련을 받고 있는가? 질문을 바꾸어 이렇게 묻고 싶다. 이 수련 과정을 거치면 이들에게 ‘전문의’의 자격을 부여하기에 충분한가?
수련 환경이 뒷걸음질 치는 동안 의료기관의 몸집은 더욱 커져 왔고, 전공의 정원구조 합리화 정책과 맞물려 초대형 의료기관의 레지던트의 수는 더욱 감소하였다. 이미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는 지난 지 오래이며, 어차피 과거와 같이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이라면 전문의 중심의 의료 환경으로 개편하고 레지던트로부터 근로자로서의 멍에를 벗겨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피교육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수련의 질을 담보할 수 있도록 일정한 수의 환자를 담당하고, 환자의 곁에서 전문의들로부터 살아있는 지식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어야만 제대로 된 수련이 가능하다.
수련환경평가로 대표되는 제도적 개선 노력은 환영할만한 일이나, 여기에는 레지던트 곁에서 이들을 직접 대면하고 교육하는 의사의 존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최근 본 사업으로 전환한 입원전담전문의는 레지던트 수련의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독자적인 진료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병동에서 환자 곁에 상주하며 실제 환자 진료에 필요한 처방, 의무기록 작성, 술기 등을 직접 수행하는 전문의의 존재는 레지던트 수련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상주하는 전문의의 지도와 감독이 뒷받침되면, 수련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해오던 많은 실수들이 감소하고 환자는 더욱 안전해진다.
모든 입원전담전문의가 레지던트 수련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레지던트와 팀을 이루는 academic hospitalist와 그 외의 attending hospitalist로 구분하고, 수련에 참여하는 입원전담전문의는 현재 부과된 진료 규정을 완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까운 미래에 입원환자 진료의 중심은 레지던트에서 전문의로 옮겨가야 하며, 이에 따라 레지던트는 ‘수련의’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이것이 현재의 수련환경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은 전문의를 배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입원전담전문의를 더욱 확충하여야 하는데, 본 사업 전환 후 제도적 결함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새로운 직역에 대한 불안한 인식에도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추진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전문의 중심의 의료 환경으로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으며, 자칫 이 기회를 놓치면 전문의다운 전문의의 양성을 마지막으로 보게 될는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레지던트 없는 의료 환경은 실현은 가능할까?
제대로 된 수련을 받지 못하고 표류하는 ‘레지던트’는 사라져야 하며, 그 자리에는 ‘수련의’가 남아야 하고, 그 수련의는 전문의에 의해 길러져야 한다. 그것이 결국 언젠가 우리의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책임질 실력 있는 전문의를 미래 세대에도 지속적으로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근대적 레지던트 수련 제도의 기틀을 완성한 Willam Osler, William Halsted 교수의 영향 아래 국내에서도 1951년 전문과목 표방허가제와 1957년 수련병원 지정제도가 시행되면서 레지던트 수련은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2021년 레지던트 정원은 3399명으로, 인턴을 포함하여 매년 전국 1만 5000여명의 젊은 의사들이 수련을 받고 있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레지던트는 ‘수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료현장을 지탱하며 ‘저절로 수련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레지던트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처럼 레지던트는 ‘피교육자’와 ‘근로자’의 경계에서 누구도 쉽사리 한쪽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아주 미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레지던트를 둘러싼 이중적 잣대 아래서 젊은 의사들이 소진되어 가는 동안, 정작 그들을 보호해야 할 수련환경은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대학병원의 수술실은 전임의와 PA들로 가득하여 배움과 집도의 기회는 멀어져만 가고, 레지던트 첫날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교수들은 밀려드는 수술과 외래, 연구, 학회 등으로 하루에 한번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
같이 밤을 새며 환자를 살피고 앞서 배운 지식을 가르치던 상급 년차 레지던트는 이미 주 80시간 근무를 초과하여 더 이상 곁에 없으며, 중환자라도 발생하는 날에는 입원전담전문의, 중환자실전담전문의, 신속 대응팀 등 어디선가 전문의들이 잔뜩 나타나서 환자를 채가기 일쑤인데, 그럼에도 담당환자는 많고 80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레지던트는 과연 제대로 된 수련을 받고 있는가? 질문을 바꾸어 이렇게 묻고 싶다. 이 수련 과정을 거치면 이들에게 ‘전문의’의 자격을 부여하기에 충분한가?
수련 환경이 뒷걸음질 치는 동안 의료기관의 몸집은 더욱 커져 왔고, 전공의 정원구조 합리화 정책과 맞물려 초대형 의료기관의 레지던트의 수는 더욱 감소하였다. 이미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는 지난 지 오래이며, 어차피 과거와 같이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이라면 전문의 중심의 의료 환경으로 개편하고 레지던트로부터 근로자로서의 멍에를 벗겨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피교육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수련의 질을 담보할 수 있도록 일정한 수의 환자를 담당하고, 환자의 곁에서 전문의들로부터 살아있는 지식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어야만 제대로 된 수련이 가능하다.
수련환경평가로 대표되는 제도적 개선 노력은 환영할만한 일이나, 여기에는 레지던트 곁에서 이들을 직접 대면하고 교육하는 의사의 존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최근 본 사업으로 전환한 입원전담전문의는 레지던트 수련의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독자적인 진료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병동에서 환자 곁에 상주하며 실제 환자 진료에 필요한 처방, 의무기록 작성, 술기 등을 직접 수행하는 전문의의 존재는 레지던트 수련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상주하는 전문의의 지도와 감독이 뒷받침되면, 수련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해오던 많은 실수들이 감소하고 환자는 더욱 안전해진다.
모든 입원전담전문의가 레지던트 수련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레지던트와 팀을 이루는 academic hospitalist와 그 외의 attending hospitalist로 구분하고, 수련에 참여하는 입원전담전문의는 현재 부과된 진료 규정을 완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까운 미래에 입원환자 진료의 중심은 레지던트에서 전문의로 옮겨가야 하며, 이에 따라 레지던트는 ‘수련의’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이것이 현재의 수련환경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은 전문의를 배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입원전담전문의를 더욱 확충하여야 하는데, 본 사업 전환 후 제도적 결함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새로운 직역에 대한 불안한 인식에도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추진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전문의 중심의 의료 환경으로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으며, 자칫 이 기회를 놓치면 전문의다운 전문의의 양성을 마지막으로 보게 될는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레지던트 없는 의료 환경은 실현은 가능할까?
제대로 된 수련을 받지 못하고 표류하는 ‘레지던트’는 사라져야 하며, 그 자리에는 ‘수련의’가 남아야 하고, 그 수련의는 전문의에 의해 길러져야 한다. 그것이 결국 언젠가 우리의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책임질 실력 있는 전문의를 미래 세대에도 지속적으로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